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회 '유찬형' 對 지주 '사재훈' 염두...지지 기반 달라
농협금융 출범 12년만에 인사권 두고 첫 갈등 외부 표출
이석준 지주 회장 임기 올해 말 만료...교체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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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중앙회와 농협금융지주가 자회사 차기 대표이사 선임을 놓고 갈등을 빚었다. 중앙회와 지주 사이 인사권을 두고 내홍이 표면화한 건 농협금융 출범 이후 12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는 후문이다. 금융당국의 압박에 일단 양자가 한 발씩 물러서는 것으로 정리가 됐지만, 남아있는 불씨가 지주 회장의 임기 만료에 맞춰 올해 연말 다시 발화할 거란 전망이 제기된다.
이번 NH투자증권 차기 대표이사 선정전은 삼파전으로 진행됐다. 선정 절차 자체가 중앙회장 선거 이후로 밀린 상황에거 각각의 지지 기반을 갖춘 세 후보가 숏리스트(최종적격후보자)에서 격돌한 것이다.
증권업 경험이 전무한 유찬형 전 농협중앙회 부회장이 NH투자증권 사장 후보 숏리스트에 포함된 건 강호동 신임 농협중앙회장의 의중이라는 게 정설이다. 유 전 부회장은 강 회장의 측근으로, 이번 중앙회장 선거에서도 강 회장 캠프에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재훈 전 삼성증권 부사장은 이석준 농협금융 회장이 염두에 뒀다는 분석이 지주 안팎에서 나온다. 라임ㆍ옵티머스사태 등에 휘말렸던 NH투자증권에 외부 인사를 통한 개혁이 필요하다는 의중이 반영됐다는 것이다. 윤병윤 IB사업부 대표는 알려져있다시피 정영채 현 사장의 적자(嫡子)로 손꼽힌다.
이번 선정 절차에서 주목 받았던 건 중앙회와 지주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냈다는 점이다. 2012년 농협금융지주 출범 이후 중앙회와 지주는 '엄정한 상하관계'보다는 '협력적 동반자' 관계를 이어왔다. 중앙회장은 지주 회장을 존중하고, 지주는 연간 4000억원 규모의 농협지원사업비(브랜드 사용료)로 보답했다.
신용-경제 분리 후에도 중앙회와 지주간 임원급 인사 교류가 활발히 이뤄졌다. 지역의 풀뿌리 금고 역할을 하고 있는 지역농협의 업무는 은행ㆍ보험과 크게 유사하다. 경제 부문 출신 중앙회 인사가 농협은행의 행장이나 계열사 대표, 주요 임원을 맡을 수 있었던 배경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지주 출범 초기엔 '농협금융지주 회장'이라는 명패를 보고 한 중앙회 간부가 '농협에 회장이 둘이냐'라고 역정을 낸 일이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기도 했다"며 "이후 관료 출신이 잇따라 지주 회장으로 취임하며 지금의 역학구도가 형성된 것인데, 강호동 회장이 측근을 증권 사장으로 밀며 잡음이 새어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회장과 지주 회장 모두 정치적 배경이 탄탄하다는 점이 '강대 강' 대립으로 표출됐다는 분석이다.
강호동 신임 중앙회장은 17년만의 직선제를 통해 당선된 회장이다. 1차ㆍ결선 투표 모두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석준 지주 회장은 기획재정부 출신으로 박근혜 정부때 장관급인 국무조정실장을 거쳤다. 윤석열 대통령 선거 캠프에도 참여했다.
금융당국의 개입이 변수가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감독원은 강호동 회장이 취임한 7일 중앙회와 지주, NH투자증권에 대한 대대적인 검사에 들어갔다. 지주는 예정에 없던 수시 검사였고, 증권은 하반기 예정된 정기검사의 사전검사를 앞당겨 진행하는 모양새였다. 이를 두고 강호동 중앙회장에 대한 견제의 의미라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었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강호동 중앙회장은 지역농협 재직 시절 동일인 대출 한도 초과로 중징계를 받았고, 이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던 전력이 있다"며 "사장 선임을 앞두고 '손자회사에 인사권을 행사하는 건 부당하다'는 목소리까지 나온 것을 고려하면 금융당국이 확실하게 견제의 의사를 표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의 견제는 중앙회장과 지주 회장이 모두 한 발짝씩 물러나는 결과를 낳았다. 유찬형 전 부회장은 증권업 경험이 전무한데다 공직자윤리위원회 취업심사가 아직 진행 중이고, 사재훈 전 부사장은 NH투자증권 사내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크게 낮다는 치명적 약점을 보유하고 있었다.
임원후보추천위원회가 열린 11일, 오전부터 중앙회와 지주 양측에서 '갈등이 그렇게 심한 상황이 아니다', '협의가 잘 진행되고 있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내홍이 봉합되는 수순이라는 분석이 나왔고, 실제로 양측에서 물러서며 내부 인사인 윤병운 IB사업부 대표에게 기회가 돌아갔다.
금융권에선 아직 중앙회와 지주 간 갈등이 끝나지 않았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지난해 2년을 부여받은 이석준 지주 회장의 임기가 올해 말 끝나는 까닭이다. 이번 일로 심기를 상한 강호동 중앙회장이 지주 회장 교체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된다.
농협금융의 대표이사 회장을 결정하는 지주 임원후보추천위원회는 사외이사 3명과 사내이사 1명, 비상임이사 1명으로 구성된다. 사내이사 한 자리는 중앙회 출신이, 비상임이사는 지역농협 조합장이 맡는 것이 관례다. 100% 모회사인 중앙회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될 수 있는 구조다.
한 농협 관계자는 "강호동 회장은 보통 지역 인사를 안배하던 '비서실장' 자리에 전격적으로 자신의 동향 출신 인사를 앉혔다"며 "중앙회의 통제력 강화에 초점을 맞춘 인사가 이뤄지고 있는만큼, 마찰을 빚었던 지주 회장 역시 교체 사정권에 들어왔다고 봐야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신임 사장으로 지명된 윤병운 대표이사 내정자도 풀어야 할 숙제를 안게 됐다. 내부 인사임에도 불구, 내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NH투자증권 노동조합은 임추위가 열린 11일 농협중앙회 본점 앞에서 간담회를 열고 "윤 부사장이 다음 사장이 된다면 앞으로 노사상생은 기대하기 어렵고, 회사는 망가져 가는 길을 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10년래(來) 국내 금융회사 고위급 인사 중 내부에서 성장해 승진한 대표이사를 노조가 거부한 사례는 보기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