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 "태영, 약속한 자구계획 이행 안해"
비상 체제 돌입한 채권단, 워크아웃 여부 분분
당국 의중에 촉각…'미리 터뜨리냐 끝까지 살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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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을 신청한 태영건설이 채권자 설명회에서 경영정상화를 위한 자구안 방안을 제시했다. 채권단의 눈높이를 충족하지는 못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최종 향방은 결국 금융당국에 달려있을 거란 전망이 나온다.
태영건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3일 오후 3시 산업은행 본점에서 채권단 400여곳을 상대로 설명회를 개최했다. 설명회에서는 채권자협의회 구성 및 운영, 태영건설 존속능력평가, PF 사업장 관리기준 수립 등 이달 11일에 있을 제1차 채권자협의회 안건에 대한 설명이 이뤄졌다.
이날 태영건설은 '경영정상화 사업계획서'를 통해 경영정상화 방안을 밝혔다. 태영 측은 보유자산 매각, 강도 높은 구조조정, 사업정상화 등 3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보유 부동산과 투자주식을 매각하거나 담보로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조직과 인력을 구조조정해 비용을 절감하고, 재무구조를 개선하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태영건설은 종합환경기업인 에코비트, 골프장 운영업체 블루원 등의 매각을 통한 유동성 확보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다만 채권단에서 당초 예상한 오너 일가의 사재 출연과 SBS 지분 매각 등은 언급하지 않았다. 산업은행과 채권단은 태영건설의 자구안이 부족하다는 반응이다.
한 채권단은 "이미 알짜 자산 상당수가 담보로 잡혀있는 상황에서 SBS를 팔지 않으면 현금화할 자산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며 "오너 일가가 SBS를 지키고 싶으면 사재 출연 계획이라도 합당하게 제시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울러 태영그룹이 당초 약속과 달리 태영건설 지원 규모를 줄인 점도 산업은행이 문제 삼았다. 태영그룹은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대금 중 1549억원을 태영건설에 지원하는 데 채권단과 합의했지만, 실제로 지원한 금액은 400억원에 그쳤다.
산업은행은 워크아웃 진행에 난항이 예상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은 태영건설의 채권자 설명회가 끝난 뒤 백브리핑을 진행하며 "태영그룹이 당초 약속한 자구계획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주채권은행으로서 대단히 유감스러운 상황"이라며 "워크아웃의 대전제는 태영과 대주주의 충분한 자구노력인 만큼 태영 측이 문제 해결의 진정성 보여주지 않으면 채권단 원만한 협조, 시장 신뢰 회복을 이끌어내기엔 어렵다. 채권단을 설득하기 위해 실질적인 자구 노력을 추가하길 요청한다"고 밝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진행 여부와 관련해 채권단의 입장은 분분하다. 산업은행마저 부정적 입장을 밝힌 상황에서 채권단은 '비상 체제'에 돌입했다.
태영건설이 지난 12월28일 워크아웃을 신청한 이후 다수 제2금융권의 유관 부서는 연말·연초 휴일에도 출근했다. 자사의 태영건설 관련 익스포져, 전망 등을 파악하며 조금이라도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전략을 모색한 것으로 전해진다.
주로 선순위로 PF 대출에 참여한 은행과 달리 중후순위에 대거 참여한 제2금융권은 손실 위험성이 더 크다. 제2금융권의 부동산PF 대출잔액은 은행, 보험에 비해 적지만 연체율은 현저히 높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증권사의 부동산 PF 대출잔액은 6조3000억 원으로 연체율은 13.85%에 달했다.
이외에도 채권단은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에 돌입하게 될 경우, PF 대출 만기를 연장하더라도 관련 이자나 수수료를 받기 힘들어질 것을 걱정하고 있다.
금융그룹 차원에서 태영건설 채권을 담은 기관은 워크아웃 진행 여부에 따른 손익을 저울질하고 있다. A그룹의 경우 A저축은행·A캐피탈 등이 태영건설 사업장에 대출한 규모는 약 1300억원에 달한다. A자산운용은 태영건설 채권 500억원 규모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워크아웃이 무산돼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현재 CCC인 채권 등급은 최하 등급인 D까지 하락한다. B그룹은 자사의 ETF에 태영건설 회사채를 담아 개인투자자 손실 가능성도 있다.
채권단은 태영건설에 추가적인 자구안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지만, 이와 별개로 결국 태영건설 워크아웃의 향방은 당국의 손에 달린 게 아니냐는 평가도 존재한다.
총선이 4개월 남은 가운데 당국이 태영건설을 미리 털기 위해 당국이 나선 게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그동안 PF 업계에서는 '내년 4월에 있을 총선 전까지는 부실 PF 사업장이 터지지 않는다'는 게 중론이었다. 당국이 표심을 잡으려면 수도권은 물론, 리스크에 더 취약한 지방의 부동산 경기를 살려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사실상 금융당국을 앞세워 PF 리스크를 이연해 왔다는 평가다. 그러나 더 이상의 부실 이연이 힘들 거라는 판단이 들자 총선이 임박해서 터지는 것보단 미리 털고 가는 게 낫다는 입장으로 바뀐 게 아니냐는 추측이다.
반면 태영건설은 워크아웃과 관련해 이미 정부와 상호합의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사실상 이번 사태는 '태영을 위한 워크아웃'이라는 평가다. 이 역시 근거는 '당국의 표심잡기'다. 시공능력 16위인 태영건설이 무너지면 그 여파는 걷잡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PF 리스크 현실화를 막기 위한 당국의 노력이 수포가 되는 셈이다.
윤세영 태영그룹 창업회장은 3일 채권단 설명회에서 "태영이 이대로 무너지면 협력업체에 큰 피해를 남기게 돼 줄 도산을 피할 수 없게 된다"며 "채권단에도 피해가 고스란히 갈 것이고 국가 경제 위기의 불씨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은 이와 관련해 "태영 측은 채권단에 구체적인 자구 계획안을 제시하지 않고 단지 '그냥 열심히 하겠으니 도와달라'는 취지로만 말한 것으로 이해한다"고 평가했다.
당국은 실제로 태영건설을 포함한 전반적인 PF 리스크를 다시 관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 한 관계자는 "작년 은행은 제2금융권을 통해 건설사를 지원했는데, 제2금융권의 자금이 말라가니 당국은 은행에 재차 제2금융권에 자금을 지원하라고 지시했다"며 "당국은 지금 PF 리스크를 막을 주체는 은행뿐이라는 생각"이라 밝혔다.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진행 여부는 오는 11일 열리는 1차 채권단협의회에서 결정된다.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에 들어가지 못하면 법원의 회생절차(법정관리)에 돌입할 가능성이 커진다. 회생 절차는 워크아웃과 달리 협력업체 공사대금 등 상거래채권까지 모든 채권이 동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