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이슈가 테마화하며 단기 外人 자금 급 유입
3월 주총ㆍ4월 총선 지나면 사라질 가능성 농후
매크로 분위기는 다시 보수적...불안감에 IPO에 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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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의 분위기를 지표화한 '한국 공포와 탐욕 지수'(한화투자증권 집계)는 지난 19일 82.6을 기록하며 '과도한 탐욕' 단계에 진입했다. 50을 기준을 0에 가까울수록 공포, 100에 가까울수록 탐욕을 뜻하는데, 이날 하루에만 전일 대비 9포인트 이상 급등했다. '증시 밸류업 정책' 발표를 앞두고 공기업이 최우선 수혜를 받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며, 2년 연속 영업적자를 낸 지역난방공사가 2010년 상장 이후 처음 상한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공모주 시장도 '과도한 탐욕'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다. 연초 이후 2월까지 수요예측을 진행한 10개 공모주는 전부 공모희망가 밴드 최상단보다 더 높은 수준에서 공모가를 확정했다. '확정 공모가는 밴드 최상단 대비 20% 이내에서 정한다'는 증권가의 암묵적인 룰(rule)마저 무너진 상황이다. 광적인 청약 열풍 속에 국내 최대 기관투자가이자 롱 펀드(long fund;장기보유투자자)인 국민연금공단은 상반기 최대어인 에이피알 공모주를 단 한 주도 배정받지 못했다.
지난달 말 이후 정책 테마를 타고 '살얼음판 강세장'이 펼쳐지는 가운데, 증시 곳곳에서는 비합리적인 과열 양상이 관측되고 있다. 지난해 낙관론을 조장한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등 매크로 지표는 보수적으로 돌아선 가운데, 이른바 저(低) PBR 테마가 가격을 왜곡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9일, 코스피지수는 1년 9개월만에 2680선에 도달했다. 12개월 선행 주가순이익비율(PER) 11배, 주가순자산비율(PBR) 약 1배로, 대부분의 국내외 증권사가 올해 코스피 지수 연간 밴드 상단으로 지목했던 수준이다. 지난 1월 중순까지만 해도 10거래일 연속 하락하며 '글로벌 수익률 꼴등 증시'로 꼽혔던 코스피가 극적인 변신을 한 셈이다.
코스피 급등의 배경으로는 총선을 앞두고 '저PBR주'로 대표되는 '정책 테마'가 주목받은 게 핵심으로 꼽힌다. 총선 어젠다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가 떠오르며 여당 및 금융당국에서 관련 정책 마련에 몰두하자, 수혜를 기대하고 자금이 쏟아져 들어온 것이다. 특히 지난달 19일 이후 불과 한 달 사이에 외국인이 현물 9조원, 선물 4조5000억원 등 대규모 자금을 집중적으로 쏟아부은 게 지수를 견인했다는 분석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1950년 이후 미국 대선의 추이를 살펴보면 집권 4년차에 S&P지수가 마이너스(-) 였던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사례가 없었다"며 "지난해 공매도 전면 금지로 지지율 면에서 이득을 봤던 현 정부가 총선을 앞두고 전면적으로 주가 관리에 나선 게 아니냐는 시각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국내 저PBR주중엔 대체로 금융업ㆍ제조업 등 자산 규모가 크지만, 자기자본이익률(ROE)이나 이익성장률이 크지 않은 대형주가 많다. 그간 소외됐던 대형주들이 주목을 받고 수급이 쏠리며 주가가 오르자, 전체 시가총액이 늘어나며 지수 역시 큰 폭으로 상승한 것이다.
문제는 현재의 주가지수가 '정책 기대감'이라는 모래성 위에 쌓아 올려졌다는 점이다. 결국 '증시 밸류업 정책'의 핵심은 주주환원율 제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오는 3월 정기 주주총회 시즌을 거치며 소멸할 재료에 가깝다는 평가다. 게다가 현재 언급되고 있는 정책의 상당 부분은 상법 및 자본시장법을 개정해야 실질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는 한계도 거론된다.
