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지배구조 개편 실패한 현대차...6년째 움직임 없어
핵심은 현대차 지배하는 모비스...'모비스 주가 낮게 유지할 유인'
주가 제고 강제 이행방안 도입시 모비스 부담 적지 않아
"모비스 강제 의무 부과됐다면 매우 곤란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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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그룹 중 유일하게 순환출자가 유지되고 있고, 승계가 마무리되지 않은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 주가를 낮게 유지할 유인이 있습니다. 그룹 내 대표적인 '저(低)PBR주'인 모비스에 일본처럼 강제적인 주가 상승 이행 의무가 부과됐다면, 매우 곤란했을 겁니다." (한 의결권자문업체 관계자)
현대차그룹은 지난 2018년 승계를 포함한 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했다. 골자는 ▲모비스에서 모듈 및 AS부품 사업을 떼어내 현대글로비스에 합병하고 ▲최대주주 일가가 보유 중인 글로비스 지분을 전량 기아차에 매각하며 ▲이렇게 확보한 자금으로 최대주주 일가가 계열사 보유 모비스 주식 전량을 인수하는 방안이었다.
당시 개편안은 국내외 주주들의 대규모 반발로 인해 실패로 돌아갔다.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유명해진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도 맹공을 가했다. 이후 현대차그룹은 승계 및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전면 중단했고, 6년이 지난 현재까지 큰 움직임이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현대차그룹 승계 공식이 생각보다 매우 간단하다고 입을 모은다. 현대차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은 결국 모비스→현대차→기아차로 이어지는 지분 구조다. 모비스 지분을 최대주주 일가가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핵심이다. 당연히 모비스의 주가가 낮을수록 이 작업은 순탄해진다. 1938년생, 만 86세인 정몽구 명예회장의 유고상황 발생시 상속세까지 고려하면 모비스 주가는 더더욱 '올라서는 안된다'라는 결론이 나온다는 평가다.
2018년 실패를 경험한 현대차그룹이 다시금 주주총회 동의가 필요한 분할합병을 선택할 가능성은 낮게 점쳐진다. 남은 길은 가격에 논란의 여지가 없도록, 상장계열사의 지분 가치를 활용해 모비스 지분을 확보하는 방법 뿐이다.
최대주주 일가, 특히 정의선 회장이 지분을 직접 보유하고 있는 현대차와 글로비스의 지분을 매각하거나 모비스에 현물출자할 가능성이 유력하게 떠오른 배경이다. 이 경우 현대차그룹은 모비스 주가를 최대한 낮게 유지하며, 현대차와 글로비스 주가를 최대한 높게 끌어올릴 유인이 생긴다.
실제로 현대차그룹 주요 계열사의 주주환원 정책을 살펴보면 이런 '시나리오'와 방향성에 큰 차이가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차는 지난해부터 분기 배당을 실시했다. 배당도 연결 지배주주 순이익 기준 배당성향 25% 이상으로 못 박았다. 향후 3년간 매년 1%씩 자사주 소각도 실시한다. 자사주 소각까지 반영한 주주환원율은 이미 2022년 29%에 도달했다. 글로비스 역시 2022년 결산부터 전년 대비 배당금을 최대 50%까지 늘리겠다고 약속했고, 실제로 주당 배당금을 3800원에서 5700원으로 50% 올렸다. 올초 발표한 지난해 결산 배당금 역시 6300원으로 전년 대비 10% 올랐다.
모비스는 정 반대다. 연초 모비스가 발표한 주주환원 정책은 지분법이익 제외 배당성향 20~30%, 자사주 1500억원 매입소각으로 전년과 동일했다. 2023년 기준 배당성향은 20.4%로 전년대비 후퇴했고, 글로비스보다도 낮아졌다. 분할합병안 통과가 절실하던 2018년 내놓은 '3개년 정책'이 끝난 이후, 주주환원 규모가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모비스는 지난 2018년 분할합병 발표 이후 주주 설득 과정에서 '2025년엔 영업이익률 10%를 달성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그러나 2022년과 2023년 영업이익률은 4%조차 넘어서지 못했다. 현재 제시된 2025년 영업이익률 컨센서스는 4%대 중반이다. 10%는커녕 5%조차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15년 제일모직 합병을 앞두고 삼성물산이 기업가치를 낮추기 위해 일부러 재건축 등 공사를 수주하지 않고 '래미안' 브랜드 매각설을 흘렸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모비스의 수익성이 10년 넘게 정체되는 것 역시 의도된 것 아니냐는 '시나리오'가 증권가 일각에서는 정설로 통할 정도다.
지배구조 개편과 승계를 위해선 모비스 주가가 낮게 유지되는 게 최대주주에 유리한 까닭이다.
만약 일본식으로 PBR 1배 미만 기업의 상속ㆍ증여세를 장부가(PBR 1배)로 강제하는 규제가 나왔을 경우, 현대차그룹의 승계는 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현재 현대모비스의 PBR은 0.54배 수준이다. 증여ㆍ상속시 시가가 아닌, 장부가를 적용받을 경우 과세 과표가 시가 대비 2배 가까이 오르게 된다. 자연스레 납입해야할 증여ㆍ상속세 규모도 2배로 늘어난다.
이 때문에 증권가에선 이번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발표를 앞두고 현대차그룹의 부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어찌됐든 규제로 인해 모비스 주가를 올려야 하는 상황이 오면 가장 큰 부담이 생기는 게 현대차그룹이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밸류업 방안이 사실상 '속 빈 강정'으로 드러나며, 가장 큰 수혜를 보는 게 현대차그룹이 아니겠느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달 28일 공개석상에서 "주주환원 등 일정 기준에 미달하는 상장사는 증권시장에서 적극적으로 퇴출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언했지만, 실제 실행에 옮길 수 있을 거라 믿는 시장 관계자는 거의 없다. PBR이 0.5배에 불과한데다 주주환원 관련 주주들의 실망감이 지속적으로 표출되고 있는 모비스급 기업을 실제로 퇴출시킬 수 있겠냐는 것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은 상속세 부담이 과중해 지배구조 핵심 기업 주가를 낮게 유지할 유인이 충분하다"며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선 기업의 주주환원과 더불어 상속ㆍ증여세 개편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계속 제기되는 이유"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