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 같은 NH證 대표 선임 갈등, '원죄'는 누구에게 있을까?
입력 2024.03.21 07:00
    Invest Column
    농협중앙회장ㆍNH금융지주회장 모두 체면 구긴 상황
    갈등 봉합 어려워…결국 정영채 대표만 '승자' 평가
    원죄는 10년간 농협과 NH투자증권 PMI 내버려둔 때문
    인수 단행하고 '독립경영' 기치로 일을 미룬건 결국 임종룡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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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대형 증권사 5곳 대표이사들이 모두 바뀌었다. 미래ㆍ한국은 예정된 후계자가 새 리더로 나섰다. NHㆍ삼성ㆍ KB는 다양한 부침을 겪었다.

      이 가운데 NH투자증권 사장 교체를 둘러싼 갈등은 국내 금융회사 거버넌스의 '전근대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또 상당수 인사들은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중앙회장은 '체면' 구기고, 지주회장은 무력해지고… 

      11일 취임한 제25대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은 17년 만의 직선제를 통해 당선됐다. 그 어느 때보다 막강한 권한과 정당성을 자랑할 수 있는 상황. 그런 강 회장의 공약 중 하나가 '경제지주의 중앙회' 통합이다. 2012년 이명박 정부 당시 반강제적인 신경분리(신용사업-경제사업 분리)가 이뤄졌으나, 12년간 1중앙회-2지주(경제ㆍ금융지주) 체제로 운영되면서 생긴 비효율이 크다는 판단으로 풀이된다. 

      그런 강 회장이 채 포부를 펼치기도 전에 금융지주회장도 아닌, 그 아래 증권사 대표 하나를 바꾸는 데 실패했다. 심지어 "중앙회장이 언제, 누구를 만나 뭘 부탁했다"는 동선까지 만천하에 알려졌다. 감독당국은 물론, 중앙회 하부조직인 금융지주회장의 공개적인 반대까지 겪여야 했다. 물론 본인 스스로 미숙함을 드러낸 점도 있다. 국내 1, 2위를 다투는 대형 증권사 수장을 뽑는데, 증권 이력은 한 줄도 없는 63세의 농협 지역본부장 출신 인사를 내세웠으니 반대가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할 일.

      결과적으로는? 거대 조직 수장으로서 강호동 회장은 취임도 하기 전 제대로 '체면'을 구겼다. 사안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농협은 이런 흐름이 쉽게 용납되는 조직이 아니다. 게다가 총선이 채 한달도 남지 않은 상황인데, 농민표에 큰 영향을 주는 농민 대통령의 자존심을 긁은 상황이라니...

      멋적어진 건 이석준 농협금융지주회장도 마찬가지. 

      직전 이성희 농협중앙회장 당시인 2023년 취임한 그는 알려진 대로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할 때부터 함께 한 인사다. 기재부 차관, 국무조정실장 등 엘리트 코스를 거친 후 선거캠프에 첫 영입된 것으로 전해진다. 경제부총리 또는 금융위원장 하마평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누가 봐도 '용산'과 밀접한 관계가 예상되는 그가 추천한 후보가 낙마했다. 게다가 직책으로만 따지면 엄연히 NH투자증권 대표 선임은 이석준 금융지주회장이 리드하는 업무가 맞다. 즉 본인의 권한도 제대로 행사 못한 모양새가 연출됐다. 

      만일 KB금융지주 회장이 KB증권 대표 후보를 추천했는데 내부 인사들의 반대로 선임되지 못했다면, 어떤 평이 나왔을까. 지금 이석준 회장이 처한 상황이 딱 그렇다. 그는 올 연말 2년간의 임기만료를 앞두고 '관치인사' , '임기 중 실적저하'에 더해 '중앙회장과 갈등'이라는 부담까지 감내해야 한다. 연임 여부도 불투명해질 상황이고, 행여 연임이 된다면 농협중앙회와 또 다른 갈등이 예고된다. 

