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이슈 제외 대국민 정책 상당수 이복현 원장이 리드"
총선은 정부 중간평가라는 점에서 정책과 무관하지 않아
국제 신평사 은행 등급전망 강등 등 부작용 벌써 현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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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매도 전면 금지 정책을 두고 금융권 일각에서는 총선을 의식한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이복현 원장이 최근 공매도 정책 관련 박순혁 작가 등 '증시 셀럽'을 만나 경청하는 모습을 보인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심지어 '기업 밸류업' 해외 홍보 출장도 금감원장이 나간다고 합니다. 현 정부ㆍ여당의 금융 관련 선거대책위원장이 이복현 원장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입니다." (한 금융회사 고위 임원)
지난해 하반기부터 쏟아져 나온 금융정책을 두고, 금융권에서는 선심성 포퓰리즘(대중영합) 정책이란 평가를 쏟아냈다. 4월 국회의원총선거를 앞두고 표심(票心)을 잡기 위한 움직임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금융당국에서는 이 같은 해석과 선을 긋는 모습이다. 다만, 일반적으로 총선이 현 정부에 대한 '심판론' 혹은 '안정론' 구도로 전개되는 점을 감안하면 절대 무관할 수 없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금융권에서 포퓰리즘이라고 일컬어지는 대부분의 정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복현 금감원장이다. 눈에 띄는 것만 해도 ▲ 공매도 전면 금지 관련 개인투자자 의견 수렴 ▲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글로벌 홍보 ▲ 100% 전액 배상까지 가능성을 열어둔 주식연계증권(ELS) 표준배상안 제안 ▲ 법적 분쟁의 소지가 있는 자율배상 압박 등 한 손에 꼽기 어려울 정도다. 검사 출신 특유의 직설적인 화법으로 금융정책 관련 '스피커'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최근 논란이 된 ELS 관련 배상 이슈와 관련해서도 이 원장이 '총대'를 맸다. 이 원장은 지난 13일 공매도 정책 관련 토론회에서 "소비자와 책임을 분담하는 방안이 개별 금융사의 배임 이슈와 연결된다는 건 조금 먼 이야기"라며 "20년 넘도록 법률 업무를 했는데 그렇게 볼 건 아니다"고 언급했다.
주요 금융지주 및 은행 이사회는 자율배상 관련, 법률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 원금 손실이 가능한 상품에, 일정한 절차를 거쳐 가입한 고객에게, 손실액의 일부를 배상해주는 결정이 이사회 입장에서 '배임'에 해당하지 않겠느냐는 게 핵심 이슈다. 법조계에서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음에도 불구, 이 원장이 앞장 서 '문제 없다'고 나선 것이다.
이 원장은 앞서 지난 2월말, ELS 관련 책임분담안을 언급하며 "자율배상을 시행하면 원론적으로 과징금 감경 요소로 삼는 게 당연하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주요 시중은행에만 조(兆) 단위 과징금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판매사들에 자율배상을 압박하는 발언으로 받아들여졌다. 자율배상을 전제로 과징금을 줄여주겠다는 제안을 두고 일종의 '플리바게닝'(검찰이 피고에게 제안하는 사법거래)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한 금융지주 이사회 관계자는 "ELS 관련 피해자의 상당수가 60~70대 고령층으로, 현 여당의 주요 지지층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을 것 같다"며 "금감원이 이렇게까지 나섰으니, 차후 배임 소지가 불거지더라도 일정부분 보호 논리가 생겼다는 판단에 각 은행 이사회에서 잇따라 자율배상 의결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이복현 원장은 현 정부의 증권시장 중점 정책 중 하나인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홍보대사도 자임하고 있다. 이 원장은 오는 5월 '기업 밸류업' 글로벌 세일즈를 위해 약 일주일 간 미국ㆍ유럽 등 주요국 출장에 나설 예정이다. 이 출장에는 양종희 KB금융지주 회장,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 김미섭 미래에셋증권 부회장 등이 동행할 것으로 전해진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역시 금융권 일각에서는 총선을 겨냥한 정책으로 해석되고 있다. 국내 증시에 참여하는 개인투자자 수가 급격히 늘어난 상황에서, 이들에게 수혜를 주는 정책이 속도감있게 추진되고 있는 게 선거와 무관하진 않을 거란 해석이다.
하나금융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개인투자자 수는 2018년 556만여명에서 2022년 1424만여명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국내 전체 인구의 25%에 해당하는 숫자다. 코스피 시장에서 개인투자자의 소유 주식 수 비중은 같은 기간 33.4%에서 37.9%로 확대됐다. 이번 총선은 '주식투자자'라는 집단이 대중화된 이후 치러지는 사실상 첫 선거라는 품평이 나올 정도다.
국민의 가계자산 중 주식 비중이 높은 미국의 경우,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는 해 S&P500 지수가 전년대비 상승하면 현직 대통령이 연임하거나 정권을 재창출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주장이 이전부터 제기돼왔다. 실제 연구 결과 일정부분 연관성이 발견되기도 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미국 가계자산 중 금융자산의 비중은 71.5%(한국 35.6%)이며, 이 중 58%가 주식이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권 여신한도 등을 언급하며 총수 일가가 태영건설 '꼬리자르기'를 하지 못하도록 견제해 총선 전 PF 부실이 확산되는 것을 막은 것도 이복현 원장"이라며 "사실상 '의대 정원 확충' 정책을 제외한 대국민 정책 상당부분을 이 원장이 리드하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 원장이 앞장서 관철시키고 있는 포퓰리즘 정책이 불러올 역효과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 7일 국내 은행 시스템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조정했다. 무디스는 '금융당국의 정책과 판단'을 하향 근거의 첫 손에 꼽았다. 은행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며 국내 은행의 건전성과 수익성이 악화될 거라 내다본 것이다. ELS 관련 투자자 손실 배상 가능성도 언급했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 역시 ELS 배상이 이뤄질 경우 국내 은행들의 올해 영업이익이 최대 34%까지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아랫 돌 빼어 윗 돌 괸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최대 3조원까지 언급되는 ELS 자율배상이 실행돼 국내 은행의 수익성이 크게 악화할 경우, 은행이 주력인 주요 금융지주들의 올해 배당여력 역시 줄어든다. 배당 등으로 주주가 가져가야할 이익을 금감원의 압력으로 인해 ELS 투자자들과 나눠야 하는 셈이다.
이복현 원장은 "ELS 배상이 이뤄져도 주주환원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국내 일부 리서치 역시 올해 주요 금융지주의 수익성은 크게 악화하지 않을 거란 전망을 내놨다. 다만 이는 '1조원을 배상해도, 지난해 대비 대손충당금 규모가 1조원 줄어들 거라 괜찮다'는 논리에 기반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전 예상 대비 기준금리 인하 시점이 늦어지고, 고금리로 인한 부실율 상승이 멈추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현실적인 분석이 맞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한 전직 증권사 대관 담당 임원은 "이번 총선은 집권 3년차에 접어든 현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이 짙다는 점에서, 이 원장이 앞장서 집행하고 있는 현 정부 금융정책 역시 여론의 시험대에 올랐다고 볼 수 있다"며 "문제는 총선에서 지더라도 현 정부 임기는 3년이 남았고, 이 원장 역시 당분간 금감원장 직책을 맡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