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전 기업 조달 봇물…올해 DCM 성적표는 1분기가 분수령
입력 2024.04.03 07:00
    [2024년 1분기 집계][회사채 주선 순위]
    올해 회사채 예상 발행량 60조…1분기에만 27조원 넘겨
    연초 유동성에 은행권 대출금리 오르자 회사채로 선회
    총선 앞둔 기업들은 불안감에 “일단 현금부터 마련”
    단골 SK에 이어 LG는 LG엔솔ㆍ화학 조단위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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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올해 1분기 회사채 시장에는 훈풍이 강하게 불었다. 국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 침체로 유동화증권(ABS) 물량은 많지 않았음에도, SKㆍLGㆍ한화 등 대기업 계열사들이 대거 자금 조달에 나서면서 증권업계도 바쁜 시간을 보냈다. 

      증권업계에선 기업들의 이번 ‘조달 러쉬’를 총선 효과로 해석하고 있다. 사업 불확실성이 커진 기업들이 불안감이 증폭되자 ‘일단 현금부터 확보하자’는 기조로 돌아섰고, 각 사 재무총괄책임자(CFO)들이 회사채 발행을 서둘렀다는 것이다. 

      인베스트조선이 집계한 2023년 1분기 채권자본시장(DCM) 리그테이블에 따르면 증권사가 주관을 맡은 무보증 공모회사채(일괄신고 제외)는 약 27조6995억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약 30% 증가했다. 올해 연간 전망 회사채 발행량이 55조원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절반가량이 1분기에 쏠린 셈이다.  

      말그대로 일감이 쏟아지면서 증권업계는 정신 없는 3개월을 보냈다. 통상 연초에는 풍부한 시장 유동성과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으로 채권시장이 활성화되는 분위기지만, 올해 1분기를 두고 ‘역대급 쏠림’이라는 푸념도 나왔을 정도다. 

      한 사람이 수 건의 신고서를 동시에 작성하는 일은 빈번했고, 기업 4~5곳이 같은 날 수요예측을 하는 일도 반복됐다. 특히 1월 22일에는 호텔롯데와 HD현대중공업 등 5곳이, 23일에는 현대트랜시스와 CJ ENM 등 4곳이 동시에 회사채 수요예측을 진행하면서 ‘빅데이’가 연이어 발생하기도 했다. 

      일이 혼잡해지면서, 주관사인 신한투자증권이 신고서에 금리를 잘못 기재해 ㈜한화의 2500억원어치 회사채가 전면 발행 취소되는 초유의 사건도 발생했다. 증권사별로 소화해야 하는 물량이 급증하면서 직원들의 실수도 잦아졌다는 얘기다. 

      증권사 기업금융부 “중소형 증권사들도 평균 1분기 물량이 약 6조원 정도 되는데, 올해는 9조원도 거뜬한 상황”이라며 “부동산PF 위기로 건설채 발행을 줄였는데도 매일 킥오프(발행사-주관사 미팅) 회의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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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LG에너지솔루션, LG화학 등 한꺼번에 조 단위 물량을 발행하는 기업들도 나타났다.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 수요예측 흥행에 힘입어 회사채 발행 규모를 증액 최대한도인 1조6000억원까지 확대했다. 회사채 단일 발행 기준으로 역대 최대 규모를 경신한 수치다. 

      LG엔솔 회사채는 대표 주관사가 한국투자증권, KB증권, NH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신한투자증권, 대신증권 등 6곳에 달했다. 주관사들의 캡티브(계열사 내부시장) 참여 물량도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LG엔솔이) 상도에 금이 갔다 싶을 정도로 지나치게 주관사들을 동원했고, 캡티브 압박도 상당했다”며 “업계에선 자금을 이 정도로 급하게 마련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문도 컸다”고 말했다.

      기업들의 이번 ‘폭탄 발행’은 국회의원 총선거가 야기하는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 때문으로 해석된다. 총선 이후 변화할 정세에 대응하기 위해, 그룹사 내부에서 최대한 유동 자금을 확보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상당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사전에 기획재정부로부터 윈도우(프라이싱 일정)를 받고 연초 조달을 앞당긴 CFO들은 기업 오너로부터 칭찬을 받을 정도였다. 

      2분기에는 발행량이 한풀 꺾일 가능성이 있지만, 기업들의 ‘일단 발행’ 추세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최근 은행권 대출 금리가 올라가면서 회사채 시장으로 선회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는 데다, 기관과 개인 투자자들의 채권 수요 및 대기 매수세도 여전히 유효한 영향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발행사들이 채권 수요 여건이 좋을 때 일부 발행하고, 금리 추세 및 시장상황을 봐가면서 추가로 발행하겠다는 연간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