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모펀드(PEF) 1세대 창업자들, 후계자 어떻게 고를까
입력 2023.10.13 07:00
    Invest Column
    대기업보다 어려운 PE 승계와 지분배분…눈 앞의 과제로
    승계 방법 있어도 생각보다 쉽지 않아…양보의 문제 vs 현실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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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 지난달 19일~23일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 호텔서 열린 '슈퍼리턴 아시아'(SuperReturn Asia 2023).

      여기 모인 PE들과 투자자(LP)들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앞으로 어피너티 어떻게 되느냐"였다고 전해진다. 그도 그럴것이 이상훈ㆍ이철주, 그리고 박영택 회장까지 잘나가던 원년멤버가 최근 싸그리 퇴사했다. 한때 국내 IB들 사이에서는 "박영택 회장이 복귀해 친정체제를 구축한다더라"라는 얘기가 돌기도 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창업자인 K.Y.탕(Tang) 회장이 돌아오는 시나리오였다. 

      오랜 칩거(?)를 접고 돌아온 70대 회장의 복귀는 그간 실적이 부진했던 한국 원년멤버들을 내보내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이제 남아서 한국부문을 지휘할 민병철 대표, 그리고 탕 회장의 연배 차이는 거의 30년에 달한다. 

      # 최근 몇개월 국내 PEF들이 가장 사태 추이를 눈여겨본 곳은 VIG파트너스였다. 과거 여러번 창업자들이 회사를 떠나는 등 부침이 많은 회사였고, 이번에는 신재하ㆍ박병무 대표도 모두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로써 해상왕 장보고의 이름을 따 2005년 화려하게 등장한 보고펀드 창업자 3인 (변양호ㆍ이재우ㆍ신재하)은 18년 만에 모두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게 됐다. 누군가에게는 '흘러가는 세월~'을 상기시키는 일일지도 모를 일. 그러나 다른 PE들이 VIG를 지켜본 이유는 따로 있다. 이게 '남 일이 아니어서'다. 

       # 작년초 블룸버그 보도로 알려진 MBK파트너스의 지분 13% 미국 다이얼 캐피탈로 매각은 아직도 PEF들 사이에선 자주 회자된다. 민감한 사안이라 MBK는 이에 철저히 함구해왔지만 업계에선 이를 '분배'의 과정으로 보고 있다. 

      칼라일(나스닥 상장)ㆍKKR(NYSE 상장)처럼은 못해도 GP 지분이 유동화되고 이로서 마련된 1조원에 달하는 현금은 창업자들에게는 투자금 회수(Exit)를, 후세대 파트너들에겐 지분보유의 기회를 제공한다. PE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뉘앙스는 일종의 '부러움'이다. "그래도 MBK 정도 되니 저런 구조를 만들어낸다"

      # 작년 8월. 칼라일 글로벌 CEO였던 이규성씨가 사임할 당시. 글로벌 PE들이 받은 충격은 컸던 것으로 보인다. 

      '무한경쟁'을 거쳐 실력과 조직 장악력을 증빙, 후계자로 낙점된 인사였다. 그리고 '칼라일'이란 이름이 글로벌 투자시장에서 차지하는 무게감은 과거든, 현재든 차원을 달리한다. 그런 칼라일을 창업한 3인방 가운데 한 명인 데이빗 루벤스타인 회장은 블룸버그와 함께 '루벤스타인 쇼' (The David Rubenstein Show)를 운영했고, 손정의ㆍ팀쿡,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등을 인터뷰하면서 유유자적하는 모습까지 보여줬다. 

      아름다운 승계가 완료된 것처럼 보였는데… 아니었다. 외신을 종합하면 그렇게 황태자로 낙점된 이규성 씨가 칼라일 창업자들 개인자산 관리 문제를 비판하고 경영행태를 따지는 등 대립각을 세우자 창업자들은 "우리가 칼라일 경영에 다시 참여하겠다"고 선언했고, 결국 이규성씨가 회사를 떠났다. 루벤스타인 회장은 1949년생으로 올해 74세다.

