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형 펌들 "같은 퀄리티, 수임료 반값" 적극 마케팅
'양적 성장 한계' 우주항공·AI 미래산업 선점 나서
일감 확장 기회…법률자문 포함 '종합 컨설팅'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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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M&A(인수합병) 시장 침체가 길어지면서 법무법인(로펌)들의 자문 실적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작년에 비해서는 상황이 다소 나아졌지만 ‘빅딜(big deal)’ 실종으로 대형사들도 중소형딜 수임에 나서고 있다. 중형 로펌들의 약진으로 수임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면서 대형사들조차 자문 비용을 낮추는 출혈경쟁이 벌어지는 분위기다.
이렇다 보니 로펌들은 성장 한계가 보이는 기존 자문시장에서 벗어나 ‘미래 먹거리’에 눈을 돌리고 있다. 우주항공 분야나 AI(인공지능) 등 시장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아직 ‘강자’가 없는 시장 선점을 노리고 있다.
한 대형로펌 M&A 변호사는 “가격 갭(gap)이 작년보다는 줄어든 분위기지만, 여전히 PE나 대기업 등이 딜 검토만 많이 하고 있고 실제 진행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다”며 “로펌 차원에서 올해 시장 점유율을 높이라는 기조여서 자문비용을 깎아서라도 수임을 더 해야 하나 고민이 있는데, 작년까지는 ‘내년에 좋아지겠지’ 싶었지만 올해는 정말 위기감이 느껴진다”라고 말했다.
대형로펌들은 지난해까지는 송무나 형사 등으로 실적을 방어했지만 올해 자문 실적 우려가 나오고 있다. 태평양, 세종, 화우 등 다수의 로펌들이 올해 새 경영진을 맞이하면서 첫 성적표를 보여야 하는 부담도 있다.
M&A 시장 침체로 광장처럼 기업자문에 강점이 있는 하우스는 1분기 상황이 다소 미진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광장은 최근 운영위원회 구성을 두고 내부 갈등 분위기가 전해지는 등 올해 실적을 방어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다는 평가다.
화우는 올해 1분기 전년 대비 두 자릿수 성장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올해 업무집행대표변호사로 새 임기를 시작한 이명수 대표변호사를 필두로 금융 규제 자문 업무가 실적을 뒷받침했다. 지난달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대다수의 기관들이 ‘휴업’ 상태였지만 금융감독원은 여러 감독 업무를 이어가면서 시장 내 금융규제 대응 일감도 끊이지 않았다.
기업자문 부문에서 중형 로펌들의 공격적인 확장도 위협 요소가 되고 있다. 지난해 지평에 이어 대륙아주, 바른 등이 매출 ‘1000억원 클럽’에 가입하는 등 약진을 보인 바다. 일부 중형 로펌은 ‘대형 로펌과 같은 퀄리티, 수임료는 절반’을 표방하며 적극적인 영업에 나서고 있다. 중소형 거래가 많다 보니 고객 입장에서도 리걸 비용을 절약하는 차원에서 이들을 많이 찾고 있다는 평이다.
한 대형 로펌 관계자는 “발 빠른 대응을 원하는 고객들의 수요에 맞춰 전략을 바꾼 로펌들이 선방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대형 로펌들도 서비스의 질과 실적 관리 사이에서 전략 수정에 고민이 많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로펌들은 새 먹거리 고민에 분주하다. ‘양적 확장’에 한계를 느낀 대형로펌들도 ‘양보다 질’에 집중하자고 내부적으로 경영 기조를 잡는 분위기다. 동시에 경쟁이 치열한 기존 부문보다 ‘미래 먹거리’가 되어 줄, 성장이 예고된 산업을 선점하고자 하는 고민이 있다. 과거 한창 블록체인이나 NFT(대체불가능토큰) 관련 산업이 부상하며 로펌들도 관련 팀들을 만들었지만 예상보다 시장이 커지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될 시장’에 집중하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최근 기대가 쏠리는 부분 중 하나는 우주항공 분야다. 5월27일 경남 사천에 한국판 미항공우주국(NASA)인 우주항공청이 개청했다. 정부차원의 산업육성과 더불어 민간 개발 주체의 참여 확대도 기대되고 있다. 다가올 우주 시대에 발맞춰 로펌들도 조직 세팅에 나섰다. 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최근 ‘우주위성팀’을 정식 발족했고 광장도 우주항공팀을 신설했다. 태평양도 30명 규모의 우주항공산업TF를 만들었는데 전 방위사업청, 국방부 근무 경력이 있는 설광윤 변호사 등으로 구성돼 있다.
율촌도 우주항공팀을 발족하고 우주항공, 위성, 방산수출, 공공조달 분야 시장 공략에 나섰다. 20대 국회의원(산자위 법안심사위원장) 등을 역임한 손금주 변호사(연수원 30기)이 이끄는 해당 팀은 우주항공청 설립 전부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공군 등에 자문을 제공하며 적극 영업에 나서고 있다. 율촌의 한화그룹과 KAI와의 관계도 해당 분야 선점에 도움이 되고 있다는 평이다.
우주산업은 정부, 민간기업, 해외 등 다양한 주체가 연관된 점이 로펌 입장에서는 기회 요인이다. 한국의 '스페이스 X'를 노리는 스타트업들과는 ‘새로운 시장’을 함께 개척해나가야 하기 때문에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전문가들을 영입하는 것도 중요하다.
AI 관련 업무도 로펌들이 집중하는 먹거리 중 하나다. AI 부문도 아직 규제가 미비한 영역이다 보니 기업들도 국제 규제나 개인정보 보호 등 다방면으로 법률 자문이 필요하다. 최근 태평양은 AI 시대에 발맞춰 신기술·신사업 대응센터를 출범했다. 태평양은 국내 첫 AI 분쟁 사례였던 AI 챗봇 ‘이루다’ 관련 자문 등을 제공한 바 있다.
신산업은 법률 자문뿐 아니라 입법 컨설팅, 정부 부처와의 네트워크 ‘종합 컨설팅’ 차원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므로 부담되는 면도 없지 않다. 고객들이 로펌에 요구하는 역할이 늘어나고 있는 점도 고려된다. 법률 자문뿐 ‘종합 컨설팅’을 차원의 서비스를 원하는 것이다. 일부 고객들은 변호사에게 언론 대응 등 리스크 매니지먼트 차원의 역할도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