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 등 자사주 활용한 자금 조달 가능성 주목
자사주 매입·소각 독려하는 정부 정책은 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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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기업들의 자금 조달 고민이 이어지는 가운데 자사주를 많이 보유한 곳들의 행보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기업 입장에선 자사주는 M&A나 경영권 방어, 자금 확보 등 다양한 목적에 쓸 수 있는 카드니 활용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자문사들도 기업들을 도와 자사주 활용법을 모색하는 분위기다.
다만 정부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내놓고 기업들의 자사주 소각을 적극 독려하고 있다 보니 기업들의 의사 결정이 쉽지 않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우리 경제가 장기 침체로 접어들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22년 하반기부터 허리띠 조이기에 들어간 기업들은 올해도 기존 전략을 전면 수정하고 자금을 확보하는 데 분주하다. 웬만한 대기업들은 수조원에 불과한 시중은행 계열한도가 목전에 찼고 자본시장에서 다양한 조달 창구를 찾고 있다.
여러 기업들이 자회사와 사업 매각, 채권 발행 등 다양한 방안을 고심하는 가운데 주식을 활용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주식 활용 방안 중에서도 이왕 가지고 있는 자사주를 어떻게 손댈 것이냐 하는 고민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들의 자사주 활용법은 무궁무진하다. 지주사 전환을 위한 인적분할 과정에서 오너 일가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도구로 쓸 수 있고, M&A나 사업 제휴 시 현금 대신 지급할 대상으로 쓰이기도 한다. 주주 가치를 높이기 위해 자사주를 사들이는 기업도 적지 않다. 임직원에 대한 성과 보상 수단이기도 하다.
최근 들어서는 어느 기업 할 것 없이 유동성 확보에 애를 먹는 상황이라 자사주가 자금 조달 수단으로 부각되는 모습이다. 예를 들어 자사주를 교환 대상으로 하는 교환사채(EB)를 발행하면 기업 입장에선 이왕 갖고 있는 자사주를 활용해 쏠쏠한 자금 조달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일단 유동성 위기를 넘기되 여유 있을 때 자금을 상환하면 원래 상태로 되돌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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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기업 중에서는 SK㈜의 자사주 활용법에 이목이 모이고 있다. SK㈜는 최태원 SK그룹 회장 및 특수관계인 지분(작년 6월말 기준 26.01%)에 맞먹는 규모의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다. SK그룹은 전사적으로 유동성을 확보하는 데 집중하는 모습이다. 각 계열사는 물론 지주사 SK㈜ 역시 자금을 조달하고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
두산이나 ㈜LS, CJ㈜ 등 지주회사와 삼성화재, 삼성물산, 현대차 등 여타 대기업도 자사주 보유 비율이 높은 기업으로 꼽힌다. 일부는 자금 사정에 여유가 있고, 일부는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 정책을 밝히기도 했지만 자금 조달 필요성이 있는 기업들도 있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 채권보다 주식성 자금 조달이 여유가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국내외 증권사도 자사주 활용 방법에 주목하는 모습이다. 작년 11월 정부의 공매도 금지 정책이 시행되며 기업으로부터 주식을 빌릴 실익이 사라지고 EB 발행도 사실상 어려워졌다. 그러나 공매도를 무한정 금지할 수는 없다 보니 다시 EB 발행 가능성을 살피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주요 자회사 지분은 물론 자사주도 그 대상이다.
문제는 정부의 정책 기조다. 정부는 지난달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배당확대, 기업지배구조 개선 등 다양한 기업가치 제고 방안이 있는데 자사주 매입 및 소각이 핵심으로 꼽힌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주주환원 등 지표를 만들어 이에 미달하는 기업은 거래소에서 퇴출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며 기업들을 독려하기도 했다. 기업 입장에선 적어도 국회의원 선거 전까진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행동주의펀드의 공세를 받고 있는 삼성물산을 비롯 금호석유화학, 키움증권, SK디스커버리, LF 등 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하거나 소각한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이미 자사주 비중이 큰 SK㈜ 역시 2025년까지 시가총액 1%에 해당하는 자사주를 매입하고 소각하는 주주환원 정책을 예정하고 있다. 정부가 저(低)PBR(주가순자산비율) 해소에 힘 쏟는 상황에서 자사주를 자금조달이나 오너의 지배력 강화에 쓰기에 부담스러울 것이란 의견이 나온다.
한 대형 증권사 임원은 “올해는 자사주를 기반으로 한 EB 발행 수요가 많을 것으로 보고 기업들에 제안을 하고 있다”면서도 “다만 정부는 저PBR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기업들의 자사주 소각을 독려하는 상황이라 기업들도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