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화하는 한미그룹 경영권 분쟁…제약 평균 PBR 한참 못 미치는 매각가 논란
입력 2024.02.13 07:00
    경영권 거래·제약업 특성 고려하면 '낮은 프리미엄' 평가
    "양사 시너지 불분명"…명분 불투명·소액주주 보호 미비
    정부는 '깜깜이' M&A 개선 촉구하는데…시장 기조와 반대
    "대주주 문제 해결 목적"…급한 거래(?) 배후는 라데팡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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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한미그룹과 OCI그룹의 합병에 반대하는 인사들이 제기한 ‘가처분 소송’ 진행 상황에 따라 이번 거래의 결론은 달라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법원의 인용 또는 기각의 판결 여부와 상관없이 당분간은 오너일가의 경영권 분쟁이 격화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상황에선 대주주의 지분 매각 가격, 그리고 신주 발행 금액이 지나치게 낮게 평가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가장 큰 논란 거리다. 사실상 경영권을 수반한 거래임에도 불구하고 제약업종에 부여하는 일반적인 '프리미엄'도 적용하지 않았단 평가도 나온다. ‘대주주의 상속세 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시작한 거래이지만, 이번 거래에서 소액주주의 이득은 고려되지 않았다는 의견도 있다. 

      이번 거래는 OCI그룹 지주사인 OCI홀딩스가 한미약품그룹 지주사 한미사이언스 지분 27.03%를 7703억원에 매수하고, 임주현 한미약품 사장 등이 OCI홀딩스 지분 10.4%를 취득하는 지분 맞교환 구조다. 계약 완료시 OCI홀딩스는 한미사이언스 최대주주에 오른다. OCI홀딩스가 통합그룹을 모두 지배하는 형태다. OCI홀딩스는 OCI오너 일가가 최대주주 자리를 유지한다.  

      한미약품과 OCI 측은 해당 거래로 양사 시너지가 예상되고, 한미그룹 재무구조 개선과 글로벌 협상력이 제고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업적 시너지와 통합 효과는 통합 후를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한편 시장에서는 과연 이번 두 그룹의 통합이 명확한 명분을 확보했는지는 짚어볼 문제라는 시선도 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해당 거래에서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 주식은 자회사의 지분가치 등을 반영한 조정 PBR(주가순자산비율)이 1.5배 수준으로 적용된 것으로 추산된다. 제약바이오 회사는 평균적으로 타 산업군보다 높은 PBR이 적용되고, 보수적으로 잡아도 2.5배 정도를 보인다. 신약개발이 주인 경우에는 PBR 5배를 상회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예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PBR은 6.4배, 셀트리온이 6배이고 SK바이오팜은 25.34배에 이르듯 제약바이오의 PBR은 상당히 높다. 

      대주주 개인의 지분은 어느 가격에 매각하든 자유이기 때문에 지분 매각결정 자체를 문제삼을 수는 없다. 다만 해당 통합 거래에 신주발행 거래도 수반되는 점은 다른 문제다. 한미사이언스 주주들 입장에선 현재가 비해 저평가된 수준(3만7300원)에서 제3자 유상증자가 진행되고, 지분가치 희석도 감당해야 하므로 해당 통합 거래를 통한 이득이 무엇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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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상 30% 이하의 적은 지분으로 경영권을 인수하는 M&A에서는 높은 경영권 프리미엄을 적용한다. 최소 30%, 최대 50%의 수준의 프리미엄을 적용하는 사례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오스템임플란트 거래처럼 지분을 100% 확보하는 딜은 공개매수를 진행하면 주주들에게 프리미엄을 20~30% 수준으로 제공해 지분을 매수했다. 해외에서는 이러한 소액주주 보호 장치가 더욱 강력한 경우가 많다. 

      대주주가 변경되고 추후 경영진도 OCI 측이 선임하는 경영진으로 교체될 가능성이 큰 거래지만 주주들을 향한 충분한 설명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각 그룹이 사실상 사업간의 연관성이 적고, OCI가 제약바이오에 투자를 해왔긴 하지만 직접적으로 두 그룹의 시너지가 명확히 예상되지 않는다. OCI그룹이 부광약품에 투자하는 등 제약 바이오 진출을 꾀해왔지만 그룹 내 제약 바이오 비중은 미미한 상태다. 

      특히 제약업은 장기적인 관점의 투자가 중요하지만 제조업 기반의 OCI그룹이 어떤 경영 기조를 보일지 장담하기 어렵다. 경영 시너지에 대한 불분명함을 소액주주들이 일방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점은 시장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한미약품그룹 측은 제3자 배정 유상증자의 배경에 대해 ‘재무구조 개선’을 내걸었다. 다만 한미사이언스의 지난해 3분기 부채비율이 46.4%(자산총계 7491억원, 부채총계 2375억원)에 그치기 때문에 위급한 경영 상황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시각이다. 

      한미사이언스 측은 "지난해 사업형 지주회사로 변모하며 늘어난 채무의 조기 상환 필요성이 제기됐고 상환 능력에 대한 의구심도 일부 주주들로부터 받아 왔다"며 "OCI와의 통합으로 유입될 자산이 한미사이언스 부채를 조기 상환할 토대가 될 것”이라고 했다.

      주주의 지분 매각에 재단 지분이 동원되는 점도 눈에띈다. 한미약품 측은 임주현 사장의 두 자녀가 보유하고 있는 지분을 OCI에 매도하기로 했다가 두 자녀 보유분 대신 가현문화재단 지분 매각으로 변경했다. 

