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선 3조 몸값도 거론되지만 원매자는 갸웃
10월 만기 도래 인수금융은 리파이낸싱 가능성
"IFRS17 시대 첫 가치평가니 신중해야" 지적도
-
- 이미지 크게보기
- (그래픽=윤수민 기자)
롯데손해보험 매각이 점차 속도를 내는 가운데 인수금융 리파이낸싱(차환) 가능성도 고개를 들고 있다. 매도자는 10월 롯데손해보험 인수금융 만기 전에 매각을 완료한다는 계획이었으나 원매자들이 보수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어 시간을 벌어야 할 필요성도 있다.
아직 논의는 본격화하지 않았지만 금융사들은 리파이낸싱 난이도가 낮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잠재 인수후보나 차환 작업을 맡아줄 금융사 모두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시대의 첫 매물인 롯데손해보험의 실적을 놓고 신중한 시각을 유지하는 분위기다.
롯데손보의 최대주주인 사모펀드 JKL파트너스 매각 주관사 JP모건을 통해 신한·하나·우리 등 국내 금융지주와 글로벌 사모펀드(PEF) 등 원매자 후보들과 접촉하고 있다. 올해 10월 약 2800억원 규모의 인수금융 만기가 도래하기 전까지 매각 작업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JKL파트너스는 2019년 6월 롯데그룹으로부터 구주 7182만여주를 약 3734억원(주당 5199원)에 인수했고, 그해 1억6725만여주(약 3562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하는 등 총 7300억원을 들여 지분 77%를 확보했다.
시장에서는 JKL파트너스가 롯데손해보험 매각가로 3조원 수준을 기대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대로 거래가 성사된다면 빚을 갚고도 2조원 이상의 차익을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
시장에서 언급되는 3조원대 기업가치의 핵심 근거는 '계약서비스마진'(CSM)이다.
새 회계제도(IFRS17) 아래서 보험사들은 기존엔 부채로 인식했던 장기보장성보험 계약을 매 분기마다 CSM 항목을 통해 이익으로 반영할 수 있다. JKL파트너스는 롯데손해보험을 인수한 후 대대적인 체질 개선을 통해 자동차보험·일반보험·저축성보험 대비 장기보장성보험 비중을 끌어올렸다. CSM은 장기보장성보험이 많을수록 높게 반영되는데, 작년 기준 회사의 전체 원수보험료에서 장기보장성보험이 차지하는 비중은 86%에 달한다. 작년 말 기준 롯데손해보험의 CSM은 2조3966억원으로, 전년 대비 40% 증가했다.
롯데손해보험의 기업가치가 크게 높아졌지만 잠재 원매자들은 기업가치 상승분이 새 회계제도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며 보수적인 시각을 드러내기도 한다.
새 회계제도 아래 첫 대형 보험사 M&A라는 점도 부담스럽다. 금융지주 사이에선 조단위 규모의 '빅딜'을 바뀐 회계 기준으로 선뜻 진행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있다. MG손해보험·KDB생명·ABL생명·동양생명 등 시장에 잠재 매물이 대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각에선 당국이 롯데손해보험 사례를 보고 새로운 거래 지침을 내놓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사후적으로 '잘못된 M&A'였다는 낙인이 찍힐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롯데손보가 호실적을 유지하고 있다지만 이를 밸류에 반영해야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며 "기업가치에 CSM을 얼마나 반영해야 하는 지를 두고 매도자와 매수자 측의 눈높이 차이가 크다"고 설명했다.
롯데손해보험 인수전에 해외 자본이 뛰어들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최선의 결과를 얻으려면 여러 금융지주간 경쟁 구도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매각 성공을 낙관하기 어렵다. 인수금융 만기까지 쫓기면 거래 조건이 더 불리해질 수 있기 때문에 리파이낸싱 준비도 병행할 것으로 보인다.
롯데손보 측은 "매각을 최우선으로 두고 매각 불발 시를 고려해 리파이낸싱을 고려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리파이낸싱 작업에서도 M&A와 마찬가지의 고민이 나타날 수 있다. 회수 시기를 늦추려면 리캡(자본재구조화)까지 해서 출자자(LP)에 자금 일부를 돌려주는 성의를 보여야 할 수도 있다.
다만 상장사가 주식의 시장가격을 훌쩍 뛰어넘는 가치를 인정받기는 쉽지 않다. 좋은 회사긴 하지만 금융사 입장에선 빚을 더 많이 내줄 근거가 마땅치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롯데손해보험의 시가총액은 2월 29일 종가 기준으로 8876억원으로 CSM에 기반한 기업가치와 괴리가 크다.
통상 사모펀드는 출자전환·배당·레버리지 등 자본 재조정을 통해 투자금을 중도에 회수하고 차환 부담을 줄인다. 이때 리캡으로 차입 규모를 조정하려면 현금흐름할인(DCF) 방식을 적용해 기업가치를 임시로 책정해야 하는데, 금융사 입장에선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2019년 인수 때 4%였던 인수금융 금리도 최근 7% 수준으로 부담이 만만치 않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리캡의 경우 시장에서 보는 가업가치를 산정하는 선례가 될 수 있다”며 "적은 금액으로 금융권의 의견이 모아질 수 있어 매도자 입장에서도 고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