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유동성에 심해진 양극화…"돌아다녀도 자금 안 모여"
내년도 캐피탈사 RWA 관리 등 이슈 산적…훈풍 불지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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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얼어붙은 사모펀드(PEF) 펀드레이징 시장에서 자금모집 성패를 가르는 키워드는 '트랙레코드'가 됐다. 국내 주요 출자자(LP)들이 지갑을 닫는 가운데 출자사업에서 눈에 띄기 위해 운용사들은 저마다의 색을 가지려 했지만 출자 기관은 트랙레코드나 출자자 모집 능력을 중심으로 신중하게 검토를 하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블라인드펀드 결성에 있어 양극화 현상도 뚜렷해지는 중이다. 대형사는 목표치 달성 여부를, 중소형사는 출자사업 참여 기회를 고민하는 분위기 속에서, 규모와 무관하게 트랙레코드가 뚜렷한 하우스는 문제없이 펀드 자금 모집을 마무리하고 있다. 내년도 올해에 이어 싸늘한 펀드레이징 시장의 분위기가 유지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의견도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17일 IBK기업은행과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은 수시 2차 출자사업에 나섰다. 최대 8개 운용사에 총 400억원을 매칭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혹한기에 접어든 지 오래인 펀드레이징 시장에 훈풍을 불어넣어 줄 출자사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수출입은행은 국내 중소·중견기업의 수출·해외투자 등을 지원하기 위한 펀드 조성에 500억원을 출자한다. 군인공제회도 3000억원 규모의 블라인드 출자 사업을 개시한 상태다.
이러한 출자 소식에 운용사들도 분주해졌다. 블라인드펀드 결성 계획이 있는 곳들은 체급이나 출자 조건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제안서를 내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출자 기관에 투자 기준 완화가 일부 가능한지 여부를 묻는 사례도 나타났다.
실제로 최근 PEF 펀드레이징 시장 경쟁은 매우 치열해졌다고 한다. 과거 블라인드펀드에 수시출자하던 주요 연기금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자금 모집 난이도는 크게 올랐다. 이를 위해 하우스마다 특색을 갖추려는 노력도 이어졌다. 외국계 투자사인 A 운용사는 해외에 진출하는 대기업 협력사 투자에, 비상장 투자 주력하는 B 운용사는 투자사 사후관리에 방점을 두고 하우스 특색을 살리고자 했다.
결론적으론 '트랙레코드'가 펀드레이징 성패를 가르는 모양새다. 금리가 지속 상승하면서 인수금융을 활용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메디트 매각을 성사시키며 조(兆)단위 딜을 진행한 UCK파트너스(이하 UCK)는 이달 중 1조1000억원 규모의 3호 블라인드펀드 결성을 순조롭게 마무리할 계획이다. 2차전지와 반도체 섹터에서 두각을 나타낸 BNW인베스트먼트도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출자사업 운용사(GP)로 오르면서 블라인드펀드 결성을 추진 중이다. 연내 4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결성하는 게 목표로 추후 바이아웃 딜을 늘려나간다는 설명이다.
투자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올해 국민연금, 수출입은행, 산업은행 출자사업 운용사로 선정된 BNW인베스트먼트 사례가 '트랙레코드'가 중요해졌다는 시그널을 줬다"라며 "트랙레코드가 좋거나 출자자 모집 능력이 어느정도 있다는 평판이 있으면 출자기관 입장에서도 선정하는 데 부담을 적게 느끼는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눈에 띄는 트랙레코드가 마땅찮은 운용사들은 각자 고민을 안고 있는 중이다.
국내 연기금으로부터 출자를 어렵지 않게 받고 있는 대형사들 조차도 목표 금액을 채우기 위해 해외 LP 접촉을 늘려야하는 필요성에 직면했다. 이를 위해 해외 현지 지사를 세우는 안을 고민하는 운용사들도 늘고 있다.
중소형사들은 적어진 출자사업 참여 기회에 아쉬움을 토로한다. 대형사들이 체급을 낮춰 중소형사들이 지원할 법한 사업에 '하향지원'을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와중 트랙레코드를 보유한 중소형사로 출자가 집중되고 있어 펀드레이징에 한계를 크게 느끼고 있다는 설명이다.
투자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비유하자면, 대학원생들이 초등학생들이 쓰는 놀이터에서 노는 셈이다. 중고등학교 형들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해도 돌아오는 것은 '우리도 놀이터를 빼앗겼다'라는 대답이다"라며 "라임사태 이후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출자사업이 줄어들면서 루키리그도 자취를 감추는 등 중소형 PEF들이 설 곳을 점점 잃는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중소형사로 진입하려는 신생 운용사들의 어려움도 가중되고 있다. PEF 시장에서 '큰손' 역할을 자처하며 블라인드펀드에 수시출자하던 새마을금고는 임직원들이 각종 출자비리 혐의에 직면해 수사를 받고 있다. 최근 들어선 '새마을금고가 예전에 끊어 놓은 투자확약서(LOC)가 있어 캐피탈콜을 했지만 돈을 주지 않았다'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내년에는 펀드레이징 시장에 훈풍이 불까. 물론 올해 출자사업이 늘어난 만큼 개선 기대감이 적진 않다. 그러나 여전히 고금리 기조는 이어지고 있고 캐피탈사를 비롯한 LP들이 위험가중자산(RWA) 관리 필요성에 직면한 것은 해가 지나도 해소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
국내 PEF 운용사 한 관계자는 "지금 결성시한을 넘긴 운용사들이 많을 텐데 펀드 결성 자격을 반납시킬 순 없으니 시한 연장을 검토하는 출자자도 많을 것"이라며 "매칭 자금을 구하러 다니는 중소형사들은 더욱 상황이 어려워지는 와중 내년 전망이 밝을지 여부는 불투명하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