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회장 특명에 구조조정 속도 내는 롯데, 소주·맥주 사업도 팔까?
입력 2024.03.20 07:00
    취재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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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동빈 회장의 특명으로 롯데그룹은 대대적인 구조조정 준비 작업에 돌입했다. 거의 모든 계열사가 대상으로 일컬어 질 정도로 대규모 사업 재편을 예고한 상태다. 수익성 위주의 체질개선과 경영권 승계까지 완료하면 롯데그룹은 지금과는 또 다른 모습일 것이다.

      롯데그룹의 구조조정이 언급될 때마다 가장 먼저 투자자들 입에 오르내리는 사업은 바로 '주류' 사업이다.

      롯데그룹의 주류사업은 롯데칠성음료가 주도한다. '새로'와 '클라우드'로 대표하는 소주와 맥주 사업, 그리고 신동빈 회장의 애착이 큰 와인사업(Gallo, yellow tail 등)과 최근에 힘을 싣기 시작한 위스키 사업까지 각종 주류가 사업 대상으로 한다. 매각설에 끊임없이 시달리는 이유는 역시 수익성 때문이다.

      지난해 롯데칠성음료는 매출에 기반한 외형이 크게 성장했지만 전 사업부에 걸쳐 수익성은 오히려 후퇴하는 모습을 나타냈다. 롯데칠성의 전체 매출액은 전년 대비 13% 성장한 3조2247억원으로 사상 처음으로 3조원을 넘어섰다. 매출의 대부분은 음료 사업에서 발생하는데 음료사업의 매출액은 1조9534억원으로, 주류사업(8039억원)의 2배를 훌쩍 뛰어넘는다.

      주류사업의 영업이익 기여도와 영업이익률은 음료 사업에 못 미친다. 지난해 주류사업의 영업이익은 336억원으로 전년도에 비해 9%가량 감소했다. 주류사업의 영업이익률은 4.2%로 음료사업(8.3%)의 정확히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전년도(4.8%)에 비해 0.6%포인트(p)가량 줄어든 수치로, 심지어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과 이익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하기도 했다. 

      수익성 감소는 주류 소비 문화의 변화로 회식과 송년회 등이 급감한 것과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소비 감소의 영향이 크다. 특히 주정과 맥아 등의 원재료 가격이 급등하면서 사업비의 부담이 커진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그나마 2022년 롯데가 선보인 저도주 '새로'가 인기를 끌면서 소주 사업이 실적을 지탱하고 있지만 맥주와 와인, 위스키 사업은 모두 매출이 줄며 아직 뚜렷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다.

      맥주시장은 이미 카스(Cass)와 테라(Terra), 켈리(Kelly) 등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가 양분하고 있는 상황이다. 클라우드(kloud)와 신제품 크러시(Krush)를 내세운 롯데칠성은 롯데아사히주류에도 점유율에서 밀리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롯데칠성이 주류 사업에서 손을 뗄 것이란 전망은 최근에 나온 것은 아니다. 정기 인사 시즌마다 항상 거론되던 잠재 매물이기 떄문에 이미 수년전부터 사모펀드(PEF)를 비롯한 원매자들이 수차례 매각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던 와중에 최근 신동빈 회장이 직접 부진한 사업을 매각할 것을 시사하면서 기대감이 더욱 커지는 모습이다.

      PEF 운용사 한 대표급 관계자는 "지주 차원에서 화학사업의 구조 조정과 더불어 주류사업의 매각 가능성까지 열어두고 검토하고 있다"며 "매각 작업이 본격화하면 상당히 많은 인수후보자들이 관심을 보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주류 사업이 대기업이 영위하기에 걸맞는 사업인가'에 대한 투자자들의 의구심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현금흐름을 만들어 내기엔 좋은 사업이지만 내실을 갖추긴 어렵고, 특히나 일명 '죄악주'란 평가를 무릅쓰고 대기업이 무리하게 끌고 갈 필요성이 있는지 평가는 엇갈린다.

      반대로 주류사업과 같은 네트워트와 영업이 기반인 사업은 PEF가 비용 효율화를 통해 수익성을 극대화하기 좋은 비즈니스란 평가도 있다. 물론 대기업의 인력과 유통망 활용을 통한 시너지도 분명하지만, '수익성'을 최우선 목표로 사업 구조를 개편할 수 있는 PEF의 특성도 무시할 수는 없다. 

      최근 들어 M&A 시장에 대기자금이 늘어나고 대기업발 매물들이 자취를 감춘 상황은 롯데그룹, 특히 롯데주류에 관심을 보이는 PEF 운용사가 늘어나는 배경이다. 

      현재 맥주시장의 1위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오비맥주가 미국계 사모펀드 KKR에 인수된 이후 현재의 최대주주인 'AB인베브'에 도로 매각된 전례도 롯데주류 매각의 기대감을 키우는 배경 중 하나다. KKR은 인수와 재매각까지 딱 5년 만에 40억달러(당시 약 4조원)에 달하는 차익을 거뒀는데 해당 거래는 국내외 PEF운용사들 사이에 전설처럼 각인돼 있다.

      롯데주류는 과거 두산그룹의 소유였다. 1926년 강릉합동주조가 시초인 롯데주류는 1985년 두산그룹에 편입됐고 1990년 백화, 1995년 두산백화에서 1998년 두산주류BG로 사명을 변경했다. 두산그룹이 구조조정을 펼치던 2009년 두산주류BG는 롯데그룹에 인수됐다.

      롯데그룹은 당시 오비맥주 인수전에도 뛰어들었지만 KKR-어피너티의 연합군에 고배를 마셔야 했고, 이후 야심차게 자체적으로 시작한 맥주 사업이 여전히 힘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당시의 패배가 더욱 뼈아프게 기억되고 있다.

      당장 롯데칠성의 모든 주류 사업이 매물로 등장할 것으로 보긴 어렵다. 이 가운데서도 선택과 집중, 예를 들어 신동빈 회장이 직접 애착을 갖고 챙기는 것으로 전해지는 와인 사업 등은 배제될 가능성도 있다. 

      2004년 신동빈 회장이 정책본부장에 취임해 경영 일선에 등장한 이후 현재까지 사들인 기업들만 60여곳이 넘는다. M&A를 통한 확장 전략으로 재계 6위까지 올랐다. 사들인 계열사들 가운데 몇몇은 그룹의 중추로, 어떤 계열사들은 그룹의 발목을 잡는 골칫거리로 전락하기도 했다. 

      앞으로 신동빈 회장 그리고 새로운 롯데그룹 경영자의 치적은 '사는 것'보다 '파는 것'에 무게 중심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언젠가 롯데그룹의 품을 떠날 수 있단 불안감은 롯데주류뿐 아니라 현재 그룹의 모든 계열사에서 감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