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내 공중분해설'까지…이지스자산운용 위기론 부각 배경은
입력 2024.03.21 07:00
    부동산 침체에 금감원 검사ㆍ매각설 겹치며 LP들 '불안'
    금감원 '진지하고 강경하게' 제재 검토...업무정지 등 언급
    삼부빌딩 손실 시작으로 국내외 투자자산에도 불안감 커져
    총선 앞두고 정치적 변수까지…'압축성장 부작용'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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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이지연 기자)

      "지난해부터 이·마·코(이지스·마스턴·코람코) 셋 중 하나는 날아갈 거란 소문이 파다했죠. 코람코는 전직 관료들이 많이 가 있으니 상대적으로 안전하겠고, 나머지 둘 중 하나인데, 요새 시끄러운 건 이지스이니 다들 그쪽이 제일 위험하다고 여기는 거죠"(한 자산운용사 임원급 관계자)

      이지스자산운용은 정말 위기일까. 금융권에서는 1년 가까이 지속적으로 공중분해설(設)을 제기하고 있다. 부동산 위기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부동산 자산 운용규모(AUM)이 큰 데다 자기자본까지 상당부분 투입한 이지스자산운용(이하 이지스운용)이 '버틸 수 있을까'라는 게 화두다.

      여기에 매각 가능성 등 주주 구성 불안, 전격적으로 진행된 금융감독원 수시 검사, 연기금을 대상으로 한 감사원의 대체투자 조사까지 회사 안팎에 악재가 겹겹이 쌓이는 모양새다. 이지스운용은 투자자(LP)들을 달래기 위해 자산관리에 집중하며 내부를 단속하고 있지만, 이번 위기를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물음표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최대 LP 중 하나인 국민연금공단은 최근 불거진 경영권 매각설과 관련, 이지스운용에 불편한 심기를 전달했다. 오래 거래관계를 맺어온 주요 출자자의 일원으로 조 단위 금액을 집행하고 있는데, 경영권 매각 가능성 같은 핵심 이슈를 사전은커녕 사후에도 제대로 설명받지 못했다는 내용이었다.

      국민연금은 이지스운용이 AUM 65조원의 국내 최대 대체투자 운용사로 성장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투자자다. 이지스운용의 성장 비결로 부동산펀드계에 최초로 도입한 '블라인드펀드'(투자 대상을 정하지 않고 투자자부터 모으는 펀드)가 꼽히는데, 국민연금은 이지스운용의 블라인드펀드 1호(2200억원,2016년)와 2호(4000억원, 2018년)에 모두 과반 이상을 출자하는 '앵커 투자자'로 참여했다.

      한 연기금 관계자는 "이지스운용은 국민연금 국내 대체투자의 주요 축 중 하나인데, 지난해 금감원이 사적이익추구 등 이슈로 수시 검사를 진행한데다 올해 초 매각설까지 불거지며 심기가 불편해졌을 것"이라며 "대체투자에 자금을 집행한 국내 연기금 중 이지스운용과 무관한 곳이 거의 없기 때문에 다들 비슷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전했다.

      금감원은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이지스운용에 대해 전격 수시검사를 진행했다. 조사 이유에 대해서는 대외적으로 함구하고 있지만, 운용업계에서는 전(前) 최고경영자(CEO) 관련 일감몰아주기 및 사적이익추구 관련 사항으로 인지하고 있다. 보통 조사 착수 시점부터 1년에서 1년6개월 사이에 결론이 나오는 점을 감안하면 올 상반기 내 제재 여부 및 수위가 정해질 전망이다.

      법조계에서는 예상되는 제재 수위가 상당히 높을 거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금감원이 이지스운용 제재에 대해 '진지하고 강경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지스운용측 소명이 얼마나 받아들여지느냐에 따라 달라지긴 하겠지만, 과태료 등 비교적 간소한 처분보단 영업정지 등 무거운 징계가 내려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감사원이 연기금ㆍ공제회의 국내외 대체투자에 대해 들여다보고 있는 것 역시 잠재적 리스크로 손꼽힌다. 연기금의 자금 집행 과정에서 법규 위반 등 사안이 드러날 경우 돈을 받은 이지스운용 역시 책임을 피할 수 없는 까닭이다. 감사원이 이지스운용을 직접 징벌할 권한은 없지만 금감원에 처분 요구를 할 수 있고, 형사 사안이 겹쳐있다면 고발을 진행할 수도 있다.

      이지스운용의 사업이 큰 문제 없이 진행되고 있다면, 이 같은 이슈들은 사족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평가다. 문제는 부동산 시장 침체의 역풍을 이지스운용도 피해갈 수 없었다는 점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이지스운용이 집행한 투자 건에 대한 신뢰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회사 안팎에 잡음이 무성한 상황"이라며 "펀드에 출자한 LP들부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고, 이런 불안감이 소문을 타고 금융권으로 번지며 '위기설'로 진화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 이지스운용 사업능력에 대한 의문을 키운 결정적 계기로는 지난해 5월 삼부빌딩 재개발 사업 실패가 꼽힌다. 당시 시공사인 롯데건설이 투자금을 전손처리하며 해당 이슈가 불거졌다. 사업장은 결국 공매로 넘어갔고, 이지스운용은 이 과정에서 수백억원대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에도 국내 사업장 부실 우려는 이어졌다. 용산 밀레니엄 힐튼호텔 개발 사업은 아직 건축인허가를 받지 못했다. 오는 5월 후순위 투자자(트렌치D)들의 PF 대출 2000억원의 만기가 돌아오고 있다. EOD가 발생할 뻔한 아슬한 상황도 이어지고 있다. 서초동 백암빌딩 개발 사업이 대표적이다. 공사비를 증액하고 책임준공기간 10개월 연장하는 데 성공하며 한숨 돌렸지만, 공사가 30%가량 진척된 상황에서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뻔 했다는 분석이다.