      결과적으로 윤병운 부사장만 '어부지리'(?)를 누렸으나 역시 모양새는 좋지 않다. 평사원으로 입사, 30년간 근무한 내부임원이 사장 후보로 추천됐고 지주회장ㆍ중앙회장은 외부인사를 내세웠다. 이런 상황이면 당연히 노조는 "낙하산 사장 후보는 물러가라"고 논평을 내고, 직원과 노조는 윤 부사장에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야 한다. 그런데... 직원 가입율이 70%를 넘어선다고 알려진 NH투자증권 노조의 윤 부사장에 대한 논평은 낯 뜨거울 정도다. "더 이상의 정영채 왕국은 불가하다"  "업계에서 윤 대표의 무능함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IB에 있는, 정 사장 밑에 있던, 자리만 보존 하던 인물” "내부 후보자를 비판해야 하는 상황이 답답하다"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이 나서지 않고, 이석준 지주회장이 사장후보를 단독 추천했다면 과연 윤 부사장이 낙점 됐을까. 

      이러니 이번 다툼의 승자는 정영채 전임 대표라는 평가가 나오기 마련. 따져보면 지난 10년간 NH투자증권의 '실질 주인' 혹은 '의사 결정권자'는 농협중앙회도 아니었고, 농협금융지주회장도 아니었다. '우리투자증권'이 'NH투자증권'으로 개명한 것만 제외하면 항상 '우투증권=정영채 대표'였고 사임의사까지 밝힌 마당에서도 이 공식은 유지됐다. 이는 윤병운 부사장이 사장으로 선임, 향후 웬만큼 좋은 성과를 내지 않는 다음에야 '정영채 대표 2중대'라는 부담을 계속 짊어지고 가야 한다는 의미도 된다. 

      강호동 회장 탓일까, 임종룡 회장 탓일까. 

      농협이 우리투자증권 새 주인으로 낙점된 게 딱 10년 전이다. 2013년말, 굳이 여러 날을 놔두고 성탄절 전야 저녁을 골라 느즈막히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해 빈축을 샀다.

      막강한 경쟁자였던 KB금융지주를 제치고 NH금융지주가 발탁되자 업계에서는 여러 지적이 나왔다. 그 중 하나가 "꼴등 지주회사가 1등 증권회사를 인수했으니 향후 앞날이 걱정된다". 

      꼴찌라는 표현이 달가울 리 없지만… 사실 당시 NH금융지주는 같은 금융지주라고 해도 KB나 신한에 감히 비할 바가 아니었다. 신경분리 후 겨우 1년이 지난 상황이었다. '증권업'이라는 전문적인 분야를 경험한 적도 없었다. 내부 상황은 극히 어수선했다. 초대 NH금융지주회장으로 선임됐던 신동규 회장이 임기 1년이 좀 지나고서 뛰쳐나오듯 전격 중도퇴임했다. 다른 농협 계열사 대표들도 줄줄이 사퇴했다. 최원병 농협중앙회장과 극한 대립과 갈등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우리투자증권 내부의 반발 분위기도 컸다. LG투자증권 시절부터 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역전의 용사'들에게는… 본인들이 그간 '쌀집'이라고 폄하해온 농협에 인수되는 것 자체가 자존심 상할 일이었다. "농협이 증권업에 대해 무얼 안다고 우리를 인수하고, 인사권을 행사하고, 성과를 평가하겠다는 것이냐"는 것. 이러니 과연 NH에서 어떤 인물이 있어서 저 닳디 닳은(?) 증권쟁이들을 상대하고 관리할 것이냐라는 우려가 나왔다. 

      이때 NH금융지주 회장 자리에 올라 우리투자증권 인수를 완료한 이가 당시의 임종룡 NH금융지주회장(현 우리금융회장)이다. 결과적으로 KB지주와의 경쟁에서 승리했으니 도처에서 임종룡 회장에 대한 '찬가'가 이어졌다. "농협중앙회에서 우리투자증권 인수에 부정적인 입장이 절대적이었으나 임종룡 회장이 30분만 이사회에서 얘기하게 해달라며 전격 설득해 이사회 전원이 인수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 과정에서 임종룡 회장이 내세운 논리가 바로 '독립경영'이었다. "NH투자증권은 전문성 있는 조직이니 경영과 운영에 모두 독립성을 주자"라는 것. 당시 어수선한 내부상황에 증권업 관리가 자신 없던 농협중앙회는 이를 수용했다. 피인수되는 우리투자증권 임원들에게는 '그렇다면 사장선임 등은 우리가 알아서'라는 기조가 마련됐다. 

