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회사채 2500억 발행 취소에 술렁인 증권가
주관사단 빠진 신한證…당국ㆍ발행사 눈치보는 실무진
실수에도 리스크 회피 위해 일감 맡기는 발행사들과
수임 경쟁에 몰두한 증권사들이 반복된 실수 야기해
-
올초부터 회사채 발행을 담당하는 증권사 기업금융본부에 비상이 걸렸다. 연초 일감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주관사들의 단순 실수로 회사채 발행이 취소되는 사건이 터지면서 금융 당국과 발행사들의 눈초리가 매서워진 영향이다.
최근 2500억원 규모 물량의 ㈜한화 회사채 발행이 전면 취소된 사건의 여파는 거셌다. 주관사인 신한투자증권이 증권신고서에 금리를 잘못 기재함에 따라, 조달 자체가 무산된 것이다. 수요예측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신한투자증권은 주관사단에서 제외됐다. 신한투자증권의 고위 경영진이 발행사와의 관계를 수습하느라 직접 주관 업무 불참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관사의 실수로 발행이 취소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6월 HD현대오일뱅크는 KB증권이 금리를 오기재하면서 7년물 500억원어치 발행이 불발됐다. 올해 다시 조달 시장에 나선 HD현대오일뱅크는 주관사 명단에서 KB증권을 제외했다. 작년 두 차례의 공모를 KB와 함께한 만큼, 작년 발행 취소 사건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됐다.
증권사 내부에서는 업무 긴장감이 높아진 모습이다. 발행사와의 관계가 서먹해질까봐 우려하는 점도 있지만, 최근 들어 부쩍 금융 당국의 잣대가 까다로워진 것도 한몫 했다는 분위기다.
한 대형 증권사 DCM(채권발행시장) 관계자는 "2월 말까진 채권 발행량이 많기 때문에 신고서를 제출하는 과정 자체가 긴박하게 이뤄지고 있어 부쩍 경각심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지난해 4분기 유상증자 시장에서도 LG디스플레이를 포함한 다양한 신고서가 당국 지적으로 수차례 반려 당했다"며 "사람이 하는 일이다보니 찾다보면 실수는 계속 나온다. 우리(주관사)의 실수가 늘어난 것도 있지만, 당국이 미세한 점까지 발견하는 게 많아진 것도 사실이라 스트레스"라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주관사들의 실수는 끊이지 않고 있다. 당장 ㈜한화 발행 취소 사건 직후에도 메리츠증권이 롯데캐피탈 채권의 금리를 잘못 기재해 정정 공시하는 사례가 있었다. 발행사 측은 주관사들의 개선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면서 내심 불만도 표하고 있지만, 사실상 '개선할 필요가 없는 환경'이라는 게 업계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지난해부터 발행사들은 리스크 분산을 위해 최대한 많은 증권사와 접촉하고 있다. 발행사는 최대한 많은 증권사를 끌어들여 리스크를 줄임과 동시에 가격 할인 경쟁을 붙였다. 이는 일감을 늘려야 하는 증권사들의 수요와 맞아 떨어졌다.
이젠 ECM(주식발행시장)과 DCM(채권발행시장)을 불문하고 5~6곳이 공동 주관을 맡는 것이 당연한 분위기다. 두산로보틱스 상장의 경우 대표주관사 2곳, 공동주관사 3곳에 인수단은 9곳에 달했다. 통상 단독 주관으로 이뤄졌던 금융채마저 최근엔 공동 주관 형태가 자리잡았다.
앞선 HD현대오일뱅크와 ㈜한화가 실수한 주관사를 배제시켜 꾸짖은 듯 보이지만, 이들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지속적으로 관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HD현대오일뱅크는 발행이 취소됐던 자금을 KB증권이 주선한 사모채로 대체했다. HD현대오일뱅크가 지분 60%를 가진 HD현대케미칼도 올해 KB증권에 대표 주관을 맡겼다. 한화 측도 이번 회사채 인수단에 신한투자증권을 끼우는 방향을 고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최근의 소란도 '약속대련(約束對練)'에 불과할 뿐, 구조적 문제 개선은 없이 비슷한 일이 반복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약속대련이란 양측이 사전에 약속된 방법으로 공격과 수비를 하면서 맞춰 겨루는 연기를 보여주는 형식이다.
증권사 관계자는 "일각에서 신한투자증권의 실수를 지적하면서 한화그룹과의 관계가 틀어질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이는 빈자리를 노리는 경쟁사의 희망사항"이라며 "촉박한 시간으로 행정상 오류나 실수가 발생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