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시장 정체 속 보험사 위주 금융 고민 깊어
現한화금융 체제 만든 여승주 부회장 이어야
한화家 내부에선 호텔ㆍ유통 확장이 더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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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한화금융 계열사들의 성장이 정체되면서 그룹 내부에서도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지분구조상 한화생명이 금융사들의 최상단에 위치하고 있어, 한화투자증권ㆍ한화자산운용 등 투자 중심의 회사들은 성장에 제약을 받는다. 해외시장 진출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지만 기업간 경쟁 심화로 쉽지 않을 전망이다.
동시에 한화그룹에선 방산ㆍ금융ㆍ유통 중심의 3세 경영 체제가 점차 윤곽을 잡아가고 있다. 그간 한화금융 계열사 살림을 도맡아왔던 여승주 한화생명 부회장의 임기가 종료되면, 김동원 사장 체제가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의 금융사 경영 역량을 입증해야 하는 시험대가 다가오고 있는데, 안팎으로 성과를 내기가 어려운 탓에 시장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는 상황이다.
김동원 주도하는 해외 금융사 인수…미국 시장에 비중 둬
한화그룹의 금융 계열사(이하 한화금융)들은 지난해 인도네시아 손해보험사 리포(LIPPO) 인수를 기점으로 해외시장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인도네시아 재계 순위 6위인 리포그룹의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지분도 각각 사들였고, 리포의 은행 계열사 인수도 추진 중이다.
한화금융은 특히 해외에 은행을 설립하는 데 공들이고 있다. 지난 2012년 말레이시아에 1억달러(한화 1300억원) 이상을 투입해 은행을 세우려 시도했으나 당국 규제로 무산되자, 앞장서 규제 완화를 요구하기도 했다. 당국은 올해부터 보험사의 해외 금융사 소유를 전향적으로 허용하기로 했는데, 여기엔 한화금융의 역할이 컸다고 전해진다.
한화금융의 해외시장 진출은 CGO(최고글로벌책임자)인 김동원 사장이 주도하고 있다. 아직까진 인도네시아 및 베트남 사업 위주로 진행 중이지만, 최종적으론 미국과 유럽 등 탈(脫)아시아 사업을 확장한다는 방침이다.
그 중에서도 김 사장은 현지 유학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 금융그룹과의 협업을 추진하고 있다. 10여년 전부터 현지 금융사 지분 인수를 위해 직접 나서는 등, 미국 진출에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생보 아래 놓인 증권사ㆍ운용사…반등 어려운데 투자 손실까지
김동원 사장이 글로벌 진출을 강조하는 이유는 국내 금융 사업 성장성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한화투자증권과 한화손해보험, 한화자산운용 등은 한화생명의 지배 아래에 있다. 사실상 한화생명이 한화금융지주 역할을 하는 셈이다. 최상단에 위치한 한화생명의 연간 순이익, CSM(보험계약 서비스마진) 등은 삼성생명에 밀린다. 지난 2022년(별도 기준)엔 교보생명에 순이익도 밀리며 생보업계 2위 자리를 내주기도 했다.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국내 보험 가능인구 자체도 줄어들고 있어, 순이익을 늘리기 쉽지 않다.
증권업과 운용업에서 대안을 찾으려 해도 여의치 않다. 양사는 국내 시장에서 중하위권을 지속 유지하며 반등의 기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보험사(LP)가 가진 현금을 활용해 투자 수익을 늘리려고 해도, 생보사에 대한 당국의 감시가 엄격해 보수적이지 않은 투자는 집행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한화금융 계열사들의 투자 부문에선 손실마저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한화생명의 투자손익은 전년 대비 60% 넘게 줄었고, 같은 기간 한화투자증권은 주식 운용 부문에서 44억5200만원의 평가차손을 기록했다. 한화투자증권은 2019년 투자한 블록체인 플랫폼 기업 캡브릿지홀딩스 투자금, 중국 비상장주식에 투자하는 한화-NP CHINA 1호 펀드도 전액 손실 처리했다.
해외부동산 투자 손실도 골칫거리다. 한화생명이 LP로 나선 해외 상업용 부동산 익스포저는 3조원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한화자산운용이 2000억원 넘게 우선주 투자한 미국 뉴욕 '엑슨모빌빌딩'(Exxon Building)도 공실 문제가 심각해 올해 9월경 대주단의 기한이익상실(EOD)이 예상된다.
한 인수합병(M&A)업계 관계자는 "한화금융이 미국 소재 금융사 인수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도 국내 생보사 위주의 영업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라며 "증권사와 운용사를 키우려면 ㈜한화 차원에서 계열사를 분리해야 하는데, 이는 한화가(家) 승계 작업이나 마찬가지라서 당장 추진하긴 어렵기 때문에 돌파구를 찾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여승주 이어 김동선까지…안팎에서 존재감 드러내기 여의치 않아
글로벌 진출은 난항을 겪고 있고, 국내 시장에선 수성(守城)도 쉽지 않다. 한화금융에선 여승주 부회장의 연임에, 한화그룹에선 동생인 김동선 부사장의 행보에 힘을 실어주는 목소리도 나온다. 안팎으로 향후 한화금융을 이끌어야 할 김동원 사장의 어깨가 무거워질 것으로 풀이된다.
그간 한화금융은 여승주 부회장 경영 체제 아래에서 성장세를 이어왔다. 여 부회장은 2019년 한화생명 대표이사 자리에 올라 제판분리(상품의 제조와 판매 분리)를 처음으로 시도한 인물이다. 한화생명의 영업부문을 따로 떼어낸 법인보험대리점(GA) '한화생명금융서비스'의 출범 이후 관련 매출은 크게 늘었다. 경쟁사들도 잇따라 자회사형 GA를 설립하기도 했다.
한화그룹 내에서 여 부회장의 위상은 남다른 것으로 전해진다. 한화금융의 기반을 다져놓은 인물이라는 대내외적 평가를 받으면서, 그룹사에선 최고 수준의 의전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부터 진행 중인 한화솔루션 산하 한화저축은행 매각 작업도 여 부회장의 손길이 닿고 있다. 여 부회장의 임기는 2025년 3월 종료될 예정이지만, 일각에선 연임을 예측하는 시선도 있다.
한화그룹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한화금융 인사는 일차적으로 내부(금융사)에서 진행하지만, 결국은 그룹 총수가 재가 형태로 관여한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한화그룹 내부에선 미묘한 역학 구도 변화도 감지됐다. 삼남 김동선 한화호텔앤드리조트 부사장이 최근 M&A 업계에서 적극적 행보를 보이면서다. 김 부사장은 햄버거 업체 '파이브가이즈'의 론칭, 미국 로봇 피자 브랜드 '스텔라피자' 인수 등을 통해 유통 분야 신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동시에 한화로보틱스 전략기획 임원, 한화건설 해외사업본부장 등을 담당하며 그룹사 영향력을 확대하는 모양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최근 한화그룹 내에서 한화오션, 파이브가이즈 등 투자가 활발해진 것은 임원들이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어 줄을 서려고 하는 것과 연관이 있다"며 "최근 김동선 부사장이 '파이브가이즈TF'를 크게 치하하는 등 M&A에 욕심을 내면서, 그를 지지하는 임원들도 늘어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