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번가 투자하겠다"며 SK그룹 '지급보증' 요청한 메리츠
입력 2023.11.29 07:00
    최근 SK스퀘어, 큐텐에 11번가 협상 결렬 통보
    메리츠증권의 SK스퀘어 지급보증 요구가 발단
    베트남 마산그룹 지분 거래도 지급보증 요구에 난항
    SK에코플랜트는 메리츠 참여해 유동성 대응
    •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SK스퀘어는 이달 중순 큐텐(Qoo10)에 11번가 매각 협상을 진행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했다. 11번가 재무적투자자(FI) 자금을 돌려주는 것이 급한 SK스퀘어가 먼저 협상 결렬을 통보한 배경에 관심이 쏠렸다. 그도 그럴 것이 큐텐과의 협상은 사실상 11번가 FI의 동반매도청구권(드래그얼롱)을 SK스퀘어가 대리 행사해 회수 방도를 마련해주는 형국이었다.

      큐텐은 SK스퀘어와 함께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서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목표로 11번가에 관심을 가져 왔다. 11번가와 큐텐 주식 교환 등 다양한 논의가 이어졌지만 SK스퀘어는 큐텐의 기업가치나 장기 비전에 의문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큐텐이나 새 투자자가 나서 11번가 지분을 직접 사는 것이 아니면 FI의 회수도 확신하기 어렵다.

      신규 투자금 조달 가능성도 불투명했다. IMM인베스트먼트와 코스톤아시아가 메리츠증권으로부터 5000억원을 조달해 펀드를 결성한 후 이를 큐텐에 투자할 예정이었다. 이때메리츠증권의 요구 조건이 상당히 빡빡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난이도 높은 거래니 메리츠증권의 요구 금리도 높을 수밖에 없었다.

      메리츠증권은 SK스퀘어에 지급보증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메리츠증권의 투자금이 큐텐의 지분으로 전환되면 회수 확실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SK그룹에 기대 안정성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SK스퀘어 입장에선 직접 돈을 받는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지급보증에 응하기 어려웠고, 결국 먼저 협상 테이블을 접은 것으로 풀이된다. 큐텐이 11번가를 확보하려면 향후 진행될 매각 절차에서 직접 자금을 지불해야 할 전망이다.

      SK그룹은 2018년 동남아투자법인을 세워 베트남 식음료 1위 마산그룹(Masan Group), 베트남의 삼성 빈그룹(Vingroup) 등에 투자했다. 작년부터 시장의 유동성이 줄며 SK그룹의 확장 정책에도 제동이 걸렸고, 주요 계열사 자금이 들어간 동남아투자법인의 회수 부담도 커졌다.

      올해도 이들 자산에 대한 매각 시도가 있었다. 메리츠증권이 관심을 보였는데 역시 SK그룹에 안전장치를 요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SK그룹은 FI와 함께 베트남 기업에 투자하면서 투자 가치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베트남 기업 측에서 담보를 보충해주고, 손실 폭이 더 커지면 SK그룹이 투자자에 앞서 손실을 감수하는 조건을 달기도 했다. SK그룹이 투자에서 손을 떼면 안전보장 의무도 사라지는데 메리츠증권은 손실 위험을 막기 위해 SK그룹 측에 지급보증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메리츠증권이 큐텐이 투자금을 돌려주지 못할 것에 대비해 SK스퀘어에 지급보증을 요구하며 거래가 무산됐다”며 “마산그룹 투자 지분 거래도 메리츠증권이 SK그룹에 지급보증을 해달라 요구해 깨졌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메리츠증권 측은 "(11번가) 거래 논의 초기에 SK와 큐텐이 해당(지급보증) 조건을 수용하기로 해 실사를 개시한 것"이라며 "이후 지분가치 산정과정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해 거래가 중단됐다"라고 거래 무산 배경을 설명했다.

      국내 증권사의 국내외 부동산 투자 부실 우려가 커지면서 신규 부동산 거래는 거의 사라졌다. 메리츠증권도 부동산 시장 침체의 직격탄을 맞으며 관련 조직을 축소하기도 했다. 앞으로는 기업금융 분야에 힘을 쏟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자금 사정이 아쉬운 기업들은 쥐어짜는 전략이 펼쳐질 가능성이 크다.

      SK그룹 관련 거래에 자주 이름을 보이는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SK그룹은 자본시장을 활용해 발빠른 확장 정책을 폈지만, 유동성 긴축이 장기화하면서 부담이 커졌다. 상장(IPO)이나 M&A를 통한 FI 자금회수는 어려워졌는데, 웬만한 대형 금융사도 SK그룹 투자는 신중한 분위기다. 가장 부담될 때 공격적인 영업을 하는 메리츠증권에 기회가 돌아갈 만하다.

      다른 투자업계 관계자는 “부동산 신규 거래를 하기 어려워진 메리츠증권은 기업금융에 집중하게 될 것”이라며 “고위험·고수익에 익숙한 메리츠증권은 일시적으로 자금 사정이 어려운 회사를 찾아가 높은 금리로 자금을 집행하는 전략을 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SK그룹 계열사 중 메리츠증권의 도움을 받은 곳도 있다. SK에코플랜트는 작년 초 인수한 싱가포르 폐기물 업체 테스(TES)를 인수하며 FI도 유치할 계획이었는데 제안을 받은 사모펀드(PEF)들이 투자 계획을 접었다. 이후 메리츠증권이 수천억원을 들여 TES 인수법인의 소수지분을 확보했다.

      메리츠증권은 올해 리뉴원(구 대원그린에너지) 주식을 교환대상으로 하는 SK에코플랜트 교환사채(EB)에 3236억원을 투자하기도 했다. EB 만기는 30년, 이자율은 8.45%다. 상장을 목표로 하는 SK에코플랜트는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한 투자금이 필요했는데 메리츠증권이 등판해 부담을 덜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