LP들 유동성 확보 필요성에 세컨더리 펀드 부상
기업 인수 보다 안정적이고 고수익 투자처 많아져
사모대출 시장으로 투자자 이동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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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사모펀드(PEF)는 통상 기업 경영권을 사고파는(buyout) 펀드로 알려져 있지만, 앞으로 그 정의가 바뀔 것으로 보인다. 사모펀드들이 전략을 선회하면서 이제는 기업들 인수보단 대출 시장(credit)으로 눈을 돌리고 있어서다.
대출만 해도 10% 이상의 수익을 거둘 수 있는 ‘고금리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이미 비싼 값에 산 기업에 물린 사모펀드들의 포트폴리오를 인수하기 위한 세컨더리 마켓도 커지고 있다. 그야말로 변혁의 시대다.
골드만삭스는 이달 142억달러(한화 19조원) 규모의 세컨더리(secondary) 펀드를 조성했다. 더불어 10억달러(1조3000억원) 규모의 빈티지 인프라스트럭쳐 파트너스도 조성했다. 해당 펀드에는 한국 기관투자자를 비롯, 전세계 기관투자자들과 골드만삭스 임직원이 출자했다. 골드만삭스는 1998년부터 세컨더리 펀드를 조성해 왔으며 이번이 9번째 세컨더리 펀드다.
세컨더리 펀드는 사모펀드들이나 벤처캐피탈이 기존에 투자했던 포트폴리오 회사 주식을 다시 인수하는 펀드를 말한다. 비단 다른 펀드의 포트폴리오 뿐만 아니라 펀드에 출자한 투자자(LP)의 지분을 사오기도 한다. 최근 해외에선 LP의 지분을 사오는 거래가 활발해지고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연기금을 비롯한 LP들이 대체투자에 지나치게 투자가 집중되어 있어, 이들이 투자한 펀드의 지분을 파는 거래가 활발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골드만삭스는 세컨더리 시장에서 그간 꾸준히 펀드를 조성해왔다. 1998년 이후 2년 또는 3년 주기로 새로운 펀드를 조성했다. 헤럴드 호프 골드만운용 세컨더리 부문 글로벌 총괄은 “이번에 결성된 펀드와 기존에 모집한 코인베스트먼트(공동투자) 자금을 바탕으로 현재 시장에 있는 최대 규모의 딜 등 다양한 기회를 추질한 수 있게 됐다”라며 “모집된 자금으로 투자자들에게 차별화된 사모펀드 수익률을 꾸준히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비단 골드만삭스 뿐 아니라 미국의 블랙스톤, 프랑스의 아르디안 등도 세컨더리 펀드를 대규모로 조성했다. 바이아웃 중심의 사모펀드들이 펀드레이징에 어려움을 겪는 것과 달리 세컨더리 펀드 레이징에는 기관투자자의 큰 자금이 몰리고 있다.
일단 세컨더리의 투자대상이 많아졌다. 금리 상승으로 시장 유동성이 메마르면서 기관투자가들이 기존에 투자한 바이아웃 펀드에서 돈을 빼야 할 일들이 발생했다. 이를 당장 현금화하기 어려울때 기관들의 '지분'을 고스란히 인수하는 곳이 세컨더리 펀드다. 이는 세컨더리 시장엔 기회가 됐고 이러다보니 세컨더리 펀드에 ‘뭉칫돈’이 몰리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올 상반기까진 바이어와 셀러간의 가격에 대한 간극이 커졌지만, 유동성을 필요로 하는 셀러들이 등장하면서 가격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세컨더리 펀드에는 ’헐값‘에 인수할 기회가 생길 수 있다.
고금리 시대는 비단 세컨더리 펀드 활성화로만 이어지지 않고 있다.
이달 파리에서 사모펀드들과 투자자들의 연례 행사인 IPEM 컨퍼런스에서도 핵심 주제가 사모펀드들의 전략 다변화가 다뤄지고 있다. 사모펀드의 거물들이 앞다퉈 나서서 바이아웃 중심의 사모펀드 전략의 대변화가 올 것을 예고하고 있다.
블랙스톤의 슈워츠만 회장은 “안정적으로 10% 이상 벌어들 일 수 있는 선순위 대출시장이 열리고 있는데, 굳이 다른 투자를 할 필요가 있는가”라고 반문하고 나섰다. 투자에 따른 위험성이 큰 기업 인수합병 보다는 기업대출을 통해서 안정적인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는 견해다.
안정적인 인프라 투자도 각광을 받고 있다. 금리가 올라가면서 인프라 투자를 통해서도 10% 안팎의 고정적인 수익이 가능한 상황이 열리면서 굳이 기업을 사고 팔 필요가 없다는 견해가 나온다. 기업을 사고 파는 바이아웃은 저금리 시대의 유물로 취급 받는 분위기다. 그나마도 이를 싸게 내놓는다면 고수익을 원하는 세컨더리 펀드들이 해당 매물을 탐내고 있다. 골드만삭스 등 경험 많은 운용사들은 이러한 매물을 리스트업 하면서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에서도 관련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해외에서 출자를 받지 못한 펀드들이 국내 기관투자자들까지 찾아나서면서 펀드레이징 경쟁이 격화하고 있다. 이들이 가진 포트폴리오가 세컨더리 시장에 매물로 출회할 수 있다. 사모대출에 대한 기관투자자들의 선호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안정적인 고수익이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만 국내에선 '대세 변화' 수준으로 보긴 이르다는 평가다. 금리 변화 등을 살펴보면서 시장의 상황을 관망하고 있다. 아직은 파이어 세일(급매)이 활발하진 않지만 가능성 정도가 언급되는 상황이다.
한 기관투자자는 “대출을 일으켜서 기업을 사고파는 바아이웃 펀드의 수익률은 고금리에선 저하될 수 밖에 없다”라며 “국내에서 뛰어난 사모펀드들이 10%를 조금 넘는 수익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굳이 해당 투자를 할 이유가 커 보이질 않는다”라고 말했다. 다른 기관투자자는 “아직까진 가격을 살펴보고 있는 상황이다“라며 ”금리 변화를 예민하게 보고 있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