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3년만에 점유율 50%대서 39% 이하로
'점유율 연연 안한다더니' 美 주요 ETF 치킨게임 시작
대규모 광고비 집행하고도 개인투자자 점유율 하락
'금융경쟁력제고TF' 중심 지배구조 이슈 지속 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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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바심 때문이었을까. 삼성자산운용이 지난달 단행한 미국 대표지수 상장지수펀드(ETF) 4종 수수료 인하를 두고 득보다 실이 많다는 평가가 나온다. ETF 시장의 지배력을 도전자인 미래에셋운용에 넘겨주기 직전인 상황에서, '치킨게임' 외에는 손에 쥔 패가 없다는 점만 드러냈다는 것이다.
ETF는 올 들어 4월말까지 무려 20조원 이상 자금이 순유입된, 운용업계의 마지막 보루이자 수익원이다. 이 시장에서 1위를 뺏긴다는 건 단순한 순위 경쟁 문제가 아니다. 오랫동안 지켜온 패권을 경쟁사에 완전히 넘겨준다는 의미다. 거슬러 올라가면 '비서실' 출신들이 장악했던 삼성 금융경쟁력제고TF(태스크포스)의 전략 부재가 결국 지금의 상황을 야기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개인투자자 점유율서 밀린 삼성운용, 2위 하락 가시화
운용업계에 따르면 지난 24일 기준, 삼성운용의 국내 ETF 시장 점유율은 38.99%로 나타났다. 지난 2021년 점유율 50%가 깨졌고, 지난해 하반기 40%가 깨졌고, 채 1년도 되지 않아 운용업계에서 '1위를 지킬 수 있는 최후의 보루'로 꼽는 39%선까지 밀린 것이다. 경쟁사인 미래에셋운용의 점유율은 36.74%로, 두 회사간 격차는 2.25%포인트에 불과하다.
개인투자자들의 투심(投心)이 희비를 갈랐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미래운용 TIGER ETF의 개인투자자 시장 점유율은 현재 48.6%로 삼성운용 KODEX ETF의 31.9%를 멀찍이 따돌리고 있다. 연초 이후 6조8000억여원의 개인투자자 자금이 ETF 시장으로 유입됐는데, 이 중 3조2000억여원이 미래운용의 TIGER ETF로 향했다. KODEX ETF에 유입된 자금은 1조3000억여원 규모였다.
상품 기획력이 승부처였다는 분석이다.
미래운용은 2022년부터 본격화한 '테마형 ETF' 유행에서 앞서나갔다. 올해 주식연계증권(ELS) 대체 상품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커버드콜 ETF가 대표적이다. 콜옵션 매도 비율을 조정해 ELS와 비슷한 수익률 구조를 갖춘 'TIGER 미국배당+7%프리미엄다우존스'는 커버드콜 ETF 시장의 4분의 1을 혼자 차지하고 있다.
수수료 인하에 대규모 광고 집행하고도 점유율은 답보
몰리던 삼성운용이 던진 승부수가 수수료 인하였다. 삼성운용은 지난달 19일 국내 투자자들이 선호하는 S&P500 및 나스닥 지수 추종 ETF 4종류에 대한 총 보수를 연 0.05%에서 연 0.0099%로 전격 인하했다.
'업계 최저 수수료'라며 여러 채널에서 대규모 광고도 집행했다. 광고업계의 추산에 따르면 매체 및 노출 빈도 수 등을 고려했을 때 최소 10억원대, 가정에 따라서는 50억원에 가까운 광고비가 집행된 것으로 분석된다. 2023년 삼성운용의 연간 광고선전비가 82억원이었다. 업계의 추산이 사실에 가깝다면, 삼성운용으로서는 회심의 승부수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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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드라마틱하지 않았다. 최근 1개월간 삼성운용의 개인투자자 시장 점유율은 오히려 0.8%포인트 떨어졌다. 지난 1개월간 KODEX ETF로 2000억원의 순매수가 유입됐는데, 같은 기간 TIGER ETF로는 7000억원이 향했다. 분명히 KODEX ETF에도 자금이 유입되고 있긴 하나, 경쟁자와의 격차는 여전히 벌어져있다는 뜻이다.
