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비 부담에 삽 못뜨는 PF사업장...시행 이익 기회 노리는 건설사들
입력 2024.02.29 07:00
    취재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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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프로젝트파이낸싱(PF) 악순환의 연결고리는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부동산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PF 사업자들은 예년과 같은 분양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치솟는 자재비와 공사비, 점점 더 어려워지는 자금조달 환경은 상수가 됐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실제 공사에 나서는 건설사들은 책임준공과 같은 사업 부담을 회피하거나, 사업성이 다소 떨어지는 사업장은 아예 쳐다도보지 않는 경향이 강해졌다.

      건설사들이 책임준공을 회피하면 사업자가 금융사들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시공사 보증 없이 사업을 진행하려면 훨씬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이는 고스란히 사업비로 전가되기 때문에 사실상 PF를 통해 수익이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건설사가 보증을 하지 못한다면 신탁사가 준공을 책임지는 게 일반적인데 신탁사들도 최근엔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는 추세다.

      일부 대형 건설사들은 이런 상황 속에서 ‘기회’를 포착하고 있다. “시공능력 상위 대형건설사가 시공을 맡는다”는 타이틀이 반드시 필요한 사업자들과 손잡고 시행을 통해 발생하는 이익을 공유하는 건설사들의 사업 방식이 보편화하고 있다.

      지난해 유동성 위기까지 거론됐던 국내 A대형건설사는 최근 국내 사업장 수주의 대부분을 시행사와 이익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공사비만 받고 도급계약을 맺는 형태가 아니라 분양 이후에 개발 이익의 일정 비율만큼 시행사로부터 나눠받는 형태다.

      사실 시행사 입장에선 브릿지론의 만기 연장을 장담할 수도 없고, 시간이 길어질수록 금융 비용이 늘어나는 상황. 여기에 시공사를 구하지 못해 PF 사업이 좌초한다면 상당한 타격을 입는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에 시행 이익을 일부 포기하는 게 낫다는 판단이 깔려있다. 우량건설사가 시공을 맡는다면 투자자를 모집하거나 분양에 보다 수월한 것도 사실이다.

      서울 한복판 호텔 부지에 초고가 하이엔드 주택 건설을 추진중인 시행사는 지난해 B대형건설사를 시공사로 선정했다고 홍보했다. 초고가 주택에 대한 수요는 다소 꺾이기 시작했는데 해당 사업장은 애매한 입지에도 불구하고 3.3m2(평)당 3억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분양가 때문에 사업성이 불투명하단 지적이 나왔다. 아직까지도 투자자들 모집하지 못해 본PF로 넘어가지 않은 상태다.

      해당 사업장은 애초 국내 최고 수준의 B건설사가 시공에 나선다는 점에 투자자들의 이목을 끌었지만 최근 들어 시공 계약이 변경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도급계약서가 사실상 양해각서(MOU) 수준에 불과하고 실제로 착공에 돌입하기까지 갖춰야 할 제반 사항들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시행사에서 자금조달을 완료하면 도급계약 변경을 통해 새로운 시공사를 구하거나 또는 시공사 측에 비교적 유리한 계약서 작성이 불가피 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정식으로 도급계약을 확정하기 전 ‘일단’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모으기 위해 건설사가 시공사의 타이틀을 잠시 빌려주는 형태인 셈이다. B건설사 입장에선 직접 자금을 투입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실제로 착공에 들어가기 전까지 손해 볼 일은 없다. 해결할 제반 사항이 많은 MOU 수준이라도 시공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불법으로 보기도 어렵다. 만약 착공에 돌입하기 전 시행사가 자금조달을 마쳐 수익을 확정한다면, 리스크를 덜어내고 시공에 나설 수도 있다.

      사실 전국의 부실PF 사업장들은 아직 제대로 수면 위로 드러나지도 않았다. 현 시점에서 장기간 본PF로 넘어가지 못한 사업장들이 당장 정상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투자자들은 많지 않다. PF 시장을 살리겠단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다소 꺾이기 시작한다면 시행사, 신탁사, 건설사 그리고 건전성이 취약한 금융사 등 한국 부동산 시장에 걸쳐 있는 주체들이 연쇄적인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단 불안감이 감돌기 시작한 건 이미 오래전이다.

      특히 금융사들로부터 직접 자금을 빌려 PF사업을 펼친 시행사들의 불안감은 더욱 크다. 이러한 사업자들을 대상으로 대형 건설사들이 기회를 노리는 형태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부동산 시행 사업을 추진함에 있어 자기자본 요건을 강화할 것을 주문했다. 자본력이 열위한 사업자, 시행사들은 앞으로 PF 사업을 점점 더 영위하기 어려워진 상황이 펼쳐질 것이다. 반대로 디벨로퍼로서 경력과 자본을 갖춘 몇몇의 건설사들엔 개발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