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의민족, '혁신의 아이콘'에서 독일 DH '배당기지'로 전락
입력 2024.05.03 07:00
    취재노트
    배민 출범 후 패러다임 바뀌고 새 직업군 등장
    DH에 인수된 후에도 ‘배민다움’ 유지 기대됐지만
    이익 극대화 전략 선회…DH는 대규모 배당 챙겨
    진취적 문화 사라진 배민, 경쟁사와 차별성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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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배달의민족(법인명 우아한형제들)은 한국 스타트업 역사상 가장 성공적이고 혁신적인 사례로 꼽힌다. B급 감성 마케팅과 독특한 기업 문화, 꾸준한 기술 개발이 시너지 효과를 냈다. 배달의 유료화라는 패러다임 전환을 이끌자 배달 노동자라는 새로운 직업군이 만들어졌다. 과도한 수수료, 노동 문제 등 논란에도 벤처캐피탈(VC) 자금이 몰렸다.

      지난 2019년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의 배달의민족(이하 배민) 인수는 한국 스타트업 시장의 새로운 지평을 연 사건으로 평가된다. DH는 직접 운영하던 ‘요기요’ 등이 배민에 밀려 기를 쓰지 못하자 아예 M&A를 택한 것이다. 배민은 당시 적자를 내고 있었음에도 기업가치는 4조원대로 평가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DH의 요기요 매각 조건으로 배민 M&A를 승인했다. 계약 후 거래 종결까지 1년 이상이 걸렸다. DH 입장에선 원래 자기 사업을 내놓는 부담에도 배민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만큼 배민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 최근 실적은 그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배민은 2022년 흑자전환했고 작년엔 7000억원 가까운 이익을 거뒀다. 커머스 사업인 B마트 등의 사업성이 개선됐고, AI 기술을 활용한 ‘알뜰배달’도 소비자의 호응을 얻었다. 다만 이는 기존의 혁신성이나 참신함보다는 압도적인 점유율에 기댄 이익 극대화 작업의 결과물이란 지적도 나온다.

    • 배민 M&A 당시 창업자 김봉진 전 대표는 DH에 보유 지분을 넘기는 대신 DH 신주를 4년에 걸쳐 나눠받기로 했다. 당시 예상 가치로는 5000억원 이상에 달한다. 김 전 대표와 경영진은 DH 주주로 참여하는 한편, 아시아에서 사업 확장 기회를 모색하기로 했다. ‘배민다움’으로 불리는 정체성도 유지될 것으로 기대됐다.

      오래지 않아 김봉진 전 대표와 경영진은 배민, DH와의 관계를 사실상 정리했다. 김 전 대표는 작년 초 우아한형제들 대표이사직을 내려놨고, 몇 달 뒤 DH와 함께 세운 우아DH아시아 의장직도 사임했다. 4년에 걸쳐 받기로 했던 대가의 규모를 줄여 조기에 받는 것으로 DH와 합의했고, 받은 주식도 대부분 처분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내 문화를 이어줄 구심점이 사라진 셈이다.

      DH는 배민을 인수한 2021년 자국(독일) 음식 배달 서비스를 중단했다. 사실상 한국 사업이 본체가 된 터라 배민 활용도를 높이려는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적극적인 투자, 다양한 시도보다는 비용 절감이나 이익 극대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따랐다. 회사는 작년 라이브커머스 사업에서 철수했고, 김 전 대표가 이끌던 베트남 사업도 문을 닫았다.

      DH는 작년 배민에서 배당금 4127억원을 받아갔다. 인수 후 처음이고, 투자에 따른 보상이니 크게 문제 삼을 것은 아니다. 배민은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고 소비자 편의를 고민하는 등 선두주자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내 위상은 당분간 유지될 것이고, DH도 쏠쏠한 배당금을 챙기게 될 것으로 보인다.

      배민이 갖고 있던 색채가 옅어지는 것은 장기적으로 독이 될 수 있다. DH가 한국 경영진에 내리는 목표는 ‘이익 극대화’다. 겉으로는 혁신기업 이미지를 이어가지만 전처럼 적극적인 시도를 하거나 전문 인력들을 영입하고 대우하기는 어려워졌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과거 배민 구성원들은 스스로 시장을 개척하고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생각이 강했지만 이제는 DH에 배당을 올리는 것이 최우선 목표가 됐다”며 “도전적인 문화는 사라지고 전문 인력에 대한 대우는 약해지다 보니 내부 분위기가 뒤숭숭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과거 배민의 역동적이고 진취적인 문화가 가려지면서 주력 인력들의 이탈도 적지 않은 분위기다. 차별성이 사라지면 프로모션 확대나 가맹점 쥐어짜기 등 틀에 박힌 방식으로 경쟁사와 싸워야 한다. 언제까지고 1위를 지킬 거라 낙관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