이전까지 삼성운용은 대외적으로 'ETF 점유율에 연연하지 않고 좋은 상품을 내놓겠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이번 수수료 인하로 인해 이 같은 변명(?)은 통하지 않게 됐다. 개인투자자들이 선호하는 미국 ETF 상품을 콕 집어서, 수익성을 포기하고 수수료 출혈 경쟁을 시작했다는 것 자체가 '점유율에 신경쓰고 있다'는 방증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막상 경쟁사인 미래운용엔 이렇다할 타격을 입히지도 못했다는 평가다. 미래운용은 지난 10일 TIGER 1년은행양도성예금증서액티브(합성) ETF의 총 보수를 0.0098%로 인하했다. 이 상품은 주로 퇴직연금 자금이 들어오는 채권형 ETF다. 나스닥100레버리지 ETF 등 핵심 수익원의 수수료율은 건드리지 않은 채 '국내 ETF 최저보수'라는 타이틀만 가져왔다.
시너지 없는 분사ㆍ막힌 승진..."결국 지배구조가 문제"
삼성운용의 경쟁력 저하 배경으로 운용업계에서 항상 거론되는 것이 경직된 지배구조, 그리고 이로 인해 무거워진 조직문화다.
당장 도마에 오르는 게 '시너지 없는 분사' 이슈다. 삼성자산운용은 부문별 전문화라는 명분 하에 삼성액티브자산운용, 삼성헤지자산운용을 분사해 자회사로 두고 있다. 액티브운용은 지난해 64억원의 순이익을 내며 두 자릿 수 역성장을 기록했다. 헤지운용은 주요 펀드를 액티브운용에 이관한 후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에서 영업적자를 내고 있다.
판관비만 중복으로 늘리는 현 구조를 유지하는 배경에 대해 운용업계에서는 결국 지배구조의 문제라는 평가를 내놓는다. 삼성운용 사장 자리가 보통 삼성생명ㆍ삼성화재 임원의 최고경영자(CEO) '수련 코스'로 꼽히다보니, 최대한 많은 자리를 유지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서봉균 현 대표 취임 전까지, 운용 대표는 대부분 생명 출신 임원들이 차지해왔다.
2위에 쫓기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ETF 사업부문장에 ETF 사업 경험이 전무한 인사를 앉힌 것 역시 지배구조 이슈로 꼽힌다.
삼성운용은 지난해 12월 ETF 사업부문장 자리를 상무급에서 부사장급으로 격상하며 하지원 부사장을 선임했다.
하 부사장은 삼성생명 시절 재무심사팀장ㆍ전략투자사업부장ㆍ특별계정사업부장ㆍ자산PF운용팀장을 거쳤다. 하 부사장이 삼성운용의 핵심 사업인 ETF 부문을 맡을 수 있었던 배경으로 '생명 출신 성골'이라는 점이 거론된다. 하 부사장은 이번 수수료 인하 출혈 경쟁 발표 때 직접 "실질적으로 최대 수혜를 제공할 수 있는 미국 대표지수 4종에 대한 보수 인하를 결정했다"는 입장문을 내기도 했다.
삼성운용 출신 한 운용업계 관계자는 "한국 ETF의 아버지로 불리는 배재규 현 한국투신운용 대표를 비롯해 주요 상위 운용사 ETF 담당 임원이 모두 삼성운용 출신이지만 이들은 아무도 삼성운용에서 대표를 달지 못했다"며 "삼성생명ㆍ화재 출신이 아니면 직급과 승진에 한계가 느껴지는 경직된 인사 구조가 지금 삼성운용이 처한 상황에 한 몫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생명과 화재 출신들만 타고난 핏줄이 다른 '진골' 대접을 받으니 사내에 인재들이 남아 있을 리가 없다는 의미도 된다.
2021년말 취임한 서봉균 삼성운용 대표의 임기는 올해 말까지다. 골드만삭스 서울지점 증권대표 출신으로 삼성증권 트레이딩 부문을 거쳐 운용 대표가 된 서 대표는 삼성금융사 내에서 입지가 단단한 편은 아니라는 평가다. 삼성운용이 외형적으로는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음에도, 이 때문인지 벌써부터 운용업계에서는 차기 사장에 대한 하마평이 제기되고 있다.
차기 운용 대표 후보로 손꼽히는 이 중 하나가 김우석 현 삼성생명 부사장이다. 김 부사장은 지난해까지 3년간 삼성금융사 지배구조의 핵심인 금융경쟁력제고TF 담당 임원을 지냈다. 아이러니하게도 삼성운용의 ETF 하락세가 시작된 시기와 일치한다. 올해부터는 운용ㆍ증권 CEO로 가기 위한 필수 수련코스로 꼽히는 자산운용부문장을 맡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업계 일각의 전망대로 김우석 부사장이 차후 운용 대표로 간다면, 김 신임 대표는 '2위 운용사'를 리빌딩 해야 하는 사명을 안게 될 가능성이 크다"며 "운용 3사 구조 유지 여부나 ETF 관련 인사 개편이 '혁신 의지'의 가늠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