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이후 채안펀드 존재감 옅어…연장 실효성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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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금융당국이 올 연말까지 운영 예정이었던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를 내년 말까지 1년 연장해 운영하기로 했다. 당국은 내년에도 금융 불확실성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연장을 결정했단 입장이지만, 지원대상을 늘리지 않고 단순히 기간만 연장해서는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금융위 대회의실에서 금융시장 현안 점검 및 소통회의를 열고, 지난해부터 가동 중인 37조원 규모의 금융시장 안정화 조치들을 내년 말까지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최대 20조원 규모로 운영돼 온 채안펀드도 내년까지 운영 기한이 연장됐다.
채안펀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회사채 시장의 유동성 경색을 해소하기 위해 처음 시행됐다. 이후 시장에 유동성 위기가 올 때마다 정책펀드로서 자금 '마중물' 역할을 수행해왔다. 코로나19 사태 당시 약 3조원 규모로 조성됐던 채안펀드는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 직후 재가동돼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채안펀드는 현재 공모채의 경우 AA- 이상, 여전채의 경우 A+ 이상 채권만 매입할 수 있다. 또한 수요예측에서 입찰 금리를 민평금리 이상으로만 제시할 수 있다. 이는 채권·단기자금시장 경색에 대비해 시장에 혼란을 주지 않는 선에서 우량물 위주로만 매입한다는 정부의 정책 취지 때문이다.
다만 공모채에 한해 지원대상 범위를 A급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회사채 시장에서 미매각은 주로 A급 이하 비우량물에서 발생하는 경향이 크다 보니, 채안펀드가 들어갈 수 있는 회사채가 제한돼 정책 운영 취지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AA- 이상급 회사채에서 파 이상 금리를 제시해야 하기 때문에 채안펀드가 매입할 수 있는 회사채도 제한적이다. 이 때문에 채안펀드가 사실상 특정 대기업 채권만 매입하는 펀드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채권투자 전문가는 "채안펀드가 담을 수 있는 채권 조건이 제한적이고 대기업 중에선 SK와 롯데의 자금 사정이 어려웠다보니 결국 채안펀드는 SK와 롯데 자산만 담는 SK·롯데 펀드가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채안펀드는 지난 연말부터 올 초에 걸쳐 SK와 롯데의 회사채를 집중적으로 담았다. 채안펀드는 지난해 11월 SK㈜가 발행한 200억원의 CP 중 100억원을 인수해간 것을 시작으로 12월에는 SK㈜가 진행한 2300억원 모집의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1000억원에 가까운 주문을 넣으며 흥행을 이끌었다.
롯데는 더 직접적으로 채안펀드의 덕을 봤다. 지난 연말부터 올 초까지 다수의 롯데 계열사 회사채를 매입했는데, ▲롯데건설(1200억원)▲롯데렌탈(500억원)▲롯데호텔(700억원)▲롯데하이마트(600억원)▲롯데쇼핑(300억원)▲롯데물산(400억원) 등 3700억원 이상을 매입했다. 롯데하이마트와 롯데물산 등은 채안펀드 덕에 간신히 미매각을 면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당국이 단순히 운영 기간만 연장하는 것이 아니라 지원 범위도 A급 이상 비우량물까지 확대해야한단 지적이 나온다.
한 증권사 채권 연구원은 "채안펀드가 레고랜드 사태 이후 회사채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어 준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연초 이후 시장에 다시금 유동성이 돌기 시작하면서 존재감이 많이 줄어든 것도 사실"이라며 "A급을 제외한 대부분의 우량채들은 수요가 충분한 현 시점에서 채안펀드 운영을 1년 더 늘리는 것이 실효성이 있을 지는 의문"이라고 밝혔다.
다만 현 시점에서 당국이 채안펀드의 지원 범위를 A급 이상으로 확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채안펀드에 대한 1년 연장을 결정한 이유가 혹시나 모를 시장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대비책'의 성격이 강하고, 채안펀드에 참여하는 은행들의 반발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앞서 채안펀드에 참여하며 회사채 매입대상이 A급까지 확대될 경우 회사채 비중이 지나치게 많아질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