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침체된 M&A…전열 정비 나서기도
그나마 '양대 축' 버틴 송무까지 내리막길
공정거래·노무·인허가 등 '규제 일감'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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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대형 법무법인들의 실적 고민이 이어지고 있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고 주요 고객들의 행보가 보수적으로 바뀌면서 지난 수년간의 고성장을 이어가기 어렵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통 영역의 약세에 인공지능(AI)의 역습까지 우려되는 상황에서 각 법무법인들은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야 한다는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결국 공정거래나 노무, 각종 인허가 등 대형 법무법인의 대관 능력과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는 규제 영역이 올해 중요 먹거리로 떠오를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대형 법무법인을 이끄는 대표들의 고심도 깊다. 올해 태평양은 이준기 신임 대표변호사가 임기를 시작했고, 세종은 오종한 대표변호사가 연임했다. 이명수 화우 변호사는 올해 업무집행대표변호사로 새 임기를 시작했다. 2년간 경영총괄 대표변호사를 맡고 있는 김상곤 광장 대표변호사는 올해 연임해 새로 3년 임기를 부여받았다. 율촌은 올해가 집행부 마지막 임기다.
새해에는 일감이 늘어날 것이란 기대는 두 해째 공수표가 되어가는 분위기다. 여전한 고금리 환경과 거래 관계자간 시각차에도 불구, 올해는 투자 시장에 활기가 돌 것이란 기대가 많았지만 아직까지도 수면 위 움직임은 잠잠하다. 특히 1분기 M&A 법률자문 시장은 순위를 가리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도장을 찍는 거래가 드물었다. 자문을 계약으로 연결시키는 비중이 여전히 낮다.
법무법인의 수장은 자문과 송무 두 핵심 분야에서 배출되는 경우가 많은데, 자문에 기반한 수장들은 상대적으로 면이 서지 않을 상황이다. 이들이 직접 스타 변호사로서 거래를 챙길 때보다는 고객들의 만족도를 얻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에 한 대형 법무법인 대표는 연초 시장점유율을 올리라는 메시지를 구성원에 돌리기도 했다. 어느 정도 염가 수임을 감수하고라도 존재감을 부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율촌은 최근 화우 M&A 전문가들을 대거 영입해 전열을 정비했다.
송무 분야도 예전처럼 활기를 띠지 않는 분위기다. 과거 기업들에 사정 칼날을 들이대던 때와는 분위기가 달라졌고, 경제 침체 상황에서 기업을 감시하는 것보다는 독려하고 지원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카카오 등 일부 신흥 재벌, 대기업 오너 일가의 재산 다툼 등 일감을 맡으며 좋은 성과를 내는 곳도 있지만 돈 되는 ‘회장님 일감’은 많지 않다.
법무법인 수장들은 기존의 핵심인 자문과 송무만 믿다간 도태될 것이란 고민도 하고 있다. 지난 10년 가까운 장기 성장을 구가했지만 맡아둔 일감이 떨어지기 시작한 작년엔 성장세가 크게 둔화했다. 매년 연말이면 ‘수금’에 분주하고 이는 이듬해 초 실적 저하로 나타나는 게 일상이지만 올해는 유독 그 정도가 심하다. 여기에 중형급 법무법인도 치고 올라오니 새 먹거리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형 법무법인들이 올해 입을 모아 공을 들이는 영역은 공정거래, 노무, 인허가 등 ‘규제’ 영역이다. 대형 법인의 최대 강점은 이미 갖춰진 대관 능력과 네트워크고, 이를 활용하기엔 규제만한 분야가 없다는 것이다. 법률자문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각 ‘파트너간 장벽을 허물자’는 슬로건을 제시하는 곳도 있다.
특히 공정거래 분야는 어느 법무법인 할 것 없이 호황을 누리는 분위기다. 기업들의 경영 환경이 어려워지고, 경영진의 책임이 무거워지면서 예전이면 ‘적당한 선’에서 넘어갔을 사안들도 깐깐하게 문제를 제기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공정거래위원회 출신 인사를 경쟁적으로 영입하는 기류가 나타나고 있다.
한 대형 법무법인 파트너는 “갑질이나 부정경쟁 문제가 불거지면 천문학 적인 금액 부담이 생기기는 경우가 많아지다 보니 기업들도 적당히 넘어가기 어려워졌다”며 “어느 법무법인 할 것 없이 기업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공정거래 쪽 성과가 좋다”고 말했다.
노동 문제도 비슷하다. 올해는 통상임금, 고용 문제 등 기업들의 경영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칠 재판 여러 건이 대법원에 계류 돼 있다. 대부분 대형 법무법인들이 기업 편에 서서 충격파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분위기다. 중대재해처벌법이나 노동법 관련 문제들은 사안에 따라 경영진 등 그룹 수뇌부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보니 기업들이 자문 수수료를 아낌없이 쓰고 있다.
금융 규제 분야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금융감독당국이 들여다 볼 때부터 최종 법원의 판단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하거니와, 그 과정 중에 '비법리적 요소'가 관여되는 면도 있다. 당국과 얼마나 연을 대고 사안을 조율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이 외에 해외 기업의 국내 진출 시 사업 인허가, 규제 자문 등 일감도 새로운 수익원으로 떠오르고 있다. 태평양은 미국 모히건이 인천 영종도에 국내 최대 복합리조트인 '인스파이어'를 짓는 데 필요한 법률 자문을 제공했다. 해당 사업은 'K컬쳐 활성화' 부분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사업 특성상 인허가를 받아내기 쉽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가려운 곳까지 알고 접근해야 하니 법무법인의 ‘중간자’로서 역할이 중요하다는 평가다.
최근엔 인공지능(AI) 분야가 부상하고 있는데 이는 법률자문 시장 영역도 예외가 아니다. 기술이 발전하고, 판례와 법률에 따른 판결이 정형화할수록 법무법인과 변호사들이 설 자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논의해야 하는 여지가 많은 규제 분야에 힘을 쏟아야 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다른 대형 법무법인 파트너는 “기존 핵심 영역에서의 변별력이 줄고 AI가 빠르게 부상하는 상황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대형 법무법인들의 일감으로 남을 곳은 대면해서 협상해야 하는 ‘규제’ 분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