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건설이 뭘 팔아야 하는지는 채권단이 결정할 문제
입력 2024.01.02 07:00|수정 2024.01.02 17:37
    Invest Column
    '도산법'과 '기촉법' 충돌 매번…위헌소지 여전
    워크아웃은 결국 '채권단에 일임한다'가 핵심
    강도 높은 구조조정ㆍ자구노력 수반돼야 '특혜' 시비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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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워크아웃'(Work Out)이란 말의 어원은 80년대 미국 여배우 제인 폰다(Jane Fonda)의 '에어로빅 비디오' (Original Workout)제목으로 알려진다. "운동으로 군살을 빼고 건강을 유지하자". 

      미국 GE의 잭 웰치(Jack Welch) 회장이 "불필요한 사업은 모두 구조조정한다"라는 의미로 이 말을 쓰면서 보편화됐다. 그는 1981년 GE 회장에 취임, 워크아웃을 표방해 사업부 폐쇄와 대규모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건물만 남기고 사람은 다 죽인다"고 해서 나온 '중성자탄 잭'(Neutron Jack)이란 별명도 여기서 비롯됐다. 

      국내에선 위기에 처한 기업의 빚을 탕감하거나 상환만기를 연장하고, 필요하면 신규 자금도 지원하는 방안으로 쓰여왔다. 98년 IMF 외환위기 당시 어려움에 처한 기업들 처리하고자 2001년에 제정한 '기업구조조정 촉진법'(기촉법)이 근거다. 

      제도 시행 이후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은행법ㆍ보험업법ㆍ자본시장법ㆍ금융산업 구조개선법 등의 예외를 적용하는 '초법적' 조항이 상당수 담겨있다. 채권자들의 재산권을 침해한다며 위헌소지가 제기되기도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일몰기한'을 두고 한시적으로 적용하려고 만들었는데…이 제도가 '워낙 편리하다보니' 매번 재연장됐고 올 연말에 6번째 연장까지 이뤄냈다. 그만큼 '특혜시비'도 자주 불거진다. 

      엄연히 도산법이 있는데....

      기업이 빚을 제때 못갚거나 파산위기에 처했을 때. 이를 다루는 근거는 일단 '도산법'(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법률)이 원칙이고 기본이다. 법원이 '심판'이 되어 회생절차를 주도한다. 금융채권이든, 소규모 상거래채권이든, 1000억원짜리 채권자든, 1억원짜리 채권자든 모두 동일한 지위로 대우한다. 회사 부실에 중대책임이 있는 오너경영인은 배제한다. 회생가능성이 없으면 파산시키고 골고루 빚잔치를 시작한다. 어느 나라든 비슷하다.  

      반면 기촉법은 철저히 은행이나 보험사 등 '대형 금융회사' 중심이다. 채권액 기준으로 75% 동의만 있으면 다른 25% 채권자들을 무시하고 본인들 뜻대로 회사를 좌지우지 할 수 있다. 여기서부터 '채권자 평등' 원칙이 무시된다.  

      이들이 동의하면 부실기업 빚도 깎아주고, 이자도 면제해주고, 신규자금도 지원한다. 기존 오너경영인을 그대로 남겨두는 경우도 많다. "어차피 회사가 망하면 빚을 못받을테니 좀더 돈을 빌려주고 회사를 살려내서 빚을 받아내자"라는 편의주의적(?) 발상이 근간이다. 

      게다가 채권단의 '수장'은 거의 항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산업은행ㆍ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이 맡고 있다. 달리 말해 정권이나 정부에 잘보였거나, 혹은 '선거'를 앞두고 부도를 피해야 할 산업이라면 국책은행이 내리는 워크아웃의 수혜를 볼 수도 있다. 반대로 …모종의 이유로 정권에 찍히면 회생가능성이 충분함에도 불구, 그룹이나 회사가 공중분해될 수도 있다. (이미 머릿 속에 어떤 '회사'가 떠오를지도 모른다)

      '도산법'과 '기촉법'을 두고 매번 관련세력(?)의 다툼도 만만치 않았다. 법조계는 도산법을 옹호하고 기촉법의 폐해를 지적하며 "도산은 법적절차여야 한다"라고 지적해 왔다. 반면 기재부ㆍ금융위를 위시한 금융권은 도산법의 느린 업무 절차를 비판하고 기업회생과 일자리 보전을 우선시하는 기촉법의 현실성을 강조한다. 

