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복귀작 필요한 삼성전자, 대형 M&A보다 AI發 투자 집중에 무게
입력 2024.02.14 07:00
    1심 무죄 직후 검찰 항소…절반만 해소된 사법리스크
    무죄 판결 이을 성과 절실…문턱 만만찮은 대형 M&A
    삼성전자 AI로 뱃머리 틀었지만…당장 성패는 불투명
    오픈AI 9000조 새판 짠다는데…고객사 확보도 승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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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재용 회장의 불법합병·회계부정 1심 무죄 선고 이후 삼성전자를 위시한 그룹 계열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검찰 항소로 재판이 길어지게 됐으나 삼성그룹으로선 무죄 판결에 이어질 성과를 내놓을 필요가 더욱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간 삼성전자가 예고한 대형 인수합병(M&A)이 이 회장 복귀를 알릴 맞춤한 성과로 꼽히지만 현실적 장벽이 만만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당장 가시적 성과를 낼 수 있는 승부처로는 결국 부상하는 인공지능(AI) 시장이 꼽힌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8일 이 회장에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장을 제출했다. 이 회장을 포함해 재판에 넘겨진 삼성그룹 전현직 임직원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아 든 만큼 사법 리스크 해소 기대감이 높아졌지만 3일 만에 검찰이 항소하며 재판 장기화가 불가피해진 것이다. 삼성그룹으로선 꼬인 실타래가 절반가량만 풀린 모양새가 됐다. 

      삼성그룹으로선 1심 무죄 판결이 만들어준 분위기를 최대한 살려가는 게 중요해진 시점이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그룹은 지난 6년 동안 이 회장의 가석방, 사면·복권 등 시점에 맞춰 대규모 투자, 고용 계획 등을 내놨는데 지금도 다르지 않다"라며 "무죄 판결에 대응할 만한 이 회장 복귀작을 마련해야 한다는 내부 분위기가 전해진다"라고 설명했다. 

      가장 먼저 관심이 쏠리는 건 삼성전자가 직접 예고했던 대규모 M&A다. 실제로 지난 수년 삼성전자는 그룹 계열인 삼성증권에서 UBS 출신인 임병일 부사장을 발탁해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에 합류시킨 뒤 여러 선택지를 따져본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해 몇몇 외국계 투자은행(IB)과 접촉해 인수 가능성을 검토한 매물들이 시장에서 오르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3년간 높아진 시장 기대치를 감안하면 이를 충족할 만한 인수 후보들은 이 회장 결단이나 삼성전자 의지만으로 성사가 쉽지 않다는 평이 많다. 삼성전자의 사업 구조에 당장 힘을 실어줄 선택지라면 반도체 설계나 장비 등 기술을 보유한 업체가 유력하나 지경학 등 이해관계 문턱을 넘기 어려운 탓이다. 경쟁력 있는 매물들은 몸값이 천정부지로 뛴 상황이기도 하다. 

      M&A 시장 한 관계자는 "비메모리 쪽 설계나 구형(레거시) 공정 업체, 장비 업체 등 그간 삼성전자 내부적으로 검토된 후보군 모두 각국 정부의 전략자원"이라며 "이름 있는 곳들은 이미 몸값이 뛰었다 보니 100% 지분을 확보하자면 삼성전자라 해도 여력이 넉넉지 않고, 지분 투자에 머물면 M&A 효과가 떨어진다"라고 설명했다. 

      결국 현 시점 단기간 내 괄목할 성과를 내자면 M&A보단 AI 시장에서 승부를 보는 게 중요하단 지적이 많다. 

      삼성전자 내부적으로도 이미 AI로 뱃머리를 틀어둔 상황이다. 기기 시장에서 갤럭시 시리즈를 AI 시장 전면에 내세우고 메모리·로직·비메모리 반도체부터 관련 서비스 사업까지 선순환 구조를 마련한다는 복안이다.

      다만 경쟁사 전반이 유사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데다 소비를 포함해 잠재 고객사 호응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성패를 점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온다. 최근 기기 시장의 화두 역시 삼성전자가 새로 출시한 AI 특화 갤럭시 시리즈보단 애플이 내놓은 비전프로에 쏠려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유의미한 M&A나 갤럭시 같은 자체 기기 사업 전망이 불투명하다면 주력인 메모리·비메모리 반도체에서 대형 고객사를 확보하는 데 승부를 걸어야 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반도체 업계에선 지난 5년 삼성전자의 경쟁력 우려가 M&A 부재가 아닌 고객사 확보 실패에서부터 출발했다고 입을 모은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과 TSMC의 밀월이 계속되는 가운데 AI 시장이 개화하자 또다시 엔비디아·TSMC·SK하이닉스 삼각편대로 고객사가 몰려들며 자연스럽게 삼성전자가 밀려났다는 얘기다. 

      마침 오픈AI가 종전 애플, 테슬라와 마찬가지로 투자자를 모아 직접 반도체 설계부터 생산망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내놓고 있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는 약 7조달러(원화 약 9300조원) 모집을 목표로 투자자를 접촉 중이다. 한해 반도체 시장 전체 규모의 12배가량인데, 사실상 이만한 돈을 반도체 구매력에 쓰겠다는 계획으로 풀이된다. 

      시장에선 실현 가능성을 떠나 삼성전자가 파트너십을 구축하기에 적기라는 반응이 나온다. 세계 최대 AI 기업이 TSMC·SK하이닉스 생산 속도에 맞춰 엔비디아에 돈을 지불하는 일을 그만 두겠다고 선을 그은 것이기 때문이다. 오픈AI가 새로 짜는 반도체 지형의 파트너 지위를 확보할 수 있다면 시장 지형이 단숨에 바뀔 수 있다. 

      증권사 반도체 담당 한 연구원은 "테슬라가 지난해 자체 칩 기반 슈퍼컴퓨터 도조(Dojo)의 확대 계획을 내놨을 때와 마찬가지로 오픈AI도 비슷한 계획을 내놓는 것"이라며 "삼성전자가 오픈AI를 고객사로 직접 확보할 수 있다면 TSMC 추격 실패나 고대역폭메모리(HBM) 실기, M&A 부재 등 그간 부진을 한 번에 털고 갈 수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