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저PBR 정책'은 반짝 테마주 만들기?…외인들은 "공매도 금지부터 신뢰상실"
입력 2024.02.01 07:00
    취재노트
    코리안 디스카운트 해소 정책에도 꿈쩍 않는 외인들
    저PBR 테마주 장세로 국내 단타 투자자만 웃었다
    新자사주 정책도 '소각 없는 매입'으로 핵심은 빠져
    "脫중국 유입도 없어…공매도 금지부터 신뢰 잃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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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공매도 금지 이후 알만한 해외 롱숏 펀드들은 전부 증시에서 빠져나갔다. 한국 담당 PM(펀드매니저)나 CIO들이 한국에 대해 나쁜 인상을 받아가 골치가 아프다." -A증권사 해외기관영업 담당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과 자사주 제도 개선 방안을 도입했다. 새 정책에 따라 앞으로 PBR(주가순자산비율) 지표가 낮은 기업들은 보고서에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기재해야 한다. 인적분할시 지주사가 보유한 자사주에도 분할회사의 신주를 배정하는 것도 금지된다. 

      이번 정책은 결국 배당확대, 자사주 매입 등을 통해 주가를 부양하는 것이 목적이다. 연초엔 퇴직연금과 연기금들의 자금 유입으로 증시에 수급이 쏠리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1월 개장일부터 증시가 내리막길을 걷자 정부가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의 대대적 정책 발표에도 증시는 호응하지 못하고 있다. 코스피는 2700선에 가까웠던 연초와다르게 2500선마저 붕괴됐고, 코스닥도 870선에서 800선까지 무너졌다. 외국인들의 강한 매도세가 이어지고 있는 영향이다. 

      외국인은 밸류업 프로그램 계획이 발표됐던 지난 1월 29일에도, 자사주 정책이 발표됐던 30일에도 매도세를 이어갔다. 정부의 구애 메시지가 정작 닿아야 할 곳엔 닿질 않았다는 소리다. 

      외국인들은 이미 한국 시장에 대해 신뢰를 잃었다. 홍콩H지수 추락으로 대변되는 중국 증시 악재에도, 탈(脫)중국 자금은 국내 증시로 유입되지 않고 있다. 환차익을 누릴 수 있는 일본을 향하거나, 차라리 포화시장인 인도ㆍ동남아를 택하는 상황이다.

      해외기관과의 소통을 담당하는 국내 금융권 관계자들은 이미 '공매도 한시 금지' 발표부터 잘못된 단추를 끼웠다고 입을 모은다. 총선을 앞두고 개인투자자의 표심(票心)을 얻기 위해 공매도를 금지할 때부터 '비이성적 관치의 나라'라는 인식이 깊게 박혔다는 것이다. 이제와서 정부가 기업을 압박해 주주환원을 높이겠다고 한들, 총선용 공염불에 그치지 않겠냐는 시각이다. 

      국내 대형증권사 고위 관계자는 "공매도 시국 이후부터 해외 기관들은 한국 정부 발표를 믿지 않는다"며 "PBR 정책도 실효성을 못 느낀다"고 지적했다. 

      자사주 개선안도 핵심 내용인 '소각 의무화' 조항을 빼면서 힘이 빠졌다. 재계가 자사주 의무 소각시 적대적 인수합병(M&A)의 대상이 될까봐 반발한 탓이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초 기준 국내 상장사가 보유한 미소각 자사주는 약 74조원으로, 국내 전체 시가총액의 약 3%가 넘는 물량이다. 소각 없는 매입은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 여전히 조직 재편시 백기사로 자사주를 활용하거나, 상호주 보유 방식으로 지배구조 개선을 막을 수도 있다.

      키움증권은 보고서를 통해 "증시가 박스권에 갇혀 있으면 나오는 소식이 배당 확대, 자사주 매입 등 주주환원"이라며 "자사주 제도 개선과 의무공개매수 제도 도입 등은 상법 개정이 선행돼야 하기 때문에 실효성에 대해서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펀드 운용역들 사이에서는 이번 정책이 또 하나의 테마주 양상만 만들었다는 볼멘소리가 크다. 당국 발표 이후 SNS와 투자 커뮤니티에는 '저PBR주(株) 리스트'가 돌고 있다. 

      증시에서도 부국증권ㆍ한국금융지주ㆍ신영증권ㆍ교보증권 등 PBR가 0.6배 이하인 증권사들의 신고가 행진이 이어졌지만, 이번 장세가 오래갈 것이라 관측하는 운용사들은 없다.

      국내 운용사 관계자는 "PBR 정책이나 자사주 정책으로 코스피가 오르는 게 아니라, 테마주에 올라탄 일부 국내 기관들만 단타(단기투자)로 수익률을 올리고 있는 상황"이라며 "외부 자금 유입 없는 땅따먹기 수준이라 수급 총량은 그대로기 때문에 증시 불확실성만 더 커졌다. 저PBR주가 총선 테마주와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