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실차로 10년 후 실적 당겨쓴 메리츠화재…이면엔 성과주의 문화?
입력 2024.06.04 07:00
    메리츠화재, 예실차 확대로 사상 최대 실적 기록
    10년 뒤 실적 미리 반영…중장기 재무 리스크 경고음
    후불제 회계 배경엔 성과우선주의 임원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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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올해 도입된 새 회계제도(IFRS17)의 영향으로 손보업계가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하고 있다. 손해보험사 대부분이 보험계약마진(CSM)을 높게 인식해 실적을 '뻥튀기'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지만, 메리츠화재는 예실차(예상이익과 실제이익의 차이)를 활용해 단기 실적을 높인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권에서는 메리츠화재의 방식을 두고 '후불제'라는 우려도 나온다. 당장의 단기 순익을 위해 10년 뒤의 이익을 장부에 먼저 반영한 탓에, 중장기적 실적이 하향 추세를 그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는 메리츠 내부의 성과주의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올해 1분기 메리츠화재는 별도 기준 순이익 4909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동기 대비 24% 증가한 실적으로, 분기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이다. 메리츠화재의 순이익은 IFRS17을 도입한 이래로 고공행진하고 있다. 지난해 연간 별도 순이익은 1조5748억원으로, DB손보를 제치고 손보업계 2위까지 올라 삼성화재를 위협하기도 했다. 

      장기보험은 CSM(보험계약마진) 또는 예실차 관리를 통해 실적을 관리할 수 있다. 국내 손보사들은 대부분 미래이익인 CSM 반영을 통한 '실적 부풀리기' 의혹을 받고 있다. 이에 금융 당국은 회계상 CSM을 적용할 때 할인율(4.8%)을 반영하지 않도록 요구할 계획이다. 당국 요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손보사들이 초기 이익이 20% 이상 줄어들게 된다. 

      반대로 예실차로 실적을 높인 메리츠화재는 당국 사정권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메리츠는 장기보험 관련 영업이익 중 예실차가 차지하는 비중이 약 30% 수준으로 알려졌다. 당국의 권고를 받고 지난해 3분기부터 예실차를 좁혀가고 있지만, 여전히 경쟁사들보다 1.5배 이상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손보사가 주력 판매하는 실손보험계약은 장기에 걸쳐 있기 때문에 계약 초기에 예상한 보험금 지급액과 실제 지급액 간에 차이가 발생한다. 통상 손보사들이 실손보험 손해율을 110% 정도로 계산하는 반면, 메리츠는 120% 이상으로 책정했다. 최소 10%p의 갭이 현 회계제도상 순이익으로 잡히면서 실적이 증가한 셈이다.  

      보험 부문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투자자 입장에선 실제와 가정의 수치가 비슷한, 즉 예실차가 작은 보험사가 업무를 성실하게 한다고 판단할 수 있다"며 "보험 장기계약은 '스노우볼' 효과를 노리는 것이 일반적인데, 메리츠의 경우는 그 반대"라고 지적했다.  

      손보사 입장에서는 예실차를 많이 확보할수록 단기 실적이 좋아진다. 다만 이는 일시적 효과일 뿐, 중장기적으로는 손실로 이어진다. 예실차 갭이 지나치게 벌어지면 10년 뒤 장기 순이익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메리츠가 10년 뒤의 실적을 당겨 쓰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당국 고위 관계자는 "예실차가 큰 것도 회계 리스크나 마찬가지"라며 "지난해 메리츠화재의 예실차 확대를 당국도 주시하고 있고, 여러 차례 지적했던 상황"고 말했다. 

      메리츠화재의 예실차 확대는 메리츠 내부의 '성과우선주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지난해까지 9년간 메리츠화재를 이끌었던 김용범 부회장은 최희문 증권 부회장과 함께 성과주의 경영철학을 강조해온 인물이다. 

      실제로 지난해 메리츠화재의 회사 성과율은 정량평가와 정성평가를 종합해 지주에서 최우수 등급으로 평가됐다. 이에 따라 예실차 회계 제도를 꾸렸던 임원들은 상여만 20억원 이상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메리츠화재 내부에선 10년 후 현행(IFRS17) 제도가 유지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국의 제재와 실효성 논란 끝에 제도가 폐지될 가능성도 고려했던 상황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알 수 없는 미래의 이익보단 당장 단기의 성과에 집중하자는 것이 메리츠 문화"라며 "다운타임이 10년 뒤에 올 텐데, 이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메리츠화재 측은 "지난해 코로나가 완화되면서 손해율이 늘어날 것이라는 보수적 가정을 했고, 이에 따라 예실차가 늘어났을 뿐 고의적으로 확대한 것은 아니다"라며 "올해 예실차는 의료파업 등의 변수가 없다면 20%대에서 한 자릿수까지 지속 줄이고, 실손 예상현금흐름 손해율도 110%로 책정할 예정"이라고 전했다.