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투파ㆍVIGㆍ파빌리온 이어 MBK 등판
대한항공, 거래 파기될라 FI 이름값 중시하자
'주체'인 LCC 이름은 가려지고 PEF만 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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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 매각이 본입찰 단계에 접어들었다. 국내 저비용항공사(LCC)들이 인수에 도전하고 있지만, 시장의 시선은 국내 사모펀드(PEF)에만 쏠려 있다.
향후 아시아나의 사업부를 인수해 소화해야 하는 LCC 회사의 기초 체력에는 누구도 관심이 없다. 시장도, 매도자 측인 대한항공도 어느 누가 더 강한 '뒷배'를 데려왔느냐에만 집중하고 있다. 사실상 이번 인수전이 사모펀드(PEF)간 대리전이나 마찬가지라는 의미다.
당초 예비 입찰 단계에서는 가장 먼저 투자자를 확정한 에어인천과 이스타항공의 2파전으로 흘러가는 듯 보였다. 에어인천은 기존 최대주주인 소시어스PE가 금융지주 계열사인 한국투자파트너스의 PE본부를 재무적투자자(FI)로 확보했다. 소시어스와 한투파PE가 공동운용(Co-GP) 펀드를 조성해 출자하면, 한국투자증권이 인수금융을 맡기로 했다.
이스타항공은 지분 100%를 가지고 있는 사모펀드 VIG파트너스가 추가 출자를 하기로 했다. 블라인드 펀드(5호 펀드)에 약 5000억원이 모였고, 우리은행과 NH투자증권 등 금융사들도 인수금융단으로 확보했다.
제주항공은 처음부터 모회사인 애경그룹의 재무 여력이 부족했고, 에어프레미아는 2대 주주인 사모펀드 JC파트너스가 투자금 회수를 우선시했기 때문에 번외로 여겨졌다. 인수에 '진정성'이 있는 후보는 에어인천과 이스타항공 둘 뿐이라는 말도 나왔다.
상황은 본입찰 마감일부터 반전됐다. 전날까지 최종 주식매매계약서(SPA) 작성을 위한 각종 서류를 준비했던 제주항공은 입찰 제안서조차 제출하지 않았고, 마감 시간을 넘겨 서류를 냈던 에어프레미아가 유력 후보로 떠올랐다. 에어프레미아의 FI가 MBK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다.
에어프레미아의 대주주 JC파트너스는 파빌리온PE 프라이빗에쿼티(PE)와 공동운용 펀드를 만들고, MBK는 별도의 스페셜시츄에이션(SS) 2호 펀드로 참여할 계획이다. 에어프레미아가 자금 수혈을 위해 제3자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하고, JC파트너스·파빌리온·MBK가 각각 소수지분을 받게 되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에어프레미아는 기존 최대주주인 AP홀딩스(현재 약 44%)를 비롯해 JC파트너스(22%), 파빌리온, MBK 등을 주주로 보유하게 된다. AP홀딩스 자체도 김정규 타이어뱅크 회장과 문보국 전 레저큐 대표가 공동 설립한 합작법인이니, 더욱 다양한 주주가 난립하게 되는 셈이다.
MBK는 SS펀드를 활용한 만큼 소수지분 투자에 그칠 가능성이 높고, JC파트너스도 기존 22%는 늦어도 내년까지 매각할 계획이지만 경영권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미 에어프레미아는 JC파트너스와 박봉철 코차이나 전 회장 등 대주주 사이의 갈등으로 면허 심사를 다시 받았던 선례도 있다. 항공업계에 따르면 현재 에어프레미아 내부에서도 경영진을 둘러싸고 혼란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에어프레미아는 MBK의 참전 소식으로 힘을 얻고 있다. 시장에서는 'MBK면 게임 끝난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특히 매도자 측인 대한항공과 UBS가 거래 파기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 든든한 투자자를 가진 에어프레미아에 힘이 더욱 실리고 있는 모양새다.
3000억원대에 달하는 인수 대금은 대부분 내년 초에 입금될 전망이다. 실질 거래 시점이 내년인 만큼, 매도자 측에서는 인수 주체인 LCC보단 FI의 이름값이 거래를 좌우할 것으로 내다본다. 투자를 약속했던 FI들이 내년에 변심하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투자자의 변심으로 거래가 지연되면, 연내 구속력 있는 계약서를 체결하고 국토교통부와 해외 경쟁당국의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하는 대한항공의 계획이 무산된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합병 작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분이다.
결국 시장에선 자금력에 대한 신뢰가 높은 MBK, 한투파의 대결 양상을 예상하고 있다. 이에 일부 LCC들 사이에선 국내 대기업을 전략적투자자(SI)로 모시기 위해 다양한 접촉을 시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 경쟁력은 물론 장기적 사업 전략이 필요한 항공물류산업임에도, 업(業)에 대한 이해보단 이름값이 중요해진 셈이다. 매도자와 인수자 모두 '경영전략' 보다는 '숫자'로 접근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매도자 측이 제공한 실사 자료도 턱없이 부족했고, 화물사업부 밸류도 좋을 때와 나쁠 때의 변동성이 너무 커 인수 후보들 사이에서도 비판이 높다"며 "인수 가격에 반영되겠지만, 합리적인 범위에서 거래가 진행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