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사태' 윤석헌과 'ELS 사태' 이복현의 공통점...선거 앞두고 '매표(買票)'?
입력 2024.02.20 07:00
    Invest Column
    2020년 2월 윤석헌 금감원장 '자율조정ㆍ최대 80% 배상'
    2024년 2월 이복현 금감원장 '자율배상ㆍ최소 50 배상'
    4년 전 DLFㆍ라임사태 당시와 ELS 사태 '해법' 똑같아
    하위 규정ㆍ유권해석 의존 '사적화해' 제도적 개선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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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대 국회의원 총선거(이하 총선)을 두 달 앞둔 2020년 2월, 파생결합펀드(DLF) 대규모 손실사태와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중단 사태가 벌어졌다. 당시 금융감독기관 수장이었던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해 '자율조정을 통한 배상', '80%까지 배상'을 언급했다. 

      이후 윤 원장 휘하 금감원에서 주도한 분쟁조정위원회에서는 전례없는 100% 배상 결정이 쏟아져나왔다. 이후 옵티머스펀드, 디스커버리펀드 등 비슷한 금융사고가 이어지자, 윤 원장은 "사적 화해로 풀면 된다"고 공식적으로 발언했다. 금융당국이 뭘 했느냐는 비판이 쏟아지자 '금융회사가 선제적으로 배상하고, 사후 정산하라'는 해결책을 내놓은 것이다.

      22대 총선을 두 달 앞둔 2024년 2월, 주가연계증권(ELS) 대규모 손실 사태가 터졌다. 2021년 상반기 은행 주도로 판매된 홍콩H지수 기반 ELS 16조원 중 대부분이 50% 이상 손실 위기에 처했다. 금융감독기관 수장인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5일 업무계획 브리핑을 통해 '금융권의 자체적인 자율 배상이 필요하다', '이쪽이 바라는 게 100이고 저쪽이 수용하는 게 50이면 최소한 50이라도 먼저 (배상을) 진행하는 것 등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이 원장 휘하 금감원은 ELS 관련 2차 조사에 착수했다. 3000여건이 넘는 민원을 대표사례 중심으로 유형별 정리하고, 이에 따른 배상기준안을 마련하는 게 핵심으로 꼽힌다. 현재 분위기대로라면 유형별로 배상 수준을 할당해 금융당국에서 선지급을 종용한 후, ELS 만기시 차액을 정산하는 방안이 마련될 거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당시 언급에 대해 금감원은 "은행권에 강하게 일방적으로 자체 배상을 압박하려는 의도가 아니며 상호 이견이 없는 일부에 대해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언급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불구, 그간 금감원장의 행보 및 발언에 상당한 부담을 느껴온 금융권에서는 사실상 자율배상을 종용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는 후문이다. 

      윤석헌 전 원장은 개혁 성향의 학자(교수) 출신으로 더불어민주당 정부 시절 선임됐고, 이복현 현 원장은 검찰 출신의 정권 핵심 관계자로 국민의힘 정부 첫 금감원장으로 선임됐다. 쌓아온 경력도, 가치평가 기준도 다르지만, 대형 금융사고 앞에서 감독당국 책임자로서 내놓은 '솔루션'은 완전히 동일한 셈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피해자는 곧 유권자이기 때문에 특히 총선을 두 달 앞둔 시점에서 금융당국의 지향점은 여야를 떠나 정해져있다고 봐도 된다"며 "현행법 위반ㆍ배임 소지로 국책은행마저 사적화해를 거절한 게 불과 3년 전 일인데, 그 사이 이를 보완하기 위한 제도적 개선 노력은 전무했다"고 지적했다.

      현행 법리만 따지면 사적화해는 완전한 불법이다. 자본시장법은 제 55조 '손실보전 등의 금지' 조항을 통해 투자자가 입은 손실의 전부 또는 일부를 사후에 보전하여 주는 행위를 전면 금지하고 있다.

      예외조항으로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이라는 구절이 삽입돼있지만, 이에 대한 해석은 법 조항에도, 시행령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증권법학회는 자본시장법 주석서를 통해 '정당한 사유'에 대한 근거를 금융투자협회가 고시하는 금융투자업 규정에서 찾고 있다. 금융투자업 규정 4-20조는 상품을 판매한 금융기관이 '자신의 위법'을 전제로 손해를 배상하거나 사적화해의 수단으로 손실을 보상하는 행위는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은행 같은 겸영금융투자업자가 해당 금융투자업규정의 적용을 받는지 여부도 명확하게 규정돼있지 않다. 금융당국은 지난 2009년 '유권해석'을 통해 '은행 등 겸영금융투자업자의 임직원이 투자중개업이나 투자매매업 관련 행위를 하는 경우 해당 법 규정의 적용을 받을 수 있다'는 정도의 원론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이렇다보니 사적화해를 위해선 불필요한 비용과 시간이 지출된다. 이사회는 사적화해 결정을 내릴 경우 따라올 배임 혐의가 부담이다. 지난 2021년 IBK기업은행이 디스커버리펀드 관련 사적화해 제안을 거부한 게 대표적이다. 2020년 DLF 관련 사적화해가 잇따랐지만, 수월하게 진행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신한은행ㆍ하나은행 등 주요 판매사들은 모두 이사회 설득에 지난한 시간과 수고를 들여야 했다.

      정치적인 목적으로 사적화해를 종용할 거였다면, 적어도 절차상 문제는 없도록 규정을 가다듬어줬어야 했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현재 알음알음 적용하는 조항의 범위 내에서 사적화해를 추진하는 건 금융회사가 '자신의 위법'을 인정하는 꼴이란 지적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평가다. ELS는 지난 15여년간 '국민 재테크 상품'으로 꼽혀온 히트 상품으로, 판매 절차가 상당부분 표준화돼있어 은행들이 더욱 큰 목소리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는 까닭이다.

      다른 은행 고위 관계자는 "정치인들도 ELS 사태를 정쟁 이슈로만 소모할 게 아니라, 자본시장법 제 55조의 '정당한 사유'가 무엇인지 명확히 문구로 지정해 줄 필요가 있다"며 "불법이든 합법이든 일단 50%는 배상하라는 말은 설 직전 강행한 2조원 규모 '상생금융'과 마찬가지로 넓은 의미에서 보면 매표(買票) 행위와 다름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