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 '훅' 인수 이후 두번째 글로벌 M&A
글로벌 명품·패션시장 본격 진출 포석
파페치의 몰락만 봐도 쉽진 않은 시장
'韓아마존' 쿠팡, 명품 시장도 성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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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쿠팡이 파산 위기에 직면한 글로벌 명품 플랫폼 기업 파페치(farfetch)의 구원자로 나섰다. 이번 거래로 파페치는 부도 위기를 면했고, 쿠팡은 글로벌 인지도 상승과 명품·패션 부문 경쟁력 강화를 꾀하게 됐다. 공산품 중심의 빠른 배송을 내세워 ‘한국의 아마존’으로 커 온 쿠팡이 과연 럭셔리 생태계에서 어떤 성장 전략을 펼지 관심이 모인다.
이번 쿠팡의 파페치 인수는 김범석 쿠팡Inc 의장을 필두로 쿠팡의 모회사인 쿠팡Inc(미국)에서 주도했으며, 극비로 진행되다보니 국내에서는 ‘깜짝 인수’ 소식을 접했다.
쿠팡은 파페치에 5억달러(약 6515억원)를 투입한다. 쿠팡Inc와 쿠팡의 주주인 미국 사모펀드 그린옥스 캐피탈(Greenoaks Capital)은 합자회사 ‘아테나’를 설립하고, 아테나는 사업 및 자산 인수대금 명목으로 파페치에 5억달러를 지급한다. 아테나 지분은 쿠팡Inc가 80.1%, 그린옥스 펀드가 19.9%를 보유한다. 파페치는 비상장사로 전환된다.
파페치는 포루투갈 출신 사업가 호세 네브스(José Neves)가 2007년에 설립한 명품 유통 플랫폼이다. 현재 190여 개국 소비자에게 1400여 개의 명품 브랜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버버리, 페라가모 등 명품 브랜드를 취급하고 있고 영국 해로즈, 미국 버그도프 굿맨 등 고급 백화점 제품도 거래한다.
‘패션의 아마존’으로 빠르게 성장한 파페치는 2018년 뉴욕 증시에 화려하게 상장했고, 이후 본격적인 확장 행보가 이어졌다. 회사는 2019년 6억7500만 달러(약 8800억원)를 들여 오프화이트, 팜 엔젤스 등의 브랜드를 보유한 이탈리아 패션 업체 뉴가즈그룹을 인수했다. 코로나19 이후 파산보호 신청을 했던 미국 백화점 니만마커스(Neiman Marcus Group)에 약 2억달러(약 2400억원)를 투자하기도 했다.
온라인 위주였던 파페치가 오프라인 운영에 나서면서 경상 비용이 증가했다. 파페치의 행보에 대해 ‘비싼 일탈’이라는 비판이 이어졌으나 초반은 나쁘지 않았다. 투자자들의 대규모 추가 투자가 이어지고 팬데믹 기간에 명품 수요가 폭발하면서 2021년 초 파페치의 시가총액은 최고점을 기록했다.
파페치는 코로나 특수 이후 급격한 수익성 악화에 직면했다.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럭셔리 수요가 둔화했고 명품 업계와의 갈등도 심화했다. 에르메스, 샤넬, 루이비통 등 대표 명품들이 제3자 유통을 꺼리며 제품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파페치 소유 하에 브랜드 가치가 하락하는 것이 못마땅했던 LVMH(루이비통모에헤네시)는 ‘오프화이트’ 라이선스를 되찾으려 했다.
재무 상황도 악화했다. 파페치가 2027년~2030년 16억달러의 부채를 상환해야하지만 단기간 내에 비용을 충당할 자금이 없다는 우려가 나왔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회사의 등급을 Caa2로 낮췄다. 파페치의 시가총액은 2021년 초 230억달러(약 30조원)에서 최근 100분의 1 수준인 2억5000만달러(약3200억원)로 폭락했다. 지난달 28일 파페치가 3분기 실적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주가는 더욱 요동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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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들은 손을 뗐다. 파페치에 거액을 투자한 리치몬트 그룹은 신규 투자는 없다고 못박았고, 마이클 에반스 알리바바 대표는 파페치 이사회에서 이달 사임했다. 지난 15일 뉴욕타임즈는 파페치가 자금난으로 부도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파페치가 올해 말까지 5억 달러(약 6500억원)의 자금을 구하지 못하면 도산할 위기라는 관측이 나왔다.
