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글라스루이스가 '찬성' 권고하며
글로벌 투자자들 찬성표 던질까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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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물산에 행동주의펀드 연합이 주주환원 강화를 요구한 가운데 정기 주주총회에서 해외 투자자들의 표심이 어디로 향할지 주목된다. 지분구조 상 행동주의펀드의 요구가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들이 행동주의펀드 제안을 지지하는 만큼 일말의 변수는 남아 있다. 이번 주주총회가 ‘삼성’을 바라보는 해외 투자자들의 시선을 확인할 계기가 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이날 삼성물산의 외국인 주주 다수는 의결권 행사를 마감한다. 통상 외국인 주주들의 의결권 행사는 주총일을 앞두고 1~2주일 영업일 내에 미리 마감한다. 삼성물산의 올해 정기 주주총회는 이달 15일로 예정돼 있다.
행동주의펀드들은 지난달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1심 무죄 판결 직후 삼성물산에 대한 주주 행동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지난달 씨티오브런던인베스트먼트, 안다자산운용, 화이트박스어드바이저스 등 5곳이 포함된 행동주의펀드 연합은 삼성물산에 정식으로 주주제안서를 송부했다. 이에 삼성물산은 정기 주총에 이들이 공동 제안한 자사주 소각과 현금배당 안건을 의안으로 상정했다.
행동주의펀드 연합의 지분을 합산하면 1.46% 수준이다. 이들의 주주제안엔 보통주 1주당 4500원(우선주 4450원)을 배당, 5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취득 프로그램을 가동 등 내용이 담겼다. 주주제안에 참여하지 않았던 영국 행동주의펀드 팰리서캐피탈도 정기 주주총회에서 자기주식 취득과 인상된 배당금 내용 등이 포함된 주주제안을 지지하겠다고 이달 4일 밝혔다. 팰리서캐피탈은 삼성물산 지분 0.62%를 보유하고 있다.
다수의 행동주의펀드가 삼성물산 상대로 주주 행동에 나서면서 표대결이 불가피해졌다. 다만 지분구조 상 행동주의펀드의 승리를 낙관하긴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9월말 기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포함한 특수관계인이 삼성물산 지분 33.63%를 보유하고 있다. 삼성의 우군으로 분류되는 KCC(9.17%)까지 합치면 지분율은 40%가 넘는다.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지분 7.25%(작년 9월말 기준)를 갖고 있다. 팰리서캐피탈은 4일 삼성물산 주주환원 강화에 대한 국민연금의 적절한 의결권 행사를 요구하는 주주서한을 보냈다. 삼성물산 주가 저평가와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 해소를 위한 스튜어드십코드 강화를 요구했다.
다만 국민연금이 삼성물산에 대한 행동주의펀드의 주주제안에 찬성할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국민연금이 과거 해외 헤지펀드의 주주행동에 힘을 실어주는 사례를 찾기 힘든 점도 고려된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시장에서 불만을 보이는 지금의 삼성물산 구조가 만들어지는 데 있어 국민연금이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이번 행동주의펀드의 주주제안에 특정 의견을 보이기는 어려워 보인다”며 “다만 한국 정부 기조 등으로 국내 증시를 향한 해외 투자자들의 관심이 뜨거워 국민연금도 눈치가 보이는 상황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이번 주총 관전 포인트는 표대결 자체보다는, 외국인 투자자로 대표되는 글로벌 시장의 삼성에 대한 시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작년부터 다수의 외국 행동주의 펀드가 삼성물산을 대상으로 문제를 제기하면서 글로벌 시장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현재 삼성물산의 외국인 지분율은 25.5% 수준이다. 삼성물산을 겨누고 있는 헤지펀드들이 글로벌 투자자들을 접촉하면서 어느 정도의 공감대를 이끌어 냈을지 이번 주총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다.
글로벌 의결권 자문기관이 행동주의펀드의 주주제안에 손을 들어준 점도 변수로 꼽힌다. ISS, 글래스루이스는 삼성물산 행동주의펀드 주주제안에 대해 찬성을 권고했다. ISS는 보고서를 통해 “삼성물산의 강력한 대차대조표, 실적 개선, 현금흐름 창출을 고려할 때 배당금 인상과 자기주식 취득을 지지하는 게 타당하다”고 평가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국내 개별 기업에 대한 주총 안건을 모두 살필 수 없다 보니 통상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의 의견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외국인 주주들이 행동주의펀드들의 뜻에 동조해 표를 행사하고, 유의미한 의사 표시에 성공한다면 삼성물산이 받는 압박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한 지배구조 자문업계 관계자는 “낮은 지분율을 고려하면 행동주의펀드가 유리한 상황이라고 보긴 힘들고, 이들도 안건 통과보다는 시장에 목소리를 각인시키는 효과를 노리고 있을 것”이라며 “삼성물산 측도 ‘승리’하지 못할 것을 우려할 상황은 아니지만, 외국인 주주 등 투자자들이 이들의 의견에 어느 정도 동조해 ‘압도적 승리’를 하지 못한다면 대외적으로 보여지는 부분이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정부가 코리안 디스카운트 해결을 위한 ‘밸류업 프로그램’에 나서면서 해외 시장에서 국내시장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점도 고려된다. 국내 시장에서 ‘삼성물산’이라는 기업이 가진 대표성을 고려하면 삼성물산 사례가 ‘시작’이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