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하 시점 미뤄지며 강(强)달러 현상, 증시 직격
美 4월 PMI, 경기 냉각 가능성 보여주며 다시 증시 급등
세법 개정안 통과 가능성 낮아...'밸류업' 재조명도 '일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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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3개월 전의 전망이 뿌리째 뒤집어졌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은 점점 뒤로 미뤄지고 있고, 일각에선 오히려 인상론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빗나가는 예상 속 안정감을 잃은 증시는 강(强)달러가 불러온 환율 쇼크에 파랗게 질렸다가, 구매관리자지수(PMI) 호재에 다시 급등하는 등 불안정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엔비디아 주가 폭등으로 대표되는 인공지능(AI) 기대감은 다소 거품이 빠지는 모양새다. 고대역폭 메모리(HBM) 특수로 급등한 국내 반도체주 역시 덩달아 호된 조정을 감내해야 했다. 여당이 총선에 참패한 뒤에도 세법 개정을 통한 배당 분리과세 도입 의지를 드러내며, 금융주 등 배당주들이 시장을 지탱하고 있는 형국이다.
24일 발표된 미국 4월 종합 구매관리자지수(PMI) 예비치는 50.9를 기록해 3월의 52.1대비 하락했다. 제조업 PMI 예비치는 4개월만에 처음 50 아래로 떨어지며 업황위축을 반영했고, 그간 미국 경제를 견인해온 서비스업 PMI 예비치 역시 5개월만에 최저 수준을 나타냈다. 신규 주문 지수ㆍ고용 지수ㆍ미래 생산량 기대치 역시 올해 들어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는 미국의 경기가 지난 1분기 고점을 지나 서서히 냉각 중임을 보여주는 지표로 해석됐다. 증시는 환호했다. 미국 3대 지수는 최근의 부진을 씻고 일제히 반등했다. 코스피 역시 장중 2% 가까운 급등세를 보였다. 경기가 나빠지고 있다는 소식에 증시는 환호한 것이다.
올해 미국ㆍ한국을 비롯한 글로벌 증시의 흐름은 '경기 침체가 오느냐, 오지 않느냐'에 대한 전망의 변화로 요약할 수 있다. 올해 초만 해도 경기 침체는 피할 수 없으며, 이에 따라 미국은 기준금리를 최대 6번, 1.5%포인트가량 내릴 수밖에 없을 거라는 전망이 대세였다. 기준금리 인하에 따라 채권 수익율은 낮아지고, 달러는 약세를 보이며, 유동성이 증시를 밀어올릴거란 예상이 많았다.
그러나 지난 1분기 미국 경제가 의외의 흐름을 보이며 이 같은 전망이 모두 뒤집어졌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글로벌 펀드매니저 설문조사에 따르면, 경기 침체가 없을 것(No landing)이라고 응답한 매니저는 지난해 말 6%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36%에 달한다. 올해 미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2.7%로 한국(2.3%)은 물론 글로벌 주요국 중 가장 높고, 실업률도 2년째 4% 미만을 유지하며 사실상 완전고용을 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중앙은행은 경기가 활황세를 보이면 기준금리를 올려 물가상승(인플레이션)을 조절하고, 침체국면을 보이면 기준금리를 낮춰 경기 연착륙을 유도한다. 미국의 경기가 너무 좋다보니 기준금리 인하를 전망하는 목소리는 지난 3개월 사이 빠르게 힘을 잃었다. 12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내재금리는 현재 4.9%를 웃돌고 있다. 연말까지 기준금리를 2회, 많아야 3회 내릴 거라고 보는 시각이 크게 늘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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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명백히 침체 국면에 들어간 미국 외 주요국들은 기준금리 인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6월 기준금리 인하를 사실상 예정했다. 영국 영란은행(BOE) 역시 ECB와 함께 6월 중 인하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브라질ㆍ멕시코 등 신흥국들은 이미 올해 들어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한 상태다.
이는 강(强)달러를 초래했다. 지난해 말 100.6까지 떨어졌던 달러인덱스는 지난 16일 106.1까지 치솟았다. 원달러환율도 장중 1400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외국인 자금이 조 단위로 빠져나가며 코스피 지수는 3월말 고점 대비 10% 가까운 조정을 받았다.
2분기 내내 이 같은 흐름이 이어질 거라는 게 증시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디스인플레이션(물가의 완만한 안정화)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잡음이 제기되고, 이에 따라 시장은 일희일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중동 전쟁 이슈 역시 유가와 직결돼 물가에 영향을 미치고, 물가는 기준금리 정책에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맥락이 같다는 지적이다.
국내 증시의 경우 이런 매크로 변수에 더해 시가총액 내 비중이 높은 반도체주의 변동성이 추가될 거란 전망이다. 지난 19일 AI 테마의 핵심 대장주인 엔비디아 주가가 하루만에 10% 급락하며 'AI 거품 붕괴'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고, 국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역시 그 여파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까닭이다.
일단 투자업계에서는 과도한 기대와 단기간 주가 급등에 따른 피로감에 더해 실적에 대한 불안 심리가 확대된 점을 반도체주 급락의 배경으로 꼽는다. 반도체 장비 업체 ASML의 1분기 실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대만 TSMC 역시 올해 실적 성장률 전망치를 낮추며 예상보다 반도체 업황이 나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졌다는 것이다. HBM 역시 업황 둔화로 하반기 중 가격이 조정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반도체주가 주춤하는 가운데 최근 국내 증시에서는 금융주 등 '밸류업' 관련 주식이 재조명받는 분위기가 전개되고 있다. 여당이 총선에서 참패했지만, 배당 분리과세 등 밸류업 관련 정책은 야당과의 공조를 통해 지속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였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총선 직후 썰물처럼 빠져나갔던 기관 자금이 몰려들며, 금융 대장주인 KB금융지우의 경우 24일 기준 최근 3거래일간 무려 15%나 오르기도 했다.
다만 이 같은 분위기 역시 언제 돌아설 지 모른다는 우려감 역시 여전하다. 올해 1분기 코스피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최근 1개월동안 1조7000억원 상향조정됐는데, 이 중 반도체 관련 상향폭이 2조4000억원에 달한다. 반도체를 제외한 코스피 기업 영업이익 전망은 오히려 6900억원 하향조정됐다.
한 증권사 전략 담당 연구원은 "큰 방향에서 하반기엔 미국은 물론 한국도 기준금리 인하에 나설 거라는 전망엔 이견이 많지 않지만, 중동 분쟁이나 미국 고용시장 활황 등 부정적 변수가 수시로 불거지고 있다는 점이 고민"이라며 "금융주 등 밸류업 주식 재조명 역시 세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쉽지 않을 거라는 점에서 '단기 베팅'에 가까운 외줄타기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