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환원·저평가 개선 요구에…장기전 불가피
지배구조 개선 요구 거센데 '기후 대응' 눈총도
'장기전' 익숙한 투자자들…수년 간 이어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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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삼성을 향한 글로벌 투자자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올해 들어서만 세 번째로 외국 행동주의 펀드가 삼성물산을 대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세계 최대 기관투자자 연합에서는 삼성전자를 ‘주요 감시 대상’으로 지정하고 최근 기후 대응 촉구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해외 투자자들의 삼성을 향한 관심이 그 어느때보다 높은 가운데 지배구조 및 환경 경영 과제가 단기간 해결되는 문제가 아닌 점을 고려해 삼성이 ‘장기전’을 준비해야 할 것인란 관측이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 행동주의 헤지펀드 화이트박스어드바이저스(Whitebox Advisors)가 최근 삼성물산 측과 만나 명확한 자본 배분 계획을 도입할 것을 요구했다고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삼성물산 지분 1억 달러(약 1300억원) 규모를 보유하고 있는 화이트박스는 삼성물산 주식이 순자산 가치 대비 68%가량 디스카운트(할인)된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고 봤다. 주주 환원을 지지하는 경영진 보상구조 시행을 통해 이러한 격차를 줄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화이트박스는 2017년부터 삼성물산에 투자하고 있으며, 2020년에는 LG그룹의 계열분리에 반대하기도 했다.
이달 6일엔 삼성물산 지분 0.62%를 보유한 영국 행동주의 펀드인 팰리서 캐피탈(Palliser Capital)이 삼성물산의 주가와 실질적인 기업 가치에 약 250억 달러(약 33조원)의 격차가 있다며 삼성물산 주가를 부양하기 위해 지배구조를 개선할 것을 촉구했다. 팰리서 캐피탈의 공동 설립자이자 CIO(최고투자책임자)는 과거 엘리엇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반대 건을 이끌었던 경험이 있다.
지난달엔 영국계 행동주의 펀드 시티오브런던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City of London Investment Management Company Limited)는 삼성물산에 주당 배당금을 지난해 2300원에서 올해 4500원으로 늘리고 내년까지 50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하라고 요구했다.
연이어 행동주의 펀드가 요구에 나서자 복잡한 사업과 지배구조 때문에 ‘만년 저평가주’로 꼽히는 삼성물산의 주가도 최근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삼성물산 주가는 지난 10월 27일 10만3200원에서 14일 장중 13만원을 넘어섰다.
시장에선 행동주의 펀드들이 주가 상승에 따른 차익실현을 노리고 주주관여는 단기간에 그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이들이 요구하는 점들이 오랜 시간 투자가 필요한 점을 고려할 때 쉽게 합의가 도출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최근 엘리엇이 또 삼성물산을 상대로 약정금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하는 등 삼성과 행동주의 펀드와의 ‘완전한 이별’이 좀처럼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 의결권 자문업계 관계자는 “삼성물산이 흔들리면 삼성그룹 자체가 흔들리는데 한 곳도 아니고 여러 곳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니 삼성 측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통상 주주관여를 오랜 기간 준비하기 때문에 펀드들도 만반의 준비를 해왔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삼성의 ‘기후 대응’에 대한 해외 투자자들의 눈초리도 매섭다. 탄소 감축을 단기간에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닌만큼 장기적으로 글로벌 시장의 감시를 준비해야 한다는 관측이다.
올해 6월 글로벌 투자자 연합인 ‘CA100+(Climate Action)’ 이니셔티브는 삼성전자를 ‘포커스 그룹(Focus Group)’에 추가해 예의주시하고 있다. 해당 이니셔티브는 최근 삼성전자에 기후 대응 조치를 촉구하기 위한 준비에 돌입했다고 전해진다.
CA100+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2017년 출범한 세계 최대 기관투자자 연합이자 국제협약이다. 올해 기준 700곳의 멤버가 가입했으며 이들의 운용 기금은 총 68조달러(한화 약 8경8000조원)에 이른다. 미국 최대 연기금인 캘리포니아 공무원 퇴직연금(CalPERS), 세계 3대 연기금인 네덜란드 연기금 자산운용(APG), 블랙록, JP모건, 골드만삭스, 스테이트스트리트 글로벌, 슈로더 등 글로벌 주요 기관투자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투자자들은 기후변화에 큰 영향을 미치는 기업들을 포커스 그룹으로 선정하고 기후 변화와 관련된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삼성전자를 포함해 한국전력공사, 포스코, SK이노베이션 총 4개의 대기업이 현재 CA100+의 감시 선상에 올라 있다.
‘RE100(2050년까지 사용 전력량 100% 재생에너지)’이 기업들의 자율규범이라면, CA100+은 지분을 보유한 투자자가 참여 주체기 때문에 강제성이 더욱 크다. 대응이 부진하면 평판 리스크뿐 아니라 투자자들이 추후 의결권을 행사해 경영에 관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CA100+은 6월 '기업 기후 행동 촉구 2단계(Phase 2)’에 돌입하면서 2030년까지 연장할 것을 확정했다.
해당 이니셔티브는 전 세계에서 5개의 투자자 네트워크로 나눠있는데 이중 아시아 지역은 ‘아시아 기후변화에 관한 투자자그룹(AIGCC)’에 해당된다. 해당 투자자 그룹을 이끄는 APG는 아시아 책임투자총괄인 박유경 전무를 필두로 국내 기업들에 적극적인 ESG 개선을 요구해 온 곳이다.
APG는 지난해 2월 해외 ‘큰 손’ 투자자들 중 처음으로 삼성전자, SK 등 국내 대기업에 본격적인 기후 대응을 요구하는 주주서한을 보냈다. 당시 APG 측은 주주서한이 끝이 아니라 향후 10년을 향한 시작이라는 설명을 더했다. APG 측은 특히 국내 대표 기업인 삼성의 늑장 대응을 지적했는데, 이후 9월 삼성이 5대 그룹 중 마지막으로 RE100 선언에 나섰다.
한 업계 관계자는 “AIGCC에서 삼성전자를 주시하고 있고 투자자들 사이에서 접근법에 대한 온도차가 있어 일단은 공개 액션이 아닌 삼성 측과 대화부터 시작하려고 한다”며 “해당 투자자 연합을 이끄는 APG가 과거에도 10년 이상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백혈병 논란, 지배구조 문제 등에 관여해왔던 점을 고려하면 쉽게 일단락될 이슈가 아닌 점을 삼성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