      골치 아픈 '승계'(Succession Problem) 이슈는 대기업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닌 듯하다. 사모펀드들도 이 문제를 겪을 것이란 예상은 수년 전부터 나왔다.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더 '머리를 싸매게 만드는' 이슈로 보인다. 

      차라리 오너 대기업 승계는 단순하다. 승계 받을 인물이 딱 정해져 있다. '아들' 혹은 '딸' 가운데 누군가 한 명, 여기에 외동이면 선택지도 없다. 남는 건 프로그램을 짜맞추는 일 정도다. 위법ㆍ탈세ㆍ편법 비난을 피하고 싶으면 그냥 50% 상속증여세를 물면 된다. 물론 그렇게 승계한 아들ㆍ딸이 창업자 세대처럼 그룹을 잘 유지할지, 아니면 망쳐놓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운 좋게 후계자가 뛰어난 능력을 보이면 그 세대는 태평성대(?)를 누린다. 조선시대 왕정이랑 별 차이가 없다. 

      그런데 PE 구성원들은 혈연관계가 아니다. 그리고 '1인자'는 명확하더라도 '2인자'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들이 많다. 공동 창업자들간 세대도 겹친다. 게다가 철저히 성과주의다. 오너 대기업과 달리 제 몫을 못하는 후계자가 용인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창업자의 영향력이나 파워는 대기업 오너보다 더 막강하다. 

      이런 난제를 돌파할 몇몇 승계방법들이 알려져 있다. 칼라일이나 KKR 같은 톱티어(Top Tier)들은 프리 IPO 형태로 운용사 지분을 매각하거나 분배하고, 이후 상장을 거쳐 유동화도 가능하게 한다. 국내에서도 스틱인베스트먼트나 큐캐피탈처럼 상장된 PE가 있다. 다만 이들이 상장사로서 겪는 피곤함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진다. 애당초 PE는 '사적인(Private)'의 영역이고, 상장은 '공공화(Public)'되는 과정. "왜 그따위로 실적을 내느냐"라고 소액주주들이 따져물을때 PE들은 포트폴리오 회사에 대한 내부정보를 공개할 수도, 비밀을 유지해야 할 펀드 운용수수료 세부구조를 공개할 수도 없다. 

      이 참에 운용사를 하나 더 설립해 후세대 파트너들이 이 지분을 보유하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 스카이레이크와 VIG파트너스 등이 이 방법을 활용한 것으로 알려진다. '새 술은 새 부대에'처럼 '새 펀드는 새 파트너에게' 맡겨 운용수수료와 성과보수를 향유하게 만들 수 있다. 다만? 투자자(LP)들은 썩 달가워하지 않는다. 

      후세대 파트너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선배 창업자들이 멋지게, 폼나게 일선에서 후퇴하는 방식도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세밀한 조율이 필요해 보인다. 몇%지분을 남길지, 성과보수를 몇대몇으로 나눌지 등등.

      이때부터 핵심 '논란거리'가 등장한다. "창업자들 혹은 1인자는 보유지분을 선뜻 후배 파트너에게 나눠줄 수 있는가" 

      일반론으로만 보면 답은 정해져 있다. 멋지게, 폼나게 후배들에게 지분을 양보해줘야 후세대들이 활동할 공간이 생긴다. 이른바 아름다운 은퇴. 좀 더 냉정하게는… "그렇지 않으면 인재들이 남아 있지 않고 모두 회사를 나가버릴거다"

      그런데 현실은 또 좀 다르다. 

      60대가 됐든, 70대가 됐든 창업자들이 회사를 유지하고, 업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대체불가능한 경우들이 있다. 단순히 '이름값'에 그치지 않는다. 투자자들은 그 창업자를 보고 선뜻 수천억원에서 조단위 자금을 맡긴다. 창업자의 '전설적인 프리젠테이션' 하나 만으로, 과거의 투자손실에 꽁꽁 얼어붙어 있던 LP들의 마음을 눈 녹이듯 녹여버린 사례들은 여전히 회자된다. 

