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가 해외 부동산에 투자...부실 여파로 회수 지연 가능성
통상 3~4년 걸리던 영주권 수속 7년 이상 늘며 '재배치'이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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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 미국 등지에 집행된 투자이민자금(EB-5)의 손실 우려가 점차 커지고 있다. 제도 변경 직전인 2018년 유행처럼 집중적인 투자가 이뤄진 자금들이 만기가 속속 도래하고 있지만, 미국 부동산 시장의 회복세가 더뎌 예상한 수준의 이익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게 원인으로 꼽힌다.
보통 3~4년 걸리던 미국 영주권 수속이 팬더믹 이후 최소 7년 이상으로 늘어난 것 역시 핵심 이슈다. 투자이민자금은 영주권 발급까지 위험자산 투자 상태(at risk)를 지속해야 한다. 투자 당시 만기와 미스매칭이 속속 발생하며 손실에 대한 공포감이 더욱 늘고 있다는 지적이다.
투자이민자금 이슈가 표면화하기 시작한 건 지난해 말의 일이다. 한 뉴욕 부동산 재건축 사업에 투자한 펀드가 만기 도래 후에도 수익자들에게 투자금을 돌려주지 못하고 지급불능 상태에 빠진 것이다.
이 펀드는 미국의 'EB-5' 투자이민 비자 관련 리져널 센터(Regional Center)에서 설정한 것으로, 해당 프로젝트에 수백억원 규모의 후순위 대출을 집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한책임사원으로 펀드에 지분을 투자한 자금은 대부분 한국을 비롯한 글로벌 각국의 투자이민자금이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해당 펀드의 경우 천신만고 끝에 만기가 1년 가량 연장되며 겨우 고비를 넘겼다는 후문이다.
최근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뉴욕 타임스스퀘어 TSX브로드웨이 이슈 역시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약 4000억원의 중순위 투자금 중 상당수가 국내발 투자이민자금으로 파악된다. 건물 준공이 완료됐으나 임대차에 난항을 겪고 있어, 투자금 회수가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금융권에서는 하반기로 갈수록 투자이민자금의 만기 도래 이슈가 점점 늘어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 2018년 투자금 최소 조건이 50~100만달러에서 90~180만달러로 급격하게 인상되며 '막차'를 타려는 이민 신청자가 대폭 늘어난 까닭이다. 한 투자컨설팅 업체에 따르면 2018년 미국 투자이민 신청건수는 4000여건으로 전년대비 2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투자이민자금의 만기는 보통 5년이다. 다만 미국 이민국 수속에만 1년 가까이 걸리는 까닭에 1~2년의 연장 옵션이 붙는 경우가 많다. 2018년 집중된 투자이민자금의 만기가 올해부터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그 사이 코로나 팬데믹이 지나며 미국 상업용 부동산 가치가 급락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투자이민자금은 요구수익률이 높지 않아 자금조달이 어렵고 리스크가 큰 부동산 개발에 주로 투입됐다.
한 이민업체 관계자는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 투자한 자금들의 상환기한이 순차적으로 도래하면서 회수 우려가 커질 수 있다"라며 "통상 투자이민자금의 투자기한이 6~7년 정도라 이제 막 시작된 셈"이라고 말했다.
이런 투자이민자금 이슈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투자이민과 관련한 논란은 과거부터 끊이지 않있다. 기본적으로 원금을 보장하지 않는 조건으로 투자를 집행해야 하는데다(at risk 원칙), 프로젝트의 위험성에 대한 선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까닭이다.
지난 2020년, 투자이민을 한 중국인 등 외국인 투자자들은 뉴욕의 대형 부동산 개발사인 허드슨야드에 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했다. 코로나19에 따른 사업손실로 개발사가 수익금 지급을 중단한 게 그 이유였다. 2021년엔 투자이민자들을 속여 버몬트주 생명공학 사업에 투자하도록 한 사기 사건과 관련해 유죄판결이 났다.
미국이 2022년 관련 제도를 개선했지만, 이전에 투입된 국내발 투자이민자금은 아직 법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지적이다.
해당 자금들이 무사히 상환된다 해도, 더 큰 문제가 남아있다는 평가다. 투자이민자금은 최종 영주권이 발급될 때까지 위험자산에 투자돼있어야 한다. 이전까지는 보통 조건부 영주권 발급까지 2~3년(I-526 청원)에 조건부 영주권 발급 이후 2년(I-829 청원)을 더해 4~5년이면 영주권이 나왔기 때문에 5+1년 정도의 펀드 만기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금은 조건부 영주권 발급까지만 5년을 훌쩍 넘기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2019년 신청한 투자이민이 올해 초에야 심사대상이 됐다는 사례도 언급된다. 당초 영주권 발급까지 5~6년을 예상하고 투자한 자금의 경우 펀드 만기까지 영주권이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이 경우 재배치(redeployment)를 통해 자금을 다른 위험자산에 투입해야 한다. 최초 투자의 경우 투자자들이 보통 리저널 센터와 투자 프로젝트를 고를 수 있지만, 재배치 자금은 리저널 센터가 임의로 집행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이슈다.
EB-5 관련 프로젝트는 보통 만기가 5년 이상으로 설정돼, 영주권이 나온 뒤에도 자금을 돌려받지 못할수도 있다는 점도 회자된다. 10년 가까이 억 단위 투자금이 원금 손실이 가능한 상황에 계속 묶여있어야 하는 것이다.
한 이민업체 관계자는 "이제는 법이 개정되어서 5년에 한 번씩 사업자를 감사하지만, 이전에는 제도적 보호책이 전혀 없었다"며 "투자이민은 제도상 원금 보장이 안되고 자금이 집행된 부동산 개발이 중단된 경우 영주권을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