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두사태 막으려 발행사 IPO 허들 높이는 금감원
PI투자 등 적극 영업나선 주관사들 "과연 가능할까"
책임 논의에서는 빠지려는 금감원·거래소·기관들
"떠먹여주는 시장…상장 제한이 대안이 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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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이 수수료 체계 개편 등 기업공개(IPO) 제도에 또 칼을 빼든다. 선취수수료(수임료)를 도입하는 등 주관사와 발행사간 계약방식을 재정립해 발행사로 하여금 IPO 허들을 높이겠다는 것이 골자다. 지난해 시장에 물의를 빚었던 파두 사태의 재발을 막겠다는 의지로 풀이되고 있다.
그러나 증권가에선 파두 사태의 원인을 두고 주관사는 물론,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감시 기관들이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똑바로 하지 못한 부분도 분명히 문제의 소지가 있는데, 이제 와서 책임을 모두 주관사와 발행사로 떠넘기는 모양새를 연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금감원 'IPO 주관 업무 혁신 태스크포스(TF)'는 IPO 실패 시에도 발행사로 하여금 수수료 부담을 지도록 하는 계약서를 제시하는 안을 논의하고 있다.
상장이 실패하면 무료 컨설팅을 제공하는 것으로 그쳐야만 했던 증권사 일각에선 이같은 논의에 환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소위 '갑을관계'가 명확한 터라 선취수수료 적용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여부는 의문이지만, 금감원이 나서준다면 강제성이 부여돼 업계 관행으로 자리잡을 순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다.
그러나 이런 규제 개혁이 IPO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되돌릴 수 있을진 미지수라는 지적이다.
금융당국의 의도대로라면, 스스로 상장 자격이 있다고 판단하는 발행사가 직접 주관사를 찾아와 자문을 맡겨야 한다. 그러나 증권사 내 IPO 부문은 발행사 대상 영업을 통해 주관 계약을 따낼 가능성을 높이고 그 관계를 기반으로 채권시장(DCM), 인수합병(M&A) 등 기업금융(IB) 전 부문에 걸친 서비스 제공이 가능케 하는 일종의 통로 역할을 해왔다.
통상적인 영업 절차만 보더라도 쉽지 않다. 증권사들은 향후 상장 가능성이 있는 기업을 먼저 찾아내 접촉한다. 과정상 필요하다면 직접투자(PI)를 하기도 한다. 공모 시장이 호황기에 접어들면 수익성이 커지기에, 증권사들은 수익 다각화를 위해 PI 투자를 늘렸다. 상장 불확실성을 짊어지면서까지 PI 투자를 통해 관계를 강화하려는 의도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주관사의 무분별한 상장 계약과 상장 추진이 문제라면, 증권사의 PI 투자를 막는 게 현실적으로 더 강력한 규제가 될 것"이라며 "수수료 체계를 건드려선 언 발에 오줌누기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조치는 결국 발행사의 상장 수요를 줄일 수밖에 없을 거란 분석이다. 거래소가 상장유치부까지 만들어가며 국내 유니콘 기업들에 구애 공세를 폈을 때와는 정 반대의 모습이다.
시장의 자정 능력을 과소평가한 안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파두사태는 결국 주주와 주관사 간 법적 분쟁으로 번지는 중이다. 상장 심사 시 이 사태를 예견해야 했을 거래소. 월권 논란에도 증권신고서 정정요구를 꾸준히 해왔던 금감원도 파두 사태를 막지 못했다. 수요예측 과정에서 시장가격을 만들어낸 국내외 기관투자가들도 마찬가지다.
이를 두고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책임 수건돌리기'를 하는 것 같다는 인상평을 내놓기도 했다. 이번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롭기 어려운 관계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머리를 맞대고 결국 내놓은 방안이 '예비 상장사의 자기 검열'이라는 데 관계자들이 실망하는 모습도 역력하다.
정은보 신임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취임 당시 'IPO 단계부터 신뢰제고'를 외쳤다. 이를 두고 상장 문턱을 높여 우량한 회사들만 상장 시장을 찾도록 하려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지적도 나왔다. 이는 벤처투자부터 투자회수까지 국내 투자시장의 생태계 순환 고리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평가다.
한 자산운용사 고위 관계자는 "지난해 말 파두 사태가 일어난 뒤에도 거래소는 모험자본이 더 공급될 수 있도록 상장 문턱을 낮추겠다는 뉘앙스가 담긴 정책을 내놨다"며 "섣부른 규제 강화보단 시장의 자정작용과 법리적 판단을 기다려보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