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건설, 상반기 발행 계획 늦출지 고려도
"차라리 빨리 터져 다행"…크레딧 시장 '평온'
연초 발행 준비 기업多…非건설사 '계획대로'
-
태영건설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작업) 사태로 건설사 회사채 시장은 비상이 걸렸다. 투심이 악화하면서 일부 건설사들은 발행 계획을 미루는 등 조달 계획 수정에 나섰다. 건설사를 제외한 발행사들은 오히려 '불확실성 제거'로 안도의 한숨을 쉬는 분위기도 전해진다. 태영건설 사태가 '예상된' 이벤트고, 정부가 적극 사태 진화에 나설 것이란 기대감에 전체 크레딧 시장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 보고 있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건설은 연초 발행을 준비하던 회사채 발행 시기를 늦추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회사는 단기물 포함 당장 1분기에만 5650억원 규모의 회사채 만기가 돌아온다.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신청으로 건설사를 둘러싼 시장의 우려가 커지면서 일단 시장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을 계기로 부동산 PF리스크가 부각되고 건설업에 대한 투자 심리가 나빠지면 회사채 차환에도 어려움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이미 건설채는 회사채 시장에서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트리거가 발생한만큼 투심이 더욱 냉랭해질 수밖에 없다. 롯데건설 외에 다른 건설사들도 연초 발행 계획 수정을 고심하는 분위기가 전해진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롯데건설이 그룹사 지원을 강조하며 크레딧 리스크는 없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시장에서 건설채를 바라보는 시선이 냉랭하다보니 조달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며 “태영건설 워크아웃 이후 GS 등 여러 건설사들은 ‘최악의 상황’까지 고려하고 최대한 보수적으로 2024년 조달 계획을 수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건설사들은 2024년 상반기에만 2조40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만기가 다가온다. 지난달 말 기준 시공능력 상위 50위권 건설사(건설 매출 비중이 50% 미만인 업체는 제외)들의 회사채 만기 현황을 분석한 결과다. 오는 2월 말까지 롯데건설, SK에코플랜트, 한화건설, 현대건설 등 주요 건설사들의 만기만 1조4200억원 규모다. 이중 A급이 약 1조8800억원으로 약 80%를 차지하고, AA급은 1천400억원, BBB급은 약 3천500억원 수준이다.
다만 현재로선 태영건설의 위기가 크레딧 시장 전반에 ‘충격’을 줄 가능성은 적다는 관측이 많다. 2022년 9~10월 금융시장을 뒤흔든 ‘레고랜드 사태’와 달리,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은 예견된 이벤트였기 때문에 금융 시장으로 위기가 확산되지 않을 것이라는 투자 심리가 크다. 이미 채권투자자들이 ‘마음의 준비’를 해왔다는 것이다.
태영건설의 위기가 전반적인 채권 투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분위기다. 위기 기업의 채권을 앞다퉈 내다 팔면 채권값은 급락하고 채권 금리는 급등한다.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한 12월 28일 회사채(AA-) 금리는 전날보다 0.06%포인트 하락한 연 3.898%에, 국채(3년 만기) 금리는 전날보다 0.066%포인트 내린 연 3.154%에 거래됐다. 태영건설을 포함해 건설사들이 사모채가 많고 상장 공모채가 많지 않은 점도 영향이 제한적인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연초 효과를 노리고 발행을 준비하고 있는 ‘비(非)건설’ 기업들은 ‘계획대로’ 발행에 나설 전망이다. 미국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에 회사채 전반의 투자심리가 개선되면서 다수의 발행사들이 연초부터 대규모 발행을 준비 중이다.
한화그룹 계열사들이 새해 포문을 열 전망이다. 1월에만 한화에어로스페이스(AA-)가 최대 4000억원, 한화솔루션(AA-)이 최대 3000억원, 한화에너지(A+)가 최대 1500억원 규모 회사채 발행을 각각 계획하고 있다.
LG유플러스(AA), 미래에셋증권(AA)과 미래에셋자산운용(AA) 등도 연초 수천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을 준비 중이다. 신세계(AA)도 최대 30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을 계획하고 있다. KCC(AA-), 롯데쇼핑(AA-) 등도 연초 회사채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을 진행할 예정이다.
다만 태영건설의 위기가 다른 건설사들의 부실로까지 이어지면 크레딧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건설사들의 PF 보증 사고율이 높아질 경우, 주택도시보증공사(HUG)ㆍ한국주택금융공사 등에 사용되는 공적 자금이 공사채를 통해 공급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에 일단 시장 영향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투자자들도 다수다.
다만 정부가 나서서 PF 부실 충격에 대비하고 확산을 저지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고, 태영건설이 특히 부실한 PF 대출 구조를 가지고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건설사들의 ‘줄도산’ 수준의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관측도 많다.
한 채권시장 관계자는 “태영건설이 예상보다 빨리 워크아웃을 신청하면서 오히려 크레딧 시장에서는 불확실성을 해소한 점이 있다”며 “정부에서도 그만큼 상황 관리를 할 자신이 있기 때문에 빨리 터트린 것으로 보이고, 지금 분위기 상 연초 기업들의 조달 계획은 시장에서 무난히 소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아무래도 수요예측에서 흥행 열기는 이전보다 다소 떨어질 가능성이 있고, 여전채나 건설채는 사실상 발행이 당장은 여의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