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맥 끊긴 韓 골드만삭스 IB...정형진 떠난 빈자리 채우기 '어렵네'
입력 2024.04.19 07:00
    ‘인재풀 부족한’ 시니어급 인력 찾는 골드만 IBD
    에이스급 인재들 속속 퇴사行…흐릿해진 후계 구도
    외부 영입 고려에 내부 술렁, IB 경쟁력 약화도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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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한국 골드만삭스 투자은행(IB) 부문의 시니어급 인재들의 공백이 점차 커지고 있다. 정형진, 어호선 등 IB 부문을 이끌었던 이들의 후계자를 키워내지 못한 탓이다. 

      JP모간, 씨티글로벌마켓증권, 모건스탠리 등 경쟁 하우스들이 건재한 가운데 크레디트스위스(CS)를 합친 UBS까지 사세를 확장하고 있다. 인수합병(M&A) 불황의 골이 깊은 가운데 딜 수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며 골드만삭스의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17일 IB업계에 따르면 골드만삭스 서울지점은 현재 IB(투자은행)부문 대표를 물색하고 있다. 현재 변상민 대표가 맡고 있지만 임시 체제인 것으로 알려진다. 정형진 대표가 떠난 뒤로 골드만삭스 한국대표와 서울지점장은 최재준 대표가, IB부문은 변 대표가 뒤를 이었다. IB부문은 상무급 인재 역시 채용을 진행 중이다. 

      다만 적임자를 찾기까지 다소 시일이 걸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골드만삭스의 ‘눈높이’에 맞는 인재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글로벌 골드만삭스 명성에 버금가면서도 국내에서 활동하는 인재들은 이미 타 하우스에 자리를 잡은 상태다. 당장 골드만삭스로 이직할 명분이 뚜렷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한 외국계 IB 관계자는 “외국계 IB 인력 시장에서 6년~10년차 상무나 이사급 인력을 찾기가 ‘하늘에 별 따기’ 수준”이라며 “가령 상무급 자리가 10곳 정도 있다고 치면 8명 정도의 후보자들이 돌아가며 맡는다고 이해하면 된다. 자리는 많은데 데려올 사람은 없으니 자리가 한 곳 비면 이를 채우기 위해 다른 증권사의 상무급 인사를 영입하는 등 도미노식으로 이동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표급 임원 자리가 공백인 가운데 골드만삭스 서울지점의 IB부문 경쟁력은 점차 약화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골드만삭스 서울지점은 정형진 전 IB부문 대표와 어호선 전 상무가 사실상 M&A(인수합병) 부문을 책임지는 구조였는데, 이들이 나가면서 수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평가다. 정 전 대표의 빈자리를 변 대표가 맡고 있지만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ECM(주식자본시장)을 담당해온 만큼 M&A 전문가라고 보기는 어렵다. 정 전 대표의 뒤를 이어 한국대표와 서울지점장을 맡은 최재준 MD(매니징디렉터) 역시 채권과 주식 솔루션을 담당해와 M&A 등을 비롯한 정통 ‘IB맨’과는 결이 다르다. 

      JP모간이나 씨티글로벌마켓증권, 모건스탠리 등 경쟁 IB들에 비해 한국 골드만삭스의 후계구도가 명확하지 않다는 한계도 거론된다. JP모간은 올해 초 조솔로 수석본부장(MD)을 신임 IB 총괄로 승진시켰고 씨티글로벌마켓증권은 2021년 말 민재윤 MD(매니징디렉터)가 인수합병(M&A) 부문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모건스탠리의 경우 2012년부터 모건스탠리 서울지점을 이끌어온 조상욱 대표가 건재한 상황이다. 

      다른 외국계 IB 관계자는 “외국계 IB 자문사에서 결국 딜 수임을 담당하는 인력은 많아야 3~4명 정도”라며 “이중에서 한 두명만 빠져도 하우스 전체가 휘청일 수 있기 때문에 후계구도를 명확히 할 필요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후계구도가 흐릿해진 가운데 메가딜(Mega Deal) 위주로 수임하는 골드만삭스 서울지점의 기조가 최근과 같은 딜 기근 시대를 만나 어려움을 겪게 된 원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최근 국내 회계법인들을 비롯해 외국계 IB 중에선 UBS(과거 크레디트스위스)를 중심으로 저가 수수료 경쟁이 한창이다. 한국 골드만삭스는 이를 통한 신규고객 확보에 상대적으로 뒤처졌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국내 회계법인들은 최근 M&A 자문시장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다. 삼일회계법인은 글랜우드프라이빗에쿼티가 인수한 SK피유코어, IMMPE의 유나이티드터미널코리아(UTK) 등을 주관했고 삼정회계법인 역시 종합폐기물업체 KC환경서비스, MBK파트너스의 SK온 투자 등 크고 작은 딜을 맡았다. 여기에 과거 SK그룹 딜을 도맡아 하던 CS(크레디트스위스)가 UBS에 합병되면서 사세를 키우고 있다. CS는 수년 전부터 외국계 IB 중에서는 드물게 저가 수수료 정책으로 국내 대기업 고객을 확보한 바 있다. 

      반면 한국 골드만삭스는 그동안 글로벌 골드만삭스의 브랜드에 기댄 영업전략의 한계에 직면했다는 의견이 나온다. 푸르덴셜생명 매각 등 그간 한국 골드만삭스가 수임한 빅딜들은 주로 글로벌 골드만삭스를 통해 들어온 딜이 대부분이다.

      한국 골드만삭스는 작년 한해 인슐린 펌프 제조사 이오플로우 매각 건의 재무자문을 맡은 데 그쳤다. 이마저 글로벌 헬스케어 기업 메드트로닉이 인수를 철회하면서 성사되지 못했다. 결국 빅딜 위주의 고가 수수료 정책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고객층을 확보하는 데 다소 뒤처지게 됐다는 의견이다. 

      또 다른 외국계 IB 관계자는 “최근 10년 동안 경쟁이 치열해지며 IB 수수료가 조금씩 낮아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저가 수수료 정책으로 성과를 낸 곳이 과거 CS인데, 이러한 전략이 시장에 점차 퍼지고 있다”라며 “이런 가운데 인력 공백 등의 내부 상황까지 더해지며 골드만삭스가 한국에서 딜 수임 기회가 저조해진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