파페치 측은 비상장 회사로 전환하기 위한 백기사 찾기에 나섰다. 사모펀드(PEF) 아폴로매니지먼트, 초기 투자자인 카르멘 부스케츠 등과 협상 테이블을 차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과정에서 쿠팡과도 접촉이 이뤄진 것으로 파악된다.
쿠팡의 투자로 파페치는 파산을 면하게 됐다. 진행 중이던 거래도 정리될 예정이다. 지난 2020년 파페치는 리치몬드 그룹이 운영중인 다른 명품 이커머스 육스 네타포르테(Yoox-Net-A-Porter)의 지분 47.5%를 인수하기로 했으나 이번에 완전히 종결되기로 합의됐다. 남은 파페치의 차입금과 전환사채 등은 쿠팡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으로 파악되는 가운데 어떻게 수익성 개선에 나설 지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파이낸셜 타임즈에 따르면 파페치의 창업자이자 대표인 조세 네브스는 회사에 남을 예정이지만 정확한 역할은 쿠팡 등과 논의 중이라고 알려진다. 조세 네브스는 파페치 지분 15%를 소유하고 있었지만 차등 의결권 제도로 투표 권한의 77%를 통제하고 있었다.
파페치 투자는 쿠팡이 2021년 3월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한 후 단행한 첫 대규모 M&A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2020년 7월 싱가포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업체 훅(hooq)을 인수했으나 규모는 크지 않았다. 다만 훅 인수 후 자체 OTT 쿠팡플레이 사업이 본격화한 만큼, 파페치 투자 이후 행보도 점쳐볼 수 있다.
쿠팡은 파페치 인수로 글로벌 명품, 패션 사업 역량 확대를 꾀할 전망이다. 특히 글로벌 기업 인수로 국내뿐 아니라 해외 진출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란 해석이다. 쿠팡은 미국 증시에 상장돼 있지만 대부분의 매출이 국내에서 나오고 있다. 또한 국내 브랜드들이 해외로 진출하는 데에도 힘을 실을 수 있다.
최근 국내에서 알리바바, 테무 등 중국 이커머스 업체들이 '파격적인' 가격 경쟁력으로 기세를 올리고 있다 보니, 쿠팡 측이 럭셔리 시장에서 기회를 모색하는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단기간 턴어라운드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경쟁 업체가 많을뿐더러 글로벌 명품 수요도 둔화하는 추세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2017년 약 10억달러에 에이팩스파트너스(Apax Partners)에 인수된 명품 이커머스 매치스패션(matchesfashion)도 올해 약 6300만 달러에 영국 리테일 거물 마이클 애슐리의 프레이저그룹(Fraser Group)에 매각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명품 브랜드들이 할인을 피하고 자체 유통망을 통하려는 기조가 강해지는 점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명품 브랜드들은 과거 ‘아마존’에 대항하며 파페치 등 럭셔리 전문 이커머스들과 손을 잡고 투자에 나서기도 했지만 수익성 차원에서 다시 통제력을 확보하려는 기조가 강하다.
쿠팡 소비자들은 온라인에서 보고 온라인에서 물건을 사는데, 명품 수요 층은 오프라인-오프라인 소비 경향을 보인다는 점에서도 차이가 난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공산품 위주로 성장한 쿠팡은 그간 본격화하지 못했던 영역에서 성장 동력을 찾았는데 온라인 전환이 느린 럭셔리 패션 부문의 성장 잠재력이 오히려 크다고 봤을 것"이라며 “파페치의 위기도 돌파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데 파페치의 글로벌 유통망과 쿠팡의 로켓배송 노하우가 어떻게 시너지를 낼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