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적인 영업방식의 추진력 강한 스타일
메리츠證 CRO 출신 대표 선임과 정반대
김 내정자, 회장 신임 절대적…호불호 갈려
-
‘IB(투자은행) 영업통’ 출신 김성환 개인고객그룹장 부사장이 한국투자증권의 신임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한 데 따라 의외라는 평이 나온다. 최근 증권업계에 여러 위기가 닥치며 ‘내실다지기’가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는 분위기인데, 이와 다소 동떨어져 있다는 점에서다. 앞서 임원 인사를 낸 메리츠증권이 CRO(최고위험관리책임자) 출신 대표이사를 앉힌 것과 반대된다는 해석도 있다.
이번 인사에서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의 결단이 작용했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 회장이 오랜 기간 구상해왔던 인사 구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평이다.
지난 23일 한국투자증권은 그룹 계열사별 이사회를 열고 최고 경영진 인사를 실시했다. 지난 5년 동안 한국투자증권을 이끈 정일문 사장은 증권 부회장으로 승진하고 후임으로 김성환 개인고객그룹장 부사장이 증권 사장으로 승진했다.
신임 대표이사 사장으로 내정된 김 부사장은 1969년생으로 LG투자증권을 거쳐 2004년 한국투자증권에 합류했다. LG투자증권 PF(프로젝트파이낸싱)팀, 한국투자증권에서 프로젝트금융부, 부동산금융담당, IB그룹장 등을 두루 거친 ‘IB(투자은행) 전문가’로 꼽힌다. 교보생명 시절 보험사 최초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도입했고, 동원증권 시절 증권사 최초 PF 전담 부서를 설립하는 등 업계에서 입지전적인 영업통으로 통한다.
김 내정자는 과거 IB 및 개인고객그룹장을 맡았을 당시 상당히 공격적인 영업방식을 펼쳐온 것으로 알려진다. 저돌적으로 성과를 추구해 IB그룹장 시절 한국투자증권 영업수익의 절반가량을 거둬들이기도 했다. 반면 임직원들 사이에선 호불호가 갈린다는 평이 많다. 소위 ‘빡센 영업’을 요구하는 반면, ‘성과는 낸다’라는 면에서 긍정적인 평을 받는다는 의견이다.
최근 증권업계에서 부동산PF 등 IB 부문에서 여러 부실문제가 불거진 점을 감안하면 한국투자증권의 금번 인사가 다소 의외라는 평도 없지 않다. 지난 수년간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국내 증권사들이 너도 나도 ‘IB’를 외칠 당시였다면 자연스러운 인사였을 테지만, 고금리 기조 하에서는 상황이 다소 다르다는 것이다. 최근 해외 대체투자에서 연일 부실 문제가 터지고 있는 데다 국내 부동산PF 사업장들도 EOD(기한이익상실)가 난 곳들이 수두룩하다. 뿐만 아니라 계약서 허위 작성, 부동산PF ‘꺾기’ 의혹 등 내부통제 문제도 연일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로 메리츠증권이나 미래에셋증권 등 비슷한 시기에 인사를 낸 증권사들은 내부통제를 다분히 의식한 인사를 단행했다. 장원재 메리츠증권 새 신임 대표이사 내정자는 2015년부터 메리츠화재 및 메리츠금융지주에서 리스크관리를 맡아왔다. 미래에셋증권 역시 최현만 회장의 퇴진과 김미섭·허선호·이정호 등 '50대 젊은 피'의 승진으로 창업 26년 만의 첫 세대교체가 이뤄진 가운데, 조직 개편을 통해 리스크 관리 부문을 독립시켰다. CRO를 담당했던 인물에 대체투자심사본부를 맡기는 등 투자와 영업 측면에서도 리스크 관리에 힘을 실었다.
금번 한국투자증권 인사를 두고 김 회장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 내정자는 김 회장과는 같은 ‘고려대’ 출신으로 두터운 신뢰관계를 쌓아왔다. 김 내정자가 IB그룹장을 맡은 후 경영기획그룹장, 개인고객그룹장 등을 두루 맡은 점 역시 차기 사장을 염두에 둔 인사였다는 분석도 있다. 한 고위 임원 관계자는 “김 회장은 한번 신임한 임원을 쉽게 바꾸지 않는 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증권업계 관계자는 “이전부터 김 부사장을 후임 사장으로 점찍었다는 소문이 적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물론 한국투자증권이 일부 증권사만큼의 대형 사건사고가 벌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정일문 대표 시절 한국투자증권에서 스타트업 기술 탈취나 내부통제 부실 문제가 불거진 바 있지만 검찰 조사까지 확대되진 않았다.
배경이야 어째됐든, 금번 인사로 한국투자증권에 한바탕 변화가 불어닥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69년생으로 비교적 젊은 50대 CEO가 한국투자증권의 수장을 맡게 되면서 나머지 임원들의 거취에 관심이 쏠린다. 특히 김 내정자와 동갑으로 경쟁구도를 형성해온 배영규 한국투자증권 IB그룹장 전무 등 60년대생 임원들의 향방에 시선이 몰리고 있다.
증권업계 한 고위 임원은 “김 내정자의 나이를 감안하면 회사 내 자리를 지키기 어려운 임원들이 적지 않다”라며 “김 회장의 강력한 신임을 얻고 있다는 점에서 예상을 깨는 인사는 아니었지만 향후 여파를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