      피와 살을 내주지 않으면… '오너일가' 특혜 시비 논란

      오너 경영인 입장에서 보자면…도산법에 기반한 법정관리는 '최악의 수'로 분류된다. 경영권도 뺏길 수 있고, 신규자금 지원도 기대하기 어렵다. 반면 워크아웃은 기업을 살리는 것은 물론, 오너일가의 재산권 보장에도 큰 도움을 준다. 그러니 까딱하면 '특혜시비'가 일어나기도 십상이다. "워크아웃이라고 해놓고는 결국 호남기업/영남기업을 살리는게 목적이다" "왜 저 기업은 워크아웃으로 살려주고, 이 기업은 파산처리 시켰느냐".

      국책은행 그리고 '관치'에 시달리는 시중은행과 보험사들은 이 특혜시비가 제일 싫다. 이를 벗어나려면? 남들이 보기에도 충분한 '피와 살을 내주는 강도높은 구조조정'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그래야 이자도 깎아주고, 신규자금도 지원하는 워크아웃의 '정당성'과 '명분'이 확고해진다.  

      논리적으로도 마찬가지. 사실 워크아웃이란 부도위험을 앞둔 기업이 빚쟁이(채권단)들을 찾아가 "빚도 깎아주고, 만기 연장도 좀 해주시오. 부탁합니다. 대신 시키는 일은 다 하겠습니다."라고 호소하는게 근간이다. 그래놓고서는 경영인이나 오너가 원하는대로 비용을 통제받지 않고 쓰거나, 본인이 원하는 특정사업을 그대로 유지한다고 하면… 이는 워크아웃이 아닌, 국책은행의 금융지원으로 바뀌어 버린다.  

      과거 워크아웃을 겪은 기업들도 동일했다. 

      가장 잘 알려진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경우. 대우건설ㆍ대한통운을 연이어 인수하고 결국 '승자의 저주'에 빠져 2008년~2009년 그룹이 분해 위기에 처했다. 금호산업ㆍ금호타이어가 워크아웃을, 아시아나항공ㆍ금호석유화학이 자율협약 대상이 됐다. (이들이 왜 워크아웃이 아닌, 자율협약이냐를 두고도 특혜시비가 일었다) 워크아웃 직전에 금호는 "핵심사업 매각 안해도 버틸 수 있다"며 매각대상을 최소화하려 했다. 당시 값어치를 인정받은 금호생명(현 KDB생명)을 미리 팔았다면 굳이 워크아웃까지 갈 필요 없었을 것이라는 평가까지 나왔지만 금호 오너 일가는 이를 거부했다. 그리고 워크아웃 이후부터는? 금호생명ㆍ금호렌터카ㆍ금호고속 등이 전부 일거에 매각됐다. 

      "태영을 잘 지원해줬으니 우리도 해주세요"라고 나오면?

      기촉법 제13조(기업개선계획의 작성 등)에 명기된 기업회생 방안 원칙은 다음과 같다. 1)외부전문기관을 통해 해당기업의 자산부채실사를 단행한다 2) 주채권은행이 기업개선계획을 작성해서 채권단 협의회에 제출한다 3) 이 제출계획을 두고 채권단협의회가 승인하면 예정대로 계획이 진행된다 4) 이 과정에서 해당기업과 협의해야 한다 5) 기업 부실에 상당한 책임있는 자의 공평한 손실분담 방안이 포함돼야 한다. 

      최근 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은 모두가 걱정한 부동산PF 보증채권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 되는 '첫 사례'다. 관건은 결국 이 위기가 시장 전반으로 더 확대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정부도 정치권도 이 점을 가장 걱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다른 채권과 달리 부동산PF사업의 시공사 보증채권들은 '건설경기'가 확 살아나고 '사업장' 들이 정상 운영되기까지는 이렇다할 상환 대안이 없다. 기존의 워크아웃들과는 양상이 또 다르다. 은행도, 보험사도, 건설사도 그리고 정부도 이 상황을 너무나 잘 인지하고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어떤 '원칙'이 적용되느냐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대강 자금지원하고 잘 기다려 줍시다"라는 선례가 생긴다면. 시장 전반으로 리스크 전이가 사라질까? 반대로 태영건설 선례를 믿고 만만한(?) 은행들에 기댈 생각으로, 건설사들의 뼈를 깎는 자구노력은 더 줄어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