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즉시 소각, 지주사 전환" 등 요구
웰스토리 및 패션 사업 매각 제안
엘리엇과 분쟁 중 또 한번 투자자 리스크 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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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물산 지분 0.62%, 금액으로 환산하면 불과 1200억원을 투자한 행동주의펀드에 삼성물산은 또 다시 좋은 먹거리가 됐다. 2015년부터 불거진 미국계 행동주의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와의 갈등이 봉합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삼성물산의 전선(戰線)이 더욱 넓어지게 됐다.
영국계 행동주의펀드 팰리서캐피탈(Palliser Capital)의 요구는 단순하다. 삼성물산의 기업가치가 매우 저평가돼 있기 때문에 주주환원을 확대하고, 지주회사 전환 등 지배구조를 개선해 가치를 끌어올리란 제안이다. 팰리서캐피탈이 언급한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논제를 차치하고, 삼성물산의 현재 시가총액은 약 20조원으로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가치(5.01%)에도 못 미치는게 현실이다.
현재 삼성물산은 계열사로부터 받은 배당금만을 재원으로 주주들에게 '재배당'하고 있다.
팰리서캐피탈은 ▲현재의 배당정책을 기본으로 사업을 통해 벌어들인 현금을 추가로 주주들에게 환원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패션 및 F&B(웰스토리) 사업부문을 비핵심 사업으로 규정하고 해당 사업을 매각 또는 분할 상장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확보한 3~4조원의 자금을 주주환원에 투입할 수 있단 설명이다.
삼성물산은 현재 자사주 약 13%(보통주 기준)를 보유하고 있다.
회사는 올해 초 주주환원정책을 발표했는데 2025년까지 자사주 전량을 매각한다는 계획이다. 팰리서캐피탈은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소각하고, 향후 취득할 자사주 또한 소각 계획을 명확히할 것을 요구했다.
현재 삼성물산은 3명의 사장단이 건설·상사·리조트 부문장 겸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팰리서캐피탈은 측은 ▲단일화 한 대표이사의 선임 ▲고위경영진의 주식연계형 보상 및 인센티브 체계 채택 등을 요구하기도 했다.
팰리서캐피탈은 삼성그룹의 가장 오래된 숙제 중 하나인 지배구조개편의 해결책(?)도 제시했다. ▲삼성물산과 삼성전자, 삼성SDI를 모두 인적분할 한 후 투자회사를 합병해 하나의 지주회사로 통합하고, 지주회사 아래 삼성전자·물산·SDI·SDS·바이오 등 계열사를 위치하는 구조를 제안했다. 이후 지주회사가 각 사업회사의 지분율을 현행 지주사 행위제한 요건에 30% 이상씩 사들이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팰리서캐피탈은 다른 국가에서도 유사한 전략을 펼친 사례가 있다.
지난 10월 일본의 게이세이 전철 주식회사(Keisei Electric Railway)를 대상으로 보유하고 있는 도쿄 디즈니랜드 운영사(Oriental Land)의 주식(약 14조원) 매각을 요구하기도 했다.
올해 3월엔 영국의 자동차 딜러 기업 펜드라곤(Pendragon)이 매각 거래에 실패하자 이사회 구조 개편 요구했고, 1월엔 영국 석유 및 가스 회사인 케른에너지(Capricorn energy)를 대상으로 주주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사실 팰리서캐피탈의 제안 이후에도 삼성물산의 투자자들이 동요하는 모습이 나타나진 않았다. 삼성물산의 주가는 전일 종가와 거의 유사한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고 특정 투자자의 움직임도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이는 삼성물산을 향해 수차례 반복된 외부 공세에 대한 투자자들의 학습효과가 그 원인으로 보인다. 또 삼성물산 자체가 개인 및 기관투자자들의 관심에서 이미 멀어져버린 기업이란 점도 원인중 하나로 거론된다.
실제로 삼성물산은 지난 2015년 엘리엇매니지먼트로부터 기업가치제고 요구를 받아 현재까지도 분쟁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엔 영국계 자산운용사 시티 오브 런던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City of London Investment Management Company Limited)가 자사주 매입 제안을 요구했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물산이 외부 투자자로부터 공격을 받은게 처음도 아니고, 이번 (팰리서캐피탈의) 제안도 신선한 내용을 찾아보기 어렵다. 사실 기관투자자, 개인투자자 구분 없이 가장 관심을 갖지 않는 기업(주식종목) 중 하나를 꼽아 공격한 셈이다"며 "(행동주의펀드의 개입으로) 주가 상승으로 인한 차익을 노리는 전략이라면 상당히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불구, 글로벌 1위 반도체 기업 삼성전자의 대주주이자, 한국 재계 서열 1위 삼성의 사실상 지주회사가 외부의 공세에 매번 시달리고 있다는 점은 기업 경영진 및 투자자들이 고려해봐야 할 문제로는 꼽힌다.
2015년 발표한 제일모직과의 합병 시너지는 사실상 전무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상황에선 건설·상사·패션·리조트 개별 사업부 모두 성장세를 기대하긴 어려운 상황이고 뚜렷한 타개책이 보이지 않는 게 현실이다.
사실상 그룹 지배구조의 최상단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컨트롤타워 역할과 권한은 갖지 못했다. 건설부문이 주도해 EPC 경쟁력 강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는 있지만 그룹의 주요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삼성전자 사업지원TF의 위상엔 미치지 못한다.
삼성전자의 대주주란 타이틀을 갖고 있지만, 삼성전자가 불황을 겪을 땐 오히려 그 여파는 삼성물산 투자자들에게 더 크게 다가온다. 삼성물산 주주환원재원의 대부분은 삼성전자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삼성물산의 대주주로서 가장 책임 있는 의사결정을 내려야하는 이재용 회장과 오너일가의 지분율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해 이젠 삼성물산 지분까지 팔아야 하는 상황까지 왔는데 오너일가의 현재 지분율은 33% 수준이다. 이는 최악의 상황,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저지할 수 있는 지분의 마지노선이다.
이 같은 맥락을 빗대어 본다면 삼성물산을 상대로 난무하는 행동주의 펀드는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그간 삼성물산이 이런 외부공세에 대응하는 모습이 되레 행동주의 '공격'의 빌미가 된다는 지적도 있다. 이른바 '경제적 이익'을 노리고 접근한다는 것.
삼성물산은 과거 합병에 반대하며 소송을 제기한 엘리엇매니지먼트와 비밀합의를 통해 약 660억원을 지급한 바 있다. 물론 이는 행동주의펀드 엘리엇에만 해당하는 내용으로 합병에 반대한 일성신약과 개인투자자들에겐 이 같은 합의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삼성물산은 일성신약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하고 그동안 지급한 배당금 175억원을 돌려받는 판결을 이끌어 냈다.
최근 엘리엇은 또 한번 삼성물산을 상대로 260억원을 더 받아내기 위한 약정금반환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삼성물산은 최근 법무법인(화우)을 선정하고 대응에 나섰다. 엘리엇이란 악몽의 결론에서 벗어나기까진 아직 수년의 시간이 더 걸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