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판 중대재해법’ 현실화에 놀란 은행들…방긋 웃는 회계펌·로펌
입력 2023.11.27 07:00
    금융사지배구조법 개정안 도입 초읽기…금융지주들 긴장
    빅4 회계법인 및 대형로펌과 논의에 분주한 분위기
    KB금융•신한지주-안진, 하나금융-삼정, 우리금융-삼일
    로펌 중에선 율촌이 치고 나가는 모양새, 우리-신한 선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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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 윤수민 기자)

      금융회사지배구조법 개정안이 국회 법안소위 문턱을 넘으면서 관련 회사들이 잔뜩 긴장하고 있다. 안건에 따라 자칫 부행장이나 은행장 등 임원들까지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다. 이에 회계법인이나 국내 대형 로펌에 앞다퉈 관련 자문을 맡기고 있다. 

      지난 21일 국회 정무위원회(이하 정무위)는 법안심사소위원회(법안소위)를 열고 책무구조도 도입을 담은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이하 금융회사지배구조법)’을 통과시켰다. 연내 정무위 전체회의와 법제사법위원회, 본회의까지 통과하면 내년 6월부터 금융지주와 은행에 개정법이 적용된다. 

      개정안은 책무구조도를 통해 임원 한 명당 한 개의 내부통제 업무를 담당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둔다. 특정 책무를 담당하는 인원을 복수로 두지 않아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한다는 의미다. 예컨대 최고재무책임자(CFO), 최고리스크관리책임자(CRO), 소비자보호총괄책임자(CCO) 등 ‘C레벨’의 임원들이 담당하는 책무를 각각 맡는 식이다. 

      최근 금융권에 각종 사건사고들이 끊이지 않은 데 따라 해당 개정법안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모양새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700억원대 횡령사고가 벌어졌고 지난 6월에는 파생상품 평가방식을 잘못 사용하면서 1000억원대 손실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외에 BNK경남은행 횡령사건, DGB대구은행 불법 증권계좌 개설 등 다수의 금융사고가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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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 윤수민 기자)

      금융회사 내 책무구조도 논의에 불이 붙자 회계법인과 국내 대형 로펌을 향한 금융지주들의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우리금융지주는 삼일회계법인, 신한금융지주와 KB금융지주는 딜로이트안진, 하나금융지주는 삼정KPMG 등과 협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내 대형 로펌들의 문도 두드리고 있다. 법무법인 율촌이 가장 활발히 국내 금융지주와 소통하고 있다. 율촌은 신한금융지주와 우리금융지주 등과 책무구조도 관련해서 합을 맞추고 있고, 김앤장법률사무소나 법무법인 세종 등도 4대 금융지주 위주로 자문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 국내 대형 로펌 파트너는 “아직까진 책무구조도 도입이 초기인 만큼 관련 시스템을 정비하는 단계”라며 “컨설팅 개념의 회계법인이 앞단에 서 있는 개념이고 향후 실무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로펌의 역할도 점차 커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국내 4대 금융지주 가운데선 우리금융지주와 신한금융지주가 가장 앞단에 있다는 전언이다. 우리금융지주는 올해 초 책무구조도 논의가 시작됐을 무렵 발 빠르게 이사회 안건으로 해당 내용을 올렸다.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 역시 직접 해당 사안을 챙기고 있다는 후문이다. 신한금융 역시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나서 금융 당국과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는 전언이다. 

      금융사지배구조법 개정안의 가장 큰 핵심은 금융사 내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가 어느 직급까지 오를 수 있는지다. 이 때문에 ‘금융판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으로 불리기도 한다. 건설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건설사의 최고경영자(CEO)가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중대재해법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금융회사지배구조법 개정안 역시 이론상으론 CEO 직급인 은행장도 내부통제 책임을 져야할 수 있다. 원칙상 특정 부문의 최고 임원이 책임을 지는 구조지만 CEO도 내부통제 위험이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또 조직적으로 이뤄졌는지를 살펴야 한다. 만약 이를 어긴다면 금융위로부터 해임요구, 6개월 이내 직무정지, 문책경고 등의 조치를 받을 수 있다. 

      은행장이나 회장을 비롯한 임원 인사에 민감한 금융지주 특성상 금번 금융사지배구조법 개정안과 관련해 일찍부터 사고 방지를 위해 힘을 쏟고 있다는 분석이다. 자칫 CEO가 내부통제와 관련해 징계를 받아 경영 공백이 생길 경우 금융사 전반에 걸친 리스크로 전이될 수 있는 탓이다. 실제로 작년 중대재해법 도입이 논의됐을 당시 국내 로펌들을 향한 건설사들의 문의가 빗발쳤다는 후문이다. 

      다만 개정되는 금융사지배구조법은 은행장이나 회장 등 CEO 처벌에 초점을 맞추기보단 책임구조를 명확히 한다는 데 주안점이 있다는 의견이다. 즉 문제가 발생한 부문의 실무 임원이 일차적인 책임을 지고 해당 시스템이 잘 진행되는지 CEO가 관리하는 데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한 국내 시중은행 고위 임원은 “책무구조라는 것이 수학 문제를 풀듯이 정해질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정착하기까진 시일이 필요할 것”이라며 “금융지주가 우선적으로 시스템을 정비해야 하는 만큼 외부 자문사 선임을 통해 기틀을 닦는 과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