      이때부터 NH투자증권에서는 김원규 대표 (2013~2018), 정영채 대표 (2018~2024), 그리고 이번에 윤병운 사장 후보까지 이어지는 '내부사장' 선출 기틀이 마련됐다. 그 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다. LG투자증권 시절에는 당연히 LG그룹에서, 또 우리투자증권 시절에는 당연히 우리금융지주에서 사장 인선에 직접 관여하고, 개입했고, 사람을 내려보냈다. 

      언뜻 '독립경영'은 당시 농협이 처한 상황을 해결할 최적의 전략으로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깊게 생각한다면? 

      제조업체도 아니고, 같은 금융회사가 조단위 금액을 지불해 다른 금융회사를 인수했다. 그래놓고서 무려 10년이 넘도록 단 한번도 인사권을 행사한 적도 없고, 다른 금융 계열사와 시너지를 제대로 만들어 내거나 요청하지도 못했다. 알아서 내부인사가 사장으로 올라오고, 알아서 성과급 관리 시스템을 관리하고 운용한다. 

      이런 사례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누군가는 '독립경영'이라고 포장할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이건 그냥 '방치'다. 누군가는 이를 '전문성에 대한 존중'으로 표현하겠지만, 누군가 보기에는 '10년 간의 무능을 증빙한 것'에 불과하다. 

      10년 전 선택한 '쉬운 길'이 현재의 '갈등'을 야기 

      독립경영은 당시로선 모두가 만족할 만한, 편리하고 쉬운 길이었다. 하지만 이에 취해 미뤄 두기만 했던 '인수 후 통합' (PMI : Post Merger Integration)의 숙제가 지금 와서 청구서를 내밀고 있는 모양새다. 

      KB금융지주와 비교하면 상황이 더 명쾌해진다. NH와 정확히 반대로, '1등 금융지주회사'인 KB는 2016년 당시 대형 증권사 가운데는 꼴등격인 '현대증권'을 인수했다. 그 뒤 KB의 행보는? 최초에 현대증권 지분 29.6%를 샀으나, 몇 개월도 지나지 않아 곧바로 무려 70% 지분을 스왑해 완전 자회사로 만들어버리고 상장폐지를 단행했다. 현대그룹 산하의 안이한 근무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인사를 단행했다. 조직문화 개편에 금융지주 회장이 직접 나섰고, 지주에서 사람을 내려보내고 관리했다. 그리고 KB국민은행 및 다른 계열사와 공동 투자 등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시너지 창출에 기여했다. 지금은 'KB증권'을 기억할 뿐, '현대증권'을 기억하는 이들은 드물다. 

      그렇다면 KB가 증권업의 '전문성'을 몰라서 이렇게 했을까.

      같은 해인 2016년 미래에셋증권이 대우증권을 인수할 당시. 박현주 회장이 홍성국 당시 대우증권 대표이사에게 직접 배지를 달아주는 모습을 연출하고, '모두가 한 식구'라며 노조를 어르고, '자산관리는 미래에셋으로, 전산은 대우 중심으로' 라면서 피인수회사를 달래는 모양새를 취했다. 하지만 지금 대우증권을 기억하는 인사는 없다. 미래에셋은 철저한 성과평가 시스템을 적용, 어느 곳보다 노조가 강력하다는 대우증권을 제대로 흡수하고 이젠 '대우'라는 이름까지 떼버렸다. 지금은 그냥 미래에셋증권이다.

      같은 기간에 우리투자증권이 보인 모습은 정반대였다. 심지어 당시 김원규 대표 시절, 사내 내부적으로 "농협금융지주가 보유한 우리투자증권 지분을 일부 매각하도록 해서 지배권을 떨어뜨리게 하자"라는 내부 움직임까지 나왔다. 농협이 얼마나 만만해 보였으면 이런 일까지 벌어졌을까. 그만큼 농협의 우리투자증권에 대한 지배력이 '처참한' 수준이었음을 증빙하는 사례다. 

