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공들였지만…아쉬운 SK그룹 베트남 투자 성적표
입력 2023.11.13 07:00
    SK그룹, 2018년 전초기지 세워 베트남 집중 투자
    마산그룹·빈그룹 등 최상위권 기업 지분투자 성과
    작년 회수 검토했지만 빈손…포트폴리오 부진 지속
    전임자 박원철 SKC 사장 고과에 영향 미칠지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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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SK그룹은 베트남에 공을 많이 들인 기업 중 하나다. 베트남 정재계와 빈번하게 접촉해 온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달에도 베트남을 찾아 넷제로(탄소중립)를 돕겠다고 밝혔다. 많은 기업들이 직접 베트남 현지로 들어가 사업을 꾸리는 방식을 취했는데 SK그룹은 M&A와 투자를 통해 베트남 내 존재감을 키워 왔다. 2018년엔 계열사 자금을 모아 SK동남아투자법인(SK South East Asia Investment)을 세웠다.

      동남아투자법인은 설립 이후 적극적인 투자 행보를 보였다. 2018년 베트남 식음료 1위 마산그룹(Masan Group)에 첫 투자(지분율 9.5%)를 단행했고, 이듬해는 베트남의 삼성이라 불리는 빈그룹(Vingroup)에도 투자(6.1%)했다. 두 곳의 투자금만 현재 환율로 2조원에 가깝다. 이 외에 베트남 유통사 빈커머스(VinCommerce), 제약사 이멕스팜, 크라운엑스 등의 지분도 확보했다. 작년말 동남아투자법인의 자산은 2조3564억원에 달한다.

      SK그룹의 자본시장 활용 역량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후 이뤄진 거래다 보니 재무적투자자(FI)를 초빙하는 경우가 많았다. 마산그룹 투자 때는 IMM인베스트먼트와 스틱인베스트먼트, 빈그룹 때는 IMM인베스트먼트와 이큐파트너스가 힘을 보탰다. 베트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때고, 든든한 대기업이 망하지 않을 기업에 투자하는 거래란 평가에 금융사와 기관투자가들도 투자를 반겼다.

      SK그룹의 베트남 투자 기조는 작년부터 변곡점을 맞이했다. 작년 하반기부터 시장 유동성이 급격히 줄어들며 공격적인 확장 전략을 펴 온 SK그룹의 재무 위기론이 확산했다. 작년말과 올해 초에 걸쳐 전사적으로 자금 확충에 분주했다. SK㈜, SK E&S, SK하이닉스, SK텔레콤, SK이노베이션 등 동남아투자법인 주주들의 자금 사정도 여유가 많지 않았다 보니 베트남 투자 자산이 매각 후보군에 올랐다. 보통 투자 후 5년이 되면 회수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

      SK그룹이 베트남 자산을 매각하지는 않았는데 지금은 팔고 싶어도 팔기 어려운 상황이다. 2019년 4000억원 가까운 순익을 거둔 빈그룹은 2021년엔 대규모 적자를 냈다. 작년 1000억원의 순익을 냈지만 SK그룹이 투자했을 때에 비하면 아쉬울 수밖에 없다. 마산그룹은 팬데믹 특수를 누린 2021년 5000억원의 순익을 냈으나 작년엔 반토막 수준으로 떨어졌고 올해는 겨우 적자를 면하고 있다.

      자연히 투자 자산의 주가도 부진할 수밖에 없다. SK그룹은 빈그룹 주식을 주당 11만3000베트남동(VND)에 인수했는데 최근 주가는 4만동을 겨우 넘는 수준이다. 마산그룹 주가는 최근 다시 SK그룹의 주식 매각 소문이 돌며 2020년말 이후 최저 수준으로 하락했다. 핵심 투자 자산이 부진한 상황이라 동남아투자법인의 성적표도 신통치 않다. 법인은 상반기 165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현재 베트남 시장이 주춤하지만 가장 성장성이 큰 시장 중 하나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최태원 회장도 최적의 투자처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SK그룹의 베트남 시장에 대한 시각이 당장 급변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언젠가는 반등하지 않겠느냐는 시각이 많다.

      그럼에도 SK그룹을 따라 베트남 투자에 참여한 투자자들의 표정은 썩 밝지 않다. 팬데믹과 이후 전세계적 유동성 감축이 잇따른 영향이 있었다지만, 성장하던 시기에 대기업을 믿고 투자한 것 치고는 현재 성적표가 성에 찰리 없다. 대기업과 일하면 큰 손해는 없지만 달리 먹을 것도 없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SK그룹은 투자에 밝고 깐깐하다 보니 협상에서 우호적인 조건을 얻어내기 어렵다”며 “오너가 있는 그룹은 수뇌부가 꽂힌 투자만 집중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투자자가 가져갈 것이 많지 않은데 베트남 투자에서도 괄목한 성과는 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SK그룹도 베트남 투자 자산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고민이 많은 분위기다. 마산그룹과 빈그룹 등 주요 투자는 박원철 SKC 사장이 동남아투자법인 대표로 있을 때 이뤄졌는데, 작년부터는 후임 대표가 포트폴리오 관리를 맡고 있다. 상황이 좋지 않으니 담당자들이 골머리를 앓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남아투자법인엔 조대식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과 장동현 SK㈜ 부회장도 디렉터 직을 겸하고 있다.

      박원철 사장은 작년 SKC 대표로 부임한 후 비주력 사업을 정리하고 신사업을 확장하는 성과를 냈다. 최태원 회장의 신임이 두터워 곧 있을 정기 인사에서 더 중요한 자리로 옮기지 않겠느냐는 예상이 나오기도 한다. 다만 베트남 투자 자산의 부진이 고과평가에 어떻게 반영될지는 미지수다. 일부 투자건은 손실이 나면 베트남 기업 측에서 담보를 보충해주는 조건이 있기도 한데, 이 경우에도 손실 폭이 더 커지면 SK그룹이 투자자에 앞서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최종 성적표는 적자가 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SK그룹 사정에 밝은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박원철 대표는 빈그룹과 마산그룹에 투자해서 보너스를 챙기고 SKC 사장까지 올랐는데 지금 베트남 자산들의 상황이 좋지 않다”며 “박 대표가 SKC에서 사업 구조를 바꾼 공이 있지만 그룹에서도 베트남 문제를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평가를 받을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