      한미그룹 측이 “위법사항이 없고, 부채 해결 목적”이라고 밝혔지만 재단의 재무 상황이 양호한 점을 고려하면 설명이 미흡하다는 평이 많다. 자녀 지분을 남기고 재단 지분을 매각하는 것이 의결권 확보 측면에서 유리하다보니 임시주총 대비를 위한 장치라는 해석도 있다.

      최근 M&A 트렌드와도 정반대를 보인 거래라는 평가다. 6일 금융위원회는 '투자자 보호를 위한 M&A 제도의 글로벌 정합성 제고방안'을 발표했다. 정책 방향의 골자는 현재 M&A 과정에서 일반주주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으니 투명성과 주주 보호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합병의 이유와 진행과정에 대한 정보 및 기업지배구조의 핵심인 이사회의 판단에 대한 정보가 충분히 제공되지 못하고 있고, 이에 합병 진행 과정에서 주주의 동의를 구하고 합병에 찬성하지 않는 주주에 대해 두터운 보호장치를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합병가액 산정 등에 관해서도 공정성 확보 위해 외부평가 의무화 등 여러 제도 개선책을 예정 중이라고 밝혔다. 

      또한 정부는 국내 M&A 시장을 활성화하기위해 의무공개매수제도 실행을 추진하고 있다. 의무공개매수제는 상장사 지분 25% 이상을 취득해 대주주가 될 때는 일정 비율 이상을 의무적으로 더 매수하도록 하는 제도다. 최근 경영권 매각 거래들은 소액주주 보호를 위해 시장에서 일정 부분 공개매수를 거치는 사례가 많다.

      한미-OCI 통합 거래에서 경영권 프리미엄이 부여됐다면, 소액주주들에게도 동일한 조건으로 지분을 매각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제공했어햐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OCI가 확보하는 한미사이언스 지분 27% 수준은 제도 실행시 의무공개매수 범위인 25%이상 50% 이하 거래에 해당된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통상 적은 지분으로 경영권을 인수하는 거래는 ‘더블’ 수준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쳐주는 경우도 빈번하기 때문에 (이번 통합 거래는) OCI 입장에서는 상당히 좋은 조건이고 한미사이언스 입장에서는 상대적 낮은 밸류에 거래된 것으로 보인다”며 “대주주 간의 거래 과정에서 정한 가격이니 그 자체를 문제삼긴 어려워도, 양사의 시너지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한미사이언스 주주들을 설득할 명확한 설명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정부에서도 강조하고 있듯 최근 M&A 트렌드는 거래 과정에서의 정당성 확보, 향후 지속가능성 증명이 핵심이고 특히 대주주 간의 거래는 해당 측면들을 더욱 철저히 준수해야 하는데 한미-OCI그룹 통합은 오로지 대주주의 사적인 문제를 해결을 위한 ‘매각’ 자체에만 집중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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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직 대주주 위한 거래”...OCI와의 ‘맞손’ 배후에는 라데팡스

      단순하게 생각하면 OCI 입장에서는 5000억원 규모 현금 투입으로 보유 상장사(한미사이언스, 한미약품, JVM) 시가총액 총합만 약 7조원 수준인 한미약품그룹을 지배하게 되는 셈이다.

      이번 통합 거래의 시작은 故임성기 한미약품 창업주 별세 이후 5000억원이 넘는 상속세 납부 문제였다. 송영숙 회장과 임주현 대표는 상속세를 마련하기 위해 사모펀드 운용사 라데팡스파트너스와 한미사이언스 지분 11.8%를 3200억원에 매각하는 계약을 맺었다. 

      라데팡스는 행동주의펀드 KCGI 출신인 김남규 대표와 신민석 부대표가 주요 멤버인 신생 PEF다. 이들은 이들은 KCGI에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반도건설과 '3자 연합'을 꾸리고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에 대한 공격을 가했고, 라데팡스 창업 이후 남매 간 경영권 분쟁이 있던 아워홈의 지분 매각건에도 뛰어드는 등 ‘오너가 분쟁’이 있는 거래에 주로 발을 들였다. 

      라데팡스는 프로젝트펀드를 조성해 송영숙 회장과 임주현 사장의 지분 일부 인수를 추진했다. 그러나 출자자로 나서려던 새마을금고가 '뱅크런 사태'로 투자를 철회해 자금 조달이 어려워졌다. 이후 IMM인베스트먼트, KDB인베스트먼트 등과 컨소시엄을 조성해 지분을 인수하려 했으나 무산됐다. 지난 연말 OCI그룹과 한미약품그룹의 대주주 지분 거래가 급물살을 탔고 이 과정에서 라데팡스가 핵심 역할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송 회장이 상속세 납부를 위해 금융권에서 조달한 1160억원 규모의 주식담보 대출 만기는 연달아 돌아오는데 라데팡스의 지분 인수는 지연되니 조급함(?)에 OCI와 손잡는 것을 굳혔다는 해석도 있다. 다만 조단위 그룹 대주주 일가가 자금 조달 난항을 겪는 신생 PEF와의 인연을 이어간 점이 의아하다는 반응이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번 통합은 좋은 조건으로 한미그룹을 지배하게 될 OCI와, 어떻게든 딜을 성사시킨 라데팡스만 이득이란 시선이 많다”며 “거래가 마무리되면 라데팡스가 매각을 주선한 대가로 상당한 규모의 수수료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