      해외 사업장 역시 쉽지 않은 상황으로 전해지고 있다. 해외 부동산 열풍이 불던 2010년대 후반에 투자했던 물건들이 줄줄이 처치곤란 상태에 빠진 것이다. 네슬레 스페인사옥은 지난해 상반기부터 배당이 '올스톱' 돼 있다. 리파이낸싱이 어려워 기존 대출금을 갚지 못한 영향이다. 현재 매각 주관사를 선정해 매각을 추진 중이다. 

      80% 넘는 손실을 기록 중인 독일의 트리아논 빌딩(이지스 글로벌 부동산 투자신탁 229호)은 대출 만기 연장을 통해 디폴트(채무불이행)를 겨우 막고 있다. 유럽의 물류센터도 골칫거리다. 프랑스 파리, 영국 브리스톨, 스페인 바르셀로나 등에 위치한 물류센터에 투자했지만 건물가치가 하락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와중에 불거진 매각설도 혼란에 혼란을 더했다는 지적이다. 

      이지스운용의 지배구조는 안정되지 않았다. 2010년 설립된 이지스자산운용 창업주인 고 김대영 의장의 아내인 손화자 여사가 지분 12.4%를 보유하고 있고 대신파이낸셜(12.3%), 조갑주 전 신사업추진단장(11.89%), 우미글로벌(9.08%), 금성백조주택(8.59%), 현대차증권(6.59%), 한국토지신탁(5.31%), 태영건설(5.17%) 등이 주요주주다. 

      손화자 여사는 고령인데다 경영에 관여하지 않고 있어 지분 매각 필요성이 있는 상황이다. 우미글로벌ㆍ금성백조ㆍ현대차증권ㆍ한국토지신탁 등 주요 주주들이 동반매각권(태그얼롱)을 보유하고 있다. 손 여사 지분이 매물로 나오면 일시에 30~40%의 지분이 시장에 풀리며 대주주가 변경될 수도 있다. 

      현재 실질적인 대주주 역할은 조 전 단장이 하고 있다. 이번 매각설 때도 조 전 단장이 이메일을 통해 사내 임직원들을 다독이는 모습이 포착됐다. 다만 조 전 단장은 가족회사인 'GFI'를 통해 마곡CP4 등 이지스자산운용이 각종 개발 사업에 참여하면서 금전적 혜택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금감원 수시 검사의 '타깃'일거란 추론이 많다. 금융권의 예상대로 고수위의 제재가 이뤄지면 대주주 역할에도 공백이 생길 수 있는 셈이다.

      이런 와중에 총선을 앞두고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불안정함도 언급된다. 정치권에서도 이지스운용의 현 상황을 주의깊게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이지스운용이 사업장을 가지고 있는 지역구의 국회의원들은 '개발사업 성공 여부'가 곧 표심(票心)과도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한 모습이다. 

      현 정부의 정책 기조도 종잡을 수 없다는 평가다. 연초까지만 해도 총선 전까지 부동산 뇌관을 건드리지 않겠다는 의지가 읽혔는데, 최근엔 '부실 사업장 조기 정리'를 종용하는 등 기조가 변했다는 평가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최근 정부 정책 기조를 '저축은행ㆍ캐피탈은 반드시 살리고, 시행사ㆍ부동산운용사는 구조조정한다'고 읽는 시각이 적지 않다.

      이지스운용은 지난 10년 사이 가장 급격하게 성장한 운용사 중 한 곳으로 꼽힌다. 초창기에는 운용보수를 경쟁사보다 낮추거나 안받는 전략 등을 활용해서 자금을 모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박리다매' 전략으로 불황기에도 부동산 포트폴리오를 채워야 하는 기관투자자들의 자금을 이끌어냈다. 

      어느정도 트랙레코드(투자이력)를 쌓은 이후엔 자금 집행 속도가 빠른 블라인드펀드를 최초로 도입하며 성장세를 키워나갔다. 이 과정에서 시행사와 비슷한 수준으로 개발사업을 주도하거나, 직접 건물관리(PM) 사업에 나서는 등 단순 운용사 업무에 그치지 않고 외연확장을 끊임없이 시도했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이지스운용은 최근 10여년새 '압축성장'을 했고, 그 과정에서 운용사답지 않은 사업에 손을 대거나 인력들을 대거 빨아들이면서 일정부분 업계에 척을 진 부분이 있다"며 "부동산 시장이 활황일 땐 드러나지 않던 리스크 요인들이 '파티가 끝나며' 일시에 문제화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지스운용 관계자는 "사익추구로 지적받는 부분은 투자자 보호를 위해 인허가전 단계에서 자기자본이나 임직원자본이 들어간 것"이라며 "이런 책임운용 차원에서 늘린 고유투자 중 개발 비중은 크지 않아 부동산 부실에도 재무적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근 인력 이탈이 있는 건 사실이나 경쟁사에 비해 규모가 컸던 투자부문에서 주로 일어나고 있고, 현재 핵심 부문인 자산관리 부문의 인력들은 투자자 자산 보호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