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마운트 JV 무산으로 본 LG전자 확장전략의 난맥상
입력 2024.05.29 07:00
    취재노트
    작년 CES서 협력 약속 후 JV 추진했으나 무산
    해외 투자자 잡으면 위험 줄지만 실익도 모호
    대형 M&A 필요하지만 실행 역량·자금은 의문
    전기차 시장 침체 속 "그룹 전략 부재"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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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작년 초 CES 2023에서 조주완 LG전자 사장과 톰 라이언 파라마운트스트리밍 CEO가 손을 맞잡았다. 양사는 콘텐츠 서비스 영역에서 협력을 약속했고 이후 구체적인 논의가 본격화했다. 그 중 한 방안이 LG전자와 파라마운트의 합작사(JV) 설립이다. 파라마운트 OTT를 LG전자 TV에 기본 탑재하기 위한 작업이 이어졌다.

      작년 수 개월간 진행된 JV 설립은 결국 무위로 돌아갔다. 올해 초 정기주주총회에서 조주완 사장과 HE사업본부장은 콘텐츠 제공자들과 논의를 진행 중이며 협력의 형태는 지분 투자, 합작법인 등 다양한 모형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시장에선 앞으로 협업 기대감은 크지 않은 분위기다.

      파라마운트와의 JV는 처음부터 회의적인 시각이 있었다. 일단 '하드웨어'의 LG전자와 '콘텐츠'의 파라마운트가 입장을 조율하기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웬만한 투자로는 제작 비용이 급등하고 경쟁도 치열해진 북미 OTT 시장에서 의미있는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파라마운트의 OTT 사업은 최근 수익성 악화에 고전하고 있기도 하다. 거래가 성사됐다면 LG전자가 '밑빠진 독에 물을 부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을 수도 있다. 이를 감안하면 LG전자가 크게 아쉬울 것은 없다 볼 여지가 있지만 회사의 의지는 약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거래 성사를 기대했던 자문사들도 헛물을 켰다.

      LG그룹은 이전에도 JV를 적극 활용해 왔다. 2021년 LG전자와 글로벌 수위권 자동차 부품사 마그나인터내셔널이 설립한 ‘엘지마그나 이파워트레인’이 대표적이다. 최근엔 해외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에어솔루션 사업에 글로벌 사모펀드(PEF)를 유치하는 방안을 진행 중이다. LG화학도 화학사업을 기반으로 해외 투자자와 JV를 설립하는 안을 논의하고 있다.

      LG그룹은 최근 수년간 국내 사업을 정리하고, 해외 사업을 확장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JV 등 방식으로 해외 투자자와 협력하면 그들의 네트워크를 활용하고 위험 부담도 줄일 수 있지만 그만큼 과실도 줄어든다. 달리는 독자적으로 시장을 살피고 사업을 확장할 능력이나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에 고육책으로 협력 모델을 꾀한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LG그룹은 글로벌 시장에 독자적으로 뛰어들기에 부담이 되기 때문에 해외 파트너와 손을 잡는 전략을 적극 펴왔다”고 말했다.

      LG그룹이 ‘글로벌’ 외길 전략을 펴지만 아직 존재감은 크지 않다. 일본 소니는 수십조원을 들여 파라마운트를 인수하겠다 나섰는데, LG전자는 작은 사업영역에서의 제휴도 쉽지 않은 모습을 보이며 세계 시장에서의 ‘격차’를 드러냈다. 국내서의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LG그룹의 대형 거래를 고르고 실행할 능력은 삼성그룹은 물론 SK그룹에도 뒤처진 지 오래란 평가다.

      LG그룹 사상 최대 M&A 규모는 여전히 1조원대에 머물러 있다. LG전자는 2020년 ㈜LG와 손잡고 오스트리아 차량용 프리미엄 헤드램프 제조사 ZKW를 11억유로에 인수했다. 이후 그룹의 전장사업이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수년간 매달리다시피하며 인수에 힘을 쏟은 점에 비하면 만족스럽다 보기 어렵다. 사실상 실패한 거래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없지 않다.

      LG전자는 지난 수년간 M&A 인력을 확충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그간의 보수적이고 신중한 기업 문화를 감안하면 인재를 영입했다고 큰 변화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대형 거래를 하자면 지주사와도 적극 협의를 해야 하는데, 이 역시 ‘과감한 결단’을 하는 데는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크다.

      LG그룹은 전장, 배터리 등 큰 화두가 있지만 사업 환경은 녹록지 않다. 소형 투자나 JV 정도로는 글로벌 전장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기 어렵다. 배터리 사업은 전기차 시장 침체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LG전자 등 계열사들의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그간 비주력사업을 정리한 자금, 앞으로 유치할 투자금을 어디에 쓸 것인지 방향성이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사진이 흐릿한 상황에선 수십 건의 투자를 검토해도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다른 투자업계 관계자는 “LG그룹의 핵심 사업들은 전기차 산업과 연동된 것들이 많은데 전기차 시장이 부진하다 보니 애를 먹고 있다”며 “인력을 충원하고 자금도 조달하고 있지만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 그룹 차원의 방향성이 모호하다 보니 계열사들이 선뜻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