      M&A를 조금이라도 경험해 본 이들은 '인수 후 통합' (PMI)에 대해 한결같이 말한다. "단 1년 안에 '승부'를 봐야 한다. 그 이후부터는 피인수 회사가 절대 고분고분 말을 듣지 않는다". 

      그럼 다시 질문. 임종룡 회장은 우리투자증권을 인수하고 '독립경영'을 보장해 줬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투자증권은 이름만 'NH'로 바꿔달았을 뿐 여전히 우리투자증권이다. 비록 농협이 비전문가를 사장 후보로 내세우면서 감독당국에게까지 지탄을 받고는 있지만...배당 받은 거 빼고는 10년 넘도록 아무런 인사권도, 농협은행이나 NH자산운용 혹은 NH생명보험과의 이렇다 할 시너지도 구가하거나 요구하지 못했다. 농협으로서는 억울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당시 임종룡 NH금융지주회장이 했어야 할 일은 '독립경영' 선언과 보장에 그치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금융지주 회장 재임기간 어떤 식으로든 인사권 문제ㆍ성과평가문제, 그리고 농협중앙회 및 농협 금융사들과 시너지 창출과 협업의 단초를 적극 마련하는 일이었을까. 임 회장의 NH지주회장 재임기간은 2013년 6월~2015년 2월이니 시간이 없지는 않았다. 사실 그게 가장 중요한 일이어야 했다. 이후 김용환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이 이 작업을 단행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이런 일을 단행하기에는 농협의 내부 역량이 도저히 따라 오질 못한다고? 정말 그렇다면 애당초 농협은 2013년에 우리투자증권을 인수하지 말았어야 했다. 이 매각으로 덕을 본 곳은 '우리금융 민영화'라는 허울 뿐인 타이틀을 원했던 당시 박근혜 정부 뿐이다. 

      만일 대기업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그룹 오너나 경영진은 이를 담당했던 임원에 책임을 물어 징계하고 한직으로 보내버린다.     

      임종룡 회장에 대한 금융업계 평가는 여러가지로 나뉜다. 일단 '포용력이 높다' , '갈등조정 능력이 뛰어나다' 등이 거론된다. 신동규 회장이 '못해먹겠다'라고 박차고 나온 NH금융지주 회장 자리에서 묵묵히 버텼다. "회장님은 중앙회장 1명 뿐이다"라고 일컬어지는 조직에서 무리 없이 임기를 채웠으니 이런 평가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 

      하지만 반대 평가들도 있다. '갈등을 직접 해결하지는 못한다' '말을 쉽게 바꾼다' '정부 상황에만 맞춘다' . 당사자는 당연히 이런 평가를 억울해 할 상황이지만 그런 평가가 나올만한 사례도 있다. 

      2015년 임종룡 금융위원장 시절. 금융위는 유암코(연합자산관리) 경영권 매각을 추진하고 새로운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 신설을 추진했다. 이미 매각은 상당수 진행됐다. 숱한 국내외 사모펀드(PEF)들이 인수의향서까지 냈다. 게다가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기자들을 만나 "기업 구조조정의 중심을 정부나 채권단이 아닌 시장으로 만들기 위해 민간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를 조만간 설립하겠다”고 직접 설파하기까지 했다. 

      그러다 어느 한 순간. 무슨 이유에서인지 금융위는 이 계획을 스스로 전면 폐기했다. 나중에서야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청와대가 유암코 매각을 전면 무효화 시켰다는 말들이 전해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 왜 말이 바뀌느냐..며 당황하는 언론을 향해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내놓은 멘트? "(갑자기 바꾼 게 맞지만) 비판이 두려워서 정책 바꾸는 걸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차라리 "정책을 잘못 짜서 죄송하다"라고 말했다면 그나마 신뢰라도 지켰다.  

      지금도 임 회장이 이끄는 우리금융은 다른 금융지주사들이 '자기책임 투자원칙에 어긋난다'며 고뇌하는 ELS 사적배상안에 가장 먼저 찬성, '모범'을 보이며 정부의 이쁨(?)을 한 몸에 받는 상황을 연출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