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 사태 당시 '회계펌 감사 책임론' 대두
충당금 적립하란 조언 밖엔…금융당국 가이드라인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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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내 금융회사들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의 만기를 속속 연장하면서 자산건전성 관련 감사에 나서야하는 회계법인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부동산 시장의 위기가 현실화하면 PF 사업장의 채무불이행(디폴트)이 연쇄적으로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추후 금융사의 부실자산이 겉잡을 수 없이 급증하게 되면, 이에 따른 회계법인들도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단 불안감이 감지된다.
최근의 부동산 위기는 2011년 저축은행 사태 당시와 유사하다. 정부 주도로 부동산 개발 사업이 호황을 맞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부동산 거품이 꺼지기 시작했다. 개발사업에 공격적으로 자금을 댔던 저축은행들은 원금 회수가 어려워지며 줄파산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당시 저축은행을 대상으로 감사를 수행했을 회계법인에 책임론이 제기됐다. 감사 대상 기업이 제공하는 장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는 회계법인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감사가 부실했다는 비판이 일었고 저축은행 후순위채 투자자들이 외부감사인인 회계법인을 대상으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는 일도 발생했다.
일련의 사태를 경험했던 회계법인들은 과거의 사례가 되풀이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부동산 개발사업에 대출을 제공한 금융사들은 대출이자를 받지 못하더라도 만기를 지속해서 연장하는 중이다. 최근 들어 정치권에서 PF 사업장들이 대출 만기 연장을 통해 연명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직접적으로 우려를 표하거나 금융당국이 나서 PF 사업장을 대상으로 한 옥석가리기가 필요하다는 언급이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계 관계자들은 내년 4월 총선까진 PF 관련 대출 만기가 꾸준히 연장될 것이란 의견에 입을 모으고 있다. 하나의 PF 사업장에서 디폴트가 발생할 경우 타 사업장으로까지 그 분위기가 빠르게 번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일단 내년에 치러질 가장 큰 정치 이벤트 전까지 추이를 지켜보겠단 것이다.
국내 증권사 한 관계자는 "(해당 증권사는) 브릿지론 이자를 받지 못하더라도 만기를 꾸준히 연기하고 있는데 받지 못한 이자가 쌓여가고 있는 상황이다"며 "금융당국으로부터 압박이 일부 있기도 하고 금융 비용이나 건자재값 상승분을 생각하면 부동산 프로젝트 자체를 진행시킬 수가 없어서 만기 연장 외엔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기준금리 조기 인하, 부동산 시장 회복 등을 만기 연장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 업황 회복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금리 인하 가능성이 점쳐지는 내년 하반기까지도 업황이 회복되지 않을 경우 만기가 연장되고 있는 대출자산의 디폴트가 발생하면서 금융사들의 부실자산이 크게 증가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현재 금융사들은 원리금 연체가 없는 대출의 경우 부실자산으로 분류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부실 위험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회계사들은 향후 자산 건전성 관련 감사 임무를 게을리했다는 오해를 받을지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대출한 사업장들을 모두 꼼꼼히 살피고, 해당 내용이 담긴 사업보고서를 남겨 감사 업무를 게을리하지 않았음을 증명할 서류를 마련해야 한다는 내부의 목소리도 있다.
다만 회계법인들은 현재로선 금융사들에 "충당금을 쌓으라"는 조언을 하는 정도 외엔 마땅한 방안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대형 회계법인 한 감사 담당자는 "만기 연장이 된 PF 대출 건이라고 하더라도 사업 진행상황이나 본PF 전환 가능성을 모두 고려해 리스크 관리위원회 등을 통한 협의 절차를 거쳐 기말에 충분히 충당금을 쌓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조언하고 있다"라며 "만기연장이 된 PF 사업장 중에서도 진행 상황이 여의치 않은 사업장은 개별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