      위기상황에서 누구도 내리지 못할 결정으로 회사를 살려낸 창업자들의 판단력과 결단력이 돋보인 사례 역시 부지기수다. JP모건체이스나 모건스탠리, 골드만삭스를 위시한 글로벌 IB들의 '초장기 집권' CEO들이 전부 이에 해당된다. '독재'에 가까운 그들의 막강한 권한, 그리고 고액연봉을 정당화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게다가 시대도 바뀌었다. 

      "그럴 바엔 내가 차라리 내 회사를 차리고 말겠다"라고 본인 이름을 딴 PE를 만든다? 이젠 쉽지 않다. '영웅'처럼 각안된 막강한 1인이 새로 사모펀드 운용사를 차리면 앞다퉈 자금을 맡기는 시절이 아니다. PE시장은 고도화되고 안정화됐고 투자자들은 '회사 브랜드'를 찾기 시작했다. 자금을 맡길 PE들이 이미 즐비해 있다. 또 비도덕적인 실무진이 나서 수백억원 수천억원을 신생 펀드에 제공할 수 있었던 새마을금고 같은 눈 먼(?) LP들도 사라지고 있다. 얼라인파트너스(KKR 출신 이창환 대표) 플래시라이트캐피털(칼라일 출신 이상현 대표)처럼 PE출신 인사들이 소규모 자본(?)으로 활동가능한 행동주의 펀드에 자리잡은 것 역시 같은 맥락이라 보는 시선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후세대를 위해 무조건 창업자들은 물러나라고 한다면. 모든 1세대들이 선뜻 '오케이'라고 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이를 '창업자의 노욕'이라고 비판하겠지만, 투자자들에게는 "그가 일선에서 물러난다'는 "그 회사에 투자할 이유가 없다"와 동의어로 작용한다. 행여 창업자가 "내가 펀드레이징도 다 하고, 내가 딜(Deal)도 다 따오는데 나보고 나가라고?"고 반문한다면? (물론, 반대 언급도 가능하다 "서류작업ㆍ실무협상ㆍ수많은 포트폴리오 기업관리 혼자 다 하실 거냐") 

      심지어 후세대 파트너들이 줄줄이 회사를 떠났으니 운용사가 흔들릴거다...라는 예상도 빗나가기 시작했다. 이규성 대표가 물러났다고 칼라일이 흔들렸느냐? 천만의 말씀. 창업자 도용환 회장의 막강한 입김이 잘 알려져 있는 스틱인베스트먼트는 파트너들이 여러 차례 걸쳐 회사를 떠나고 본인 회사를 차렸지만 되레 스틱은 그 이후에도 '하이브 투자' 등으로 더 큰 대박을 누렸다. 이런 사례들은 창업자들의 마음을 더 차갑게 만드는 요소다. 

      그렇다고 이도 저도 어려우니 다 같이 '사이좋게' 공동경영를 구가한다? 교과서(?)에도 나오듯 KKR의 창업을 이끈 제롬 콜버그는 18살이나 어린 헨리 크라비스, 조지 로버츠와 KKR을 만들어놓고는 결국 이들과 갈등으로 회사를 떠나고 나중에는 소송전까지 벌였다. 

      국내 PE들 사이에서도 공동대표 구조를 갖춘 운용사들이 겪은 갈등과 대립의 역사가 적지 않다. 반대로 확고부동한 1인 리더십 혹은 오너십 체제는 '독선적'이라고 비난받을 지언정, 때론 변화무쌍한 시대를 극복하고 위기상황을 타개하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보여지는 걸 부인하기도 어렵다. 

      사실 답은 없다. 다만 확실한 점 하나는, 이 골치 아픈 문제가 50년대 후반~60년대생 창업자들이 이끌고 있는 여러 PE들을 앞으로도 알음알음, 계속 괴롭힐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그래봤자 '밥그릇 싸움' 아니냐는 냉랭한 시각도 가능하겠지만 반대 해석도 가능하다. "밥그릇 싸움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됐고, 가장 신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