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자' 사라진 롯데…'세대 교체' 강조하지만 내부 중심 축은 모호
입력 2023.12.13 07:00
    60대 계열사 대표 8명 교체, 50대 대표들 대거 포진
    젊어진 건 맞지만…'위기 관리에도 능할까' 우려도
    신사업 힘 싣지만…핵심 사업 관리·조절 중심축 모호
    신유열 전무 승진…지주 조직 '보좌' 역할 강화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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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롯데그룹이 올해도 ‘세대 교체’에 방점을 둔 임원 인사를 단행했다. 주요 사업들이 계속 부진한 가운데 계열사 대표들을 대거 교체하며 위기감을 드러냈다. 지난 몇 년간 쇄신을 강조해왔고, 신동빈 회장의 장남 신유열 롯데케미칼 상무가 승진하며 경영 수업을 본격화한 터라 자연스러운 수순이라는 평가다. 다만 과제가 산적한 그룹의 안살림을 큰 관점에서 조율할 만한 인물은 찾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롯데그룹의 2024년 임원 인사에선 부회장 1명, 사장 3명의 승진자가 나왔다. 그룹의 양 축인 유통과 케미칼 부문 실적이 부진하고 건설, 부동산 부문 등도 상황이 좋지 않다보니 승진 폭이 크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선방하고 있는 식품군에서 유일한 부회장 승진자를 배출했다.

      퇴진 및 교체 인사는 많았다. 60대 롯데 계열사 대표이사 8명이 물러났고, 이를 포함한 계열사 대표이사 14명이 교체됐다.

      그룹 중추인 롯데케미칼에선 김교현 화학군 총괄대표 부회장이 물러났다. 5년간 화학부문을 이끌어 온 수장의 퇴진이다. 롯데지주 ESG경영혁신실장과 롯데헬스케어 대표이사를 겸하던 이훈기 사장이 그룹 화학군 총괄대표를 맡게 됐다. 이 대표는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나와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에서 경력을 시작했다. 화학부문에 잔뼈가 굵은 인물로 사실상 ‘본업’으로 돌아왔다는 평이다.

      롯데케미칼은 국내는 물론 말레이시아 법인(롯데케미칼타이탄) 등 실적 부진과 수익성 악화가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인도네시아 라인 프로젝트,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인수에 따른 재무 부담도 이어지고 있다. 신임 대표 앞에 놓인 과제가 가볍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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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통 부문은 김상현 롯데쇼핑 부회장과 정준호 롯데백화점 대표, 강성현 롯데마트 대표가 유임됐다. 실적 부진에 빠진 최경호 세븐일레븐 대표, 나영호 롯데e커머스(롯데온) 대표는 물러났다. 부문 전체적으로 비용 관리에 집중해 온 만큼 내년부터는 수익성 개선을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김상현 부회장의 연임은 현재 진행 중인 사업의 전략을 이어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롯데는 '온라인 그로서리(식료품)' 부문을 미래 먹거리로 낙점하고 투자를 이어왔다. 작년 영국 리테일 테크기업 오카도와 파트너십을 맺고 자동화 물류센터 설립에 나섰다. 롯데쇼핑은 올해부터 2030년까지 총 1조원을 투입해 전국에 총 6개의 자동화 물류센터를 설립하는 중장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대규모 투자가 들어가는만큼 시너지 발현을 위해 총력을 다하는 분위기로 전해진다.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커머스 사업을 이끌 새 수장으로는 박익진 어피니티에쿼티 파트너스 글로벌 오퍼레이션그룹 총괄헤드를 영입했다. 현재 내부에서 흑자전환을 급선무로 두고 있어 비용절감에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이커머스 시장은 쿠팡이 흑자 행진을 이어가며 절대강자 자리를 지키고 있고 최근에는 중국의 알리익스프레스 등 ‘초저가’를 앞세운 업체들의 약진이 무섭다. 면세업은 중국 경제 부진으로 사실상 ‘과거와 같은’ 수익을 내기 쉽지 않다는 평이 많다.

      한국피앤지와 홈플러스를 거친 김상현 부회장, 신세계그룹에서 영입된 정준호 대표 등 외부 출신 중역들이 중심을 잡고 유통분야 현안들을 타개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분석이다.

      올해 가장 큰 관심사였던 신유열 롯데케미칼 일본지사 상무는 이번 인사에서 전무로 승진해 한국에서의 첫 보직을 맡았다. 신 전무는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 겸 롯데바이오로직스 글로벌전략실장을 맡으며 그룹의 신사업을 발굴·총괄하게 된다. 신 회장이 힘을 주고 있는 신사업인 바이오에 신 전무도 발을 걸치는 모습이 됐다.

      내년부터 신유열 전무의 본격적인 경영 수업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신 전무가 경영 전면에 나서기까지 승계 작업을 조율하고 지원할 ‘2인자’의 등장은 아직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평이다.

      초창기부터 신동빈 회장을 가까이서 보좌해 온 인물들은 최근 하나 둘 롯데를 떠났다. 2020년 황각규 전 롯데지주 대표이사 부회장이 퇴진했고, 작년 송용덕 전 롯데지주 부회장이 물러났다. 올해는 고 신격호 명예회장과 신동빈 회장의 비서를 맡으며 측근에서 오너 일가를 보좌해 온 류제돈 롯데물산 전 대표가 용퇴했다.

      향후 특정 인물보다는 롯데지주 조직이 신 전무를 보필하는 역할을 중점적으로 맡을 것이란 관측이다. 승진 폭이 크지 않던 이번 임원 인사에서 상대적으로 롯데지주가 약진하기도 했다. 3명의 사장 승진자 중 2명이 지주에서 나왔고, 지주 경영개선실·경영혁신실 출신이 대거 요직에 배치됐다.

      롯데 측이 주요 보직에 50대 대표이사를 포진시키는 등 최근 ‘세대 교체’에 방점을 두고 있지만 과연 부진한 사업들을 개선할 ‘구원 투수’ 역할을 해낼 지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핵심 사업들이 부진을 겪으면서 롯데 그룹은 향후 그룹 전반의 포트폴리오 관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의 숙제가 놓여 있다. 바이오 사업도 초기 투자 단계라 성과 실현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롯데정밀화학의 두산솔루스(현 솔루스첨단소재) 투자, 롯데쇼핑의 한샘 투자 등 투자 건들도 아직 성과가 드러나지 않아 ‘복병’으로 산재해 있다.

      롯데그룹에 정통한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현재 롯데는 그룹 전반적으로 현금 수요는 많은데 돈 나올 구멍은 딱히 없다 보니 유동성 관리가 가장 중요한 숙제”라며 “공식적으로는 이동우 지주 부회장이 ‘2인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하지만 황각규 부회장 퇴진 이후로 롯데에서 부회장이 과거만큼 전권을 쥐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어 “정말 세대교체를 하려면 새로운 사업이 있어야 하는데, 포트폴리오는 그대로인 상황에서 베테랑들을 내보내고 젊은 인사를 올린다고 효과가 나타나긴 어렵다”며 “진취적으로 나가야 하는 신사업이 아닌 위기 관리가 최우선인 성숙 사업엔 오히려 경험과 노련미가 중요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