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발치는 PF 민원에 고조되는 금융권·시행사 갈등…당국도 피로도 누적
입력 2024.04.03 07:00
    다올·메리츠 이어 한투證까지 당국 현장점검
    시행사 민원이 발단…PF 수수료·이자 과도해
    민원 급증 배경으론 하이證 '꺾기' 의혹 지목
    4개월여 만에 또 검사…당국도 피로도 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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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최근 금융감독원의 금융사에 대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이자 및 수수료 적정성 점검이 범위를 넓혀감에 따라, 금융사와 시행사의 갈등도 격화하고 있다. 이번 금융당국의 현장점검이 시행사의 민원에서 시작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올 들어 PF 관련 민원이 다수 접수되면서, 당국도 피로감이 누적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지난 25일부터 한국투자증권에 대한 현장점검에 나섰다. 이달 초 금감원은 다올투자증권과 메리츠증권·화재·캐피탈 등을 대상으로 현장점검에 나서며 추가 금융사에 대한 점검을 예고한 바 있는데, 한국투자증권이 다음 타깃이 됐다.

      금융당국은 이번 현장점검을 통해 금융사가 부동산 PF 이자와 수수료를 적정하게 책정했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시행사와 건설사에서 일부 금융사들이 PF 만기를 연장하며 수수료와 금리를 과도하게 책정한다는 민원이 다수 접수되면서, 당국이 현황 파악에 나선 것이다.

      시행사들의 PF와 관련한 민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 것으로 전해진다. 시행사들은 지난해 연말부터 올 초까지 관련 민원을 당국에 다수 접수하고 있는데, 업계에선 그 배경으로 지난 국정감사에서 불거졌던 하이투자증권의 'PF 꺾기 의혹' 사태를 지목하고 있다.

      PF 꺾기 의혹은 지난해 금융위원회 국정감사 당시 김종민 의원이 지적한 것으로, 하이투자증권이 차주에게 대출을 내주는 조건으로 자사의 부실채권을 매수하는 약정을 강제했다는 것이다. 당시 김 의원은 국감장에서 "하이투자증권 꺾기 관련 민원 투서가 21건이나 접수됐다"고 말했다.

      홍원식 당시 하이투자증권 대표는 의혹을 전면 부인했고, 이후 금감원의 조사가 진행됐지만 아직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다. 다만 홍 대표는 PF 관련 내·외부 잡음의 여파로 연임에 실패했고, 28일 하이투자증권은 정기주주총회를 통해 성무용 전 대구은행 부행장을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하이투자증권의 꺾기 의혹도 시행사의 민원과 제보에서 시작됐는데,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대표가 교체됐다"며 "시행사들이 이를 보고 더욱 적극적으로 당국 등에 민원을 넣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사와 시행사 갈등의 쟁점은 결국 PF 대출 연장 과정에서 금융사가 이자와 수수료를 과도하게 책정했는 지 여부다. 시행사는 금융사가 우월적 지위를 바탕으로 수수료를 과도하게 책정해 정상적인 사업장의 만기 연장도 어렵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다만 금융사는 당국의 조사가 진행중인 상황이라 말을 아끼면서도, 금융사가 시행사보다 '우월적' 지위에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만기를 연장하는 것은 금융사 입장에서도 리스크를 떠안는 것이기에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당국의 조사를 받은 한 금융사 관계자는 "부동산 호황기 시절에는 시행사들이 금융사들을 고르며 대출 조건 등을 경쟁을 시키는 일이 비일비재했는데, 상황이 반전되자 금융사가 우월적 지위를 악용하고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만기를 연장하는 과정에서 적정한 금리 인상이 따르지 않으면 리스크 심사위원회를 통과할 수 없다"며 "일부 만기 연장이 급한 시행사들은 먼저 금리나 수수료 인상을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잦은 민원에 따른 현장점검이 잦아지면서, 당국의 피로도도 누적되고 있다. 실제로 금감원은 이미 지난해에도 메리츠증권과 다올투자증권에 대한 PF 대출 사업 검사를 진행한 바 있다. 다올투자증권에 대한 검사는 지난해 10월 23일부터 12월 1일까지 약 6주간 고강도로 진행됐다. 메리츠증권 역시 10월 중순부터 11월 셋째 주까지 검사가 진행됐다.

      세부적인 점검 사항은 차이가 있지만, 같은 PF 건으로 약 4개월 만에 동일한 증권사에 대한 점검이 진행된 셈이다. 당국 입장에선 민원이 접수되면 처리결과를 통보해야 할 의무가 있는 만큼, 점검에 나서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금융권과 시행사 사이의 갈등이 불거지자 이복현 금감원장이 직접 중재에 나서기도 했다. 이 원장은 최근 금융권·건설업계 간담회에 참석해 PF 시장 옥석가리기의 필요성에 공감한 한편, 건설사에 전가되는 과도한 부담의 완화 필요성에 대해서도 공감했다.

      이 원장은 "옥석 가리기 작업을 통해 우량 사업장은 적정한 신용평가를 받고 장기 차환되도록 하는 것이 중장기적 계획"이라며 "특히 PF 금리·수수료가 대출 위험에 상응해 공정과 상식 차원에서 합리적으로 부과되고 있는지 점검해 건설업계의 금융 부담 완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