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지수 폭락에 최고 기피 부서 된 신탁사업부
5대 시중은행 ELS 연계 상품 14조 넘게 팔아
금감원 현장 조사에 인사 앞둔 임원도 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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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H지수 폭락으로 국내 대형은행들이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국내 5대 시중은행에서 신탁 계정(Vehicle)으로 판매된 H지수 연계 ELS(주가연계증권) 상품만 14조원이 넘는 가운데, 이중 8조원어치가 내년 상반기에 만기를 맞기 때문이다. 내년 상반기까지 H지수가 선을 회복하지 못할 경우, 판매된 상품 대부분이 손실 구간에 진입하게 된다.
인사 시즌을 앞두고 손실 확정 가능성이 높아지자, 은행 내부에선 신탁사업부를 기피하는 분위기도 확산되고 있다. 은행권 순환근무 제도에 따라 연말부터 내년 초까지 있을 인사 이동에서 신탁사업부에 배치될 경우, 내년 상반기 벌어질 '손실 폭탄'의 책임을 떠안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최근 은행권에서는 지난 2021년 집중 판매했던 H지수 연계 ELT(주가연계신탁)의 손실 가능성을 두고 사실상 '비상 체제'에 돌입했다. 지주 차원에서 임원 회의를 통해 손실 규모를 파악하고, 신탁사업부ㆍ지역본부 등 관련 부서들을 모아 사후관리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하는 등 촉각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이다.
ELS 및 ELT는 만기일까지 주가지수 등 기초자산의 가격이 정해진 요건을 하회하지 않으면 원금과 이자를 지급하는 파생상품이다. 증권사가 ELS를 발행하면, 은행들은 신탁 비히클을 씌워 ELT로 재구성해 고객에게 판매한다. 원금손실구간은 대부분 기준가의 50~55%에서 형성되고, 만기는 대부분 3년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H지수가 지난 2021년(1만2000포인트) 대비 6000선 이하로 떨어지는 등 반토막이 나면서, 2021년 판매된 ELS 관련 상품들의 손실 가능성이 높아졌다. 내년 상반기까지 지금보다 주가가 최소 30%는 올라야만 확정 손실을 면할 수 있는데, 중국 경기 침체로 상승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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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은행들이 그동안 비이자부문 수익을 늘리기 위해 신탁사업을 키워왔다는 점이다. 국민은행은 신탁부를 WM(자산관리그룹) 소속이 아닌 '금융투자상품본부' 산하의 별도 본부로 독립시켰고, 농협은행도 올해 투자상품 자산관리부문을 신설하면서 최미경 부행장을 최고 임원으로 선임하는 등 사업 규모를 늘려 왔다.
실제로 각 사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ㆍ신한ㆍ하나ㆍ농협ㆍ우리 등 5대 시중은행의 올해 3분기 기준 누적 신탁 수수료 이익은 7267억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10% 이상 늘었다.
이로 인해 국민은행(4조7447억원), 신한은행(1조3329억원), 하나은행(7380억원), 농협은행(7330억원) 등 신탁 판매를 늘려온 시중은행들은 내년 상반기 조 단위에 가까운 규모의 손실 가능성이 전망되는 상황이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증권사들은 판매 옵션이 많지만, 은행에선 판매할 수 있는 상품이 신탁과 펀드밖에 없다. 결국 비중으로 따지면 증권보다 은행 손실이 더 클 것"이라며 "2021년 당시 H지수가 고점을 찍자, 은행들이 안정성을 자만하고 H지수 연계 상품을 집중적으로 판 대가"라고 지적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오는 12월 임원 인사와 내년 1월 직원 인사를 앞둔 은행권에서는 '신탁사업부만 피하자'라는 분위기가 감돈다. 부서에 배치되자마자 H지수 연계 상품들의 대규모 손실이 임박하면서, 관련 부서들을 대상으로 책임 공방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최근 금융감독원이 H지수 연계 상품을 판매한 은행과 증권사를 대상으로 전수 조사에 착수한 것도 흉흉한 분위기를 가중시키고 있다. 특히 판매 규모가 가장 큰 국민은행에서는 금감원 은행검사1국이 현장 조사까지 실시 중이다.
일각에서는 전ㆍ현직 신탁부 담당 임원들의 거취 문제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올해 말 임기 만료를 앞둔 이상화 국민은행 금융투자상품본부장, 홍석영 신한은행 투자상품그룹장의 임기 연장도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직 임원들 사이에서 해당 직무에 대한 보수적인 의견이 나오면서, 2021년 당시 은행 신탁부를 이끌었던 김종란 KB저축은행 준법감시인과 정연기 우리금융캐피탈 대표, 임동순 NH아문디자산운용 대표의 임기 연장 여부도 은행권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내부에서도 신탁부서에 배치되면 독박쓴다는 인식이 커져 최고 기피 부서가 됐다"며 "금감원의 압박 수위도 높아지고 있어 부담이 크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