3월 주총 시즌과 4월 총선이 지나고 나면 형체도 없이 사라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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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급의 성격도 우호적이지 않다는 지적이다. 다올투자증권에 따르면 근 1년간 국내 증시로 들어온 전체 19조원의 외국인 수급 중 액티브 자금이 26조원을 차지했다. 패시브 자금은 오히려 7조원의 순매도 상태다. 특히 지난해 11월 이후 유입된 16조원의 액티브 자금은 매우 강한 강도로 국내 증시에 들어오고 있다.
일반적으로 액티브는 패시브의 추세대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디커플링(탈동조화)는 이례적이란 분석이다. 과거에도 국내 증시의 파이를 키우는 건 외국인의 패시브 수급이었고, 액티브는 언제든 나갈 수 있는 물량이라는 점에서 현 수급이 질적 측면에서 불안요소라는 결론이다.
매크로 상황도 심상치 않다. 지난 13일(현지시간) 발표된 미국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나쁜 방향으로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금융가에선 2년만에 2%대 진입을 예상했지만, 실제 수치는 전년동기 대비 3.1% 상승으로 두 달 연속 시장 전망치를 웃돌았다. 19일(현지시간) 발표된 생산자물가지수(PPI)도 전달 대비 0.3% 오르며 예상치 0.1%를 훌쩍 뛰어넘었다. 지난해 8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이기도 하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이 3월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라고 베팅한 자금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미국 선물시장에 반영된 3월 미국 기준금리 인하 확률은 지난해 말 한때 70%를 넘었지만, 지금은 9%로 쪼그라든 상태다. CPI 발표 전까지만 해도 50%를 넘나들었던 5월 인하 확률은 30%로 줄었다. 반면 6월까지 동결이 유지될 거란 전망은 불과 한 주 사이에 6%에서 23%로 치솟았다.
미국 기준금리 인하 시점이 늦어지면 국내 기준금리 인하 시점 역시 뒤로 밀릴 가능성이 크다. 연초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반영해 3.17%까지 낮아졌던 한국 국채 10년물 수익률은 현재 3.48%까지 되돌아왔다. 지난해 12월 중순과 비슷한 수치다.
이런 불안감이 지속되다보니, 증시 자금은 테마주와 더불어 '비교적 안전하게 차익을 낼 수 있는 자산'에 대한 쏠림 현상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공모주다. 현재 국내 증시 최고의 '안전자산'으로 꼽힌다. 지난해 10월 이후 상장한 58개 공모주(기업인수목적회사 포함) 중 단 1개 종목을 제외한 57개 종목의 상장 당일 시초가가 공모가를 웃돌았다. 특히 올해 상장한 10개 종목의 공모가 대비 시초가 상승률은 평균 200%다. 지난 20일 기준, 올해 상장한 모든 공모주가 공모가 대비 플러스(+) 수익률을 내고 있다.
이렇다보니 1분기 공모주 중 기업가치 기준 최대어인 에이피알 공모에 시중자금 14조원이 쏠리는 현상이 관측됐다. 비례배정으로 1주를 받으려면 3억원을 청약해야만 했다. 국민연금공단이 1주도 배정받지 못한 것 역시 확정공모가가 공모희망가 밴드 최상단보다도 25% 높게 결정됐기 때문이다. 사실상 공모희망가 밴드 내에서만 가격을 제출할 수 있는 국민연금은 공모주 광풍에 소외된 것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다들 증시가 언제 주저앉을지, 공모주 시장 분위기도 언제 다시 하락 반전할지 조마조마한 상황에서 '베팅'을 진행하고 있다"며 "물가상승인지 물가안정인지, 경기침체인지 경기회복인지 아무도 감을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당장 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은 까닭"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