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에 中 공세까지…주력 사업 변수 커진 기업들
롯데ㆍ삼성ㆍLG도 컨설팅 보고서 위상 달라져
"대기업, 어떻게 하면 비용 줄일까 고민 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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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기업들이 다시 컨설팅 회사를 찾고 있다. 화학·유통·전자 등 기존 주력 사업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기업들마다 최소한의 예산으로 경영을 개선하기 위한 방법을 찾기 시작한 까닭이다.
한동안 개점휴업 상태이던 보스턴컨설팅그룹(BCG)·맥킨지·베인앤컴퍼니 등 글로벌 컨설팅 회사들도 대기업의 인건비 감축 등 비용 효율화 문제부터, 사업전략 수정 및 포트폴리오 조정까지 다양한 일감들로 점차 분주해지는 모습이다.
최근 SK그룹은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지시로 맥킨지와 BCG 등 컨설팅 회사들을 고용, 그룹 주력 계열사 사업성을 진단하고 있다. 해당 보고서 내용을 기반으로 연내 본격적인 계열사 구조조정 및 사업부 재편 작업을 실시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맥킨지는 SK이노베이션과 SK온,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 등 2차전지 관련 배터리 소재 사업성 점검을 맡았다. BCG도 SK바이오팜과 SK팜테코 등 바이오 사업 재편과 관련된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밖에도 SK그룹은 다수 글로벌 컨설팅 회사들에게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전 계열사의 사업구조 재편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주가 기반 KPI 등을 마련할 때도 컨설팅사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SK그룹 외에도 롯데, 삼성, LG, CJ 등 국내 대기업들은 최근 비용 절감과 관련된 ‘오퍼레이션 프로젝트’를 맡기기 위해 컨설팅 회사를 찾고 있다.
기업들은 몇 년 전만 해도 주로 투자를 위한 사업실사(CDD), 인수후통합(PMI) 등을 맡기기 위해 컨설팅 업체를 찾았다. 이제는 고금리 장기화로 인한 투자 환경 위축과 주력 사업부의 수익성 감소 현상으로 '사업조정'에 대한 고민이 크다.
최근 대기업들은 주력 사업의 미래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 사업에서 30년동안 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유지했지만 현재의 경쟁 강도는 어느 때보다도 심하다. SK그룹도 SK하이닉스의 변수가 늘어난 상황에서 SK지오센트릭 등 석유화학 업계의 불황으로 고전하고 있다.
CJ그룹은 CJ제일제당, CJ ENM 등의 실적이 부진한 상황에서 CJ대한통운까지 주요 협력사였던 중국 이커머스 회사 알리익스프레스와의 협력 관계가 불투명해졌다. 다양한 변수의 등장으로 기존 인력을 통한 대응이 힘들다는 판단이 서면서, 글로벌 회사들이 보유한 레퍼런스(참고자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진 상황이다.
실제로 BCG·맥킨지·베인 등 3개 컨설팅 회사들의 인력들은 지난해 말부터 늘어난 일감으로 한 사람당 한 개 이상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본시장 침체로 M&A 등 자문 일감은 씨가 말랐다. 대신 인건비 절약이나 비용 효율화 등 바텀 라인의 불필요한 비용을 점검하는 소형 프로젝트부터, 탑 라인 사업 포트폴리오에 대한 재점검을 요구하는 대형 프로젝트까지 기업 일감이 이어지고 있다.
워낙 다양한 종류의 자문이 이어지다 보니 일부 기업은 컨설팅사와 독특한 계약을 맺기도 한다. 이를테면 1년간 수십억원 규모의 자문 계약을 먼저 체결하되, 사안이 생길 때마다 얼마씩 차감하는 형식으로 컨설팅사를 잡아두는 식이다.
대기업 내부에서도 '컨설팅 보고서'에 대한 위상이 달라지는 분위기다. 기존엔 헤드쿼터(최고 임원)가 설정한 방향에 명분을 더하는 용도로 여겨졌다. 과거 웅진이나 두산, 최근 신세계까지 컨설팅 출신 임원을 향한 시각이 곱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엔 컨설팅 보고서가 펜데믹 유동성 호황기에 벌려뒀던 신사업을 정리하기 위한 지침으로 평가된다.외부의 객관적 시각으로 사업성을 점검해야 한다는 불안감이 높아지면서다.
대기업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는 한 컨설팅 회사 관계자는 "몇 년 전만 해도 대기업들이 '어떻게 하면 다양하게 돈을 벌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면, 요즘엔 '어떻게 하면 적은 예산 안에서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다"며 "SK가 발주한 사업재편 프로젝트가 힘을 얻는 이유도 기업들의 고민과 맞닿아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