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신한ㆍ한화증권도 사모펀드 두고 사적화해
실무자 "자본시장법 위반 소지…배임 우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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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상반기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의 대규모 원금 손실이 예상되자, 주력 판매사였던 은행들 사이에서 '사적화해' 가능성이 떠오르고 있다. 최근 젠투파트너스ㆍ라임펀드 등 사모펀드 사태를 기점으로 금융 상품의 손실을 판매사가 일부 보전해주는 분위기가 생기면서다.
다만 은행ㆍ증권 등 금융권 실무자들은 손실 보전 자체가 위법 소지가 있다면서 우려하고 있다. 불완전판매가 아니라는 전제에서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손실 보전이 자본시장법 위반 소지가 있는 까닭이다. 임원들의 경우 배임 혐의에 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은행권에서는 H지수 연계 ELS 상품 투자자들의 손실을 은행이 일부 보전해주는 사적화해에 대한 논의가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기자들과 만나 "일부 은행들이 발표한 ELS 관련 예방 조치들은 면피 조치를 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은행들은 판매 과정에서 자필을 받았거나 녹취한 것 때문에 불완전판매가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금융사는 소비자 상황을 정확히 파악해 가입 목적에 맞는 적합한 상품을 권유하는 적합성 원칙을 따라야 하기 때문에 이를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원칙적으로 금융투자상품에 대한 원금 손실 가능성을 고객이 인지할 경우, 불완전판매가 없었다면 판매사는 원금 손실에 대해 책임이 없다. 그러나 당국이 시중은행들의 파생상품 판매 관행을 향해 비판의 수위를 높이면서, 은행들 사이에서 불완전판매 유무를 떠나 원금의 20~40%를 일부 보전해 주는 방향을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신한투자증권과 한화투자증권 등 판매사들이 젠투파트너스ㆍ라임펀드 같은 사모펀드의 손실을 보전해준 것도 발단이 됐다. ELS보다 더 높은 투자책임 원칙이 투자자에게 제공되는 사모펀드도 사적화해를 명목으로 투자금 상당수를 물어줬는데, ELS 사례도 이를 따라야 하지 않겠느냐는 시각에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개인고객 손실이 커지면, 금감원이 분쟁조정 절차를 통해 원금의 일정 부분 이상 배상할 것을 권고하기도 한다"며 "절차까지 가기 전에 개인이나 기관 투자자들과 사적화해를 진행하는 것이 차라리 마음 편하다는 인식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실무자들 사이에선 사적화해가 향후 법적 공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자본시장법(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제55조에 따르면 금융투자업자는 사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금융투자상품의 매매 및 그 밖의 거래와 관련해 정당한 투자자가 입은 손실의 전부 또는 일부를 사후에 보전해 주는 행위가 금지된다.
사적화해를 진행한 담당자들이 업무상 배임 행위로 적발될 가능성도 있다. 자기책임원칙을 벗어난 행위는 위법행위로서, 원칙적으로 경영판단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아 업무상 배임에 해당한다는 판결도 있는 까닭이다. 지난 디스커버리 펀드 사태때도 IBK기업은행 측은 배임의 소지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추가적 배상을 거절한 바 있다.
금융 변호사는 "손실 보전 행위는 자본시장법에서 금지하기 때문에 법적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지금까지 사적화해를 제공한 판매사들은 당국의 암묵적 합의를 거쳤기 때문에 문제되지 않았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올해 10월 BNK자산운용은 펀드 상환이 재차 지연돼 투자자들의 민원이 발생하자, 계열사에게 연계 상품을 양도해 펀드를 청산하고 이를 투자자들에게 상환하는 방식으로 손실을 우회 보전했다. 이에 금감원은 5000만원 상당의 과태료와 임직원 징계조치를 내렸다.
한 증권사 WM(자산관리그룹)부문 임원은 "지금은 당국이 허용한다지만 정치적 기조에 따라 언제든지 태도를 바꿔서 문제삼을 수 있는 일"이라며 "올해 SK증권이 고객들의 랩ㆍ신탁 손실을 보전해주다 금감원 조사를 받은 것이 대표적 사례"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