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라이벌 된 한화와 HD현대, 은행권 대출도 경쟁적으로 확대
입력 2024.03.26 07:00
    금융지주 사업보고서상 HD현대·한화 대출액 크게 늘어
    은행권 교류 많던 한화 방산·조선 등 신사업 확대 추세
    HD현대, 2020년 말부터 조선 수주 관련 대출 늘어난 듯
    신흥 라이벌 된 김동관-정기선…조선·방산 등 치열 경쟁 방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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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화그룹과 HD현대그룹의 은행권 대출 규모가 최근 3년간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유동성 감소기에 은행을 찾는 기업이 많아졌지만 이들 두 기업의 대출 확장세가 가장 눈에 띄었다. 조선업을 비롯해 다양한 사업에서 운전자본 및 신사업에 대한 설비자금 수요가 큰 것으로 풀이된다. 재계의 신흥 라이벌이 된 김동관 한화 부회장과 정기선 HD현대 부회장 간 치열한 경쟁의 단면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KB·신한·하나금융의 2023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한화그룹과 HD현대그룹의 신용공여 규모 총합은 2021~2023년까지 각각 2조9426억원, 3조3464억원 늘었다. 같은 기간 3대 금융지주를 이용한 대기업들 중에서 은행권 자금지원 규모가 세번째, 네번째로 많이 증가했다. 가장 많이 늘은 곳은 SK, 두번째는 롯데로 한화-HD현대보다 기업집단 순위가 높다. 현대차그룹은 오히려 차입을 3000억원 정도 줄였다.

      한화는 원래부터 은행권과 거래가 활발한 곳이다. 최근에는 주력 계열사인 한화솔루션에서 태양광 설비투자 자금이 필요한 것은 물론 방산·조선 등 신사업 확대를 위한 자금 소요가 큰 것으로 알려진다. 한화솔루션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KB금융과 하나금융지주의 상위 20대 차주에 이름을 올렸다.

      한화솔루션은 신재생에너지부문의 업황이 개선되면서 이익창출력이 큰 폭으로 개선됐다. 미국 IRA 관련 보조금 혜택 등을 기반으로 높은 수익성이 예상되는데 대규모 투자도 예정돼 있어 외부 차입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한화솔루션은 향후 미국 태양광 생산단지(솔라허브)에 3조2000억원 규모의 대규모 투자를 계획한 상황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022년 이후 방산부문에서 K-9자주포 등 대규모 수출계약이 이어지며 외형 성장을 이루고 있다. 생산 능력 확충을 위한 설비 투자도 증가세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해 창원 3사업장 생산라인을 늘리고 추가 인력도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HD현대그룹은 조선업을 영위 중인 HD현대의 수주가 빠르게 늘면서 은행권 차입을 늘린 것으로 보인다. KB금융이 HD현대중공업에 제공한 신용공여는 1조1570억원으로 KB금융의 상위 3대 차주에 속한다. 현금을 나중에 회수하는 조선업 특성상 차입금 비중이 높은 것이다. 

      특히 HD현대의 조선부문은 2020년 말 이후 해운업황이 개선되고 친환경 선박 발주가 증가하면서 신규수주가 크게 늘었다. 이에 금융사가 지원하는 선수금 환급보증(RG)가 수직 상승했다는 설명이다. 선수금 환급보증은 선박이 제때 인도되지 못할 경우 조선사가 미리 받아둔 선수금으로 선주에게 환급해주는 것을 말한다.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조선사는 보통 자금을 조달해서 선박을 짓고 선주에게 인도를 하면 잔금을 수령해서 현금을 확보한다. 외형이 성장하는 시기에는 자본이 필요한 셈인데, 최근 HD현대의 차입금이 크게 늘어난 가장 직접적 원인은 선수금 환급보증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한화와 HD현대의 차입금이 일제히 빠르게 늘어나는 것을 두고 시장에서는 흥미롭다는 반응이 나온다. 김동관 한화 부회장과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은 절친한 사이로도 알려지는데 최근 조선, 방산 등 다양한 산업에서 맞부딪히고 있기 때문이다. 신용공여 등 금융사를 활발히 이용하는 것을 두고 향후 경쟁 관계를 상징하는 축약판이란 이야기도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한화와 HD현대가 조선·방산 등 같은 영역에서 경쟁을 벌이고 있어 은행권 차입 규모 증가세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 것 같다"라며 "늘어나는 재무부담을 각 그룹이 어